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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n 29. 2016

뭣이 중헌디

며칠 전 노을이 탁월하게 붉은 날이었다. 너무 예뻐서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서도 나는 그 순간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워니랑 재미있게 당구도 치고 밥도 맛있게 먹었지만 내 머리 속은 온통 ‘걱정’ 뿐이었다. 뻔한 걱정들 – 나는 왜 아직 이러고 사나?, 나는 과연 언제쯤 성공할까? 내 책이 올해 나오기는 할까? 지금 이렇게 당구 칠 시간이 없는데 괜히 워니보고 나오라고 해가지고 이렇게 결국 또 후회할 짓을 한다. 이젠 이런 반복적인 글들도 지겨울 정도이다.



정도언의 ‘프로이트의 의자’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들은 불안해함으로써 미래를 더 잘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내 마음은 항상 효율적으로(?)으로 불안해하는 것 같다. 내가 만약 책을 출판해서 10만권쯤 팔리면 내 삶이 불안하지 않을까? 내가 하연수랑 결혼하면 저 붉은 노을을 만끽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하나의 걱정이 해결되면 또 다른 걱정이 다가오겠지. 이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인생에서 죽을 때까지 걱정만 할 수 있단 생각이 드니 이 미친 짓을 잠시 멈출 수 있었다.



마틴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 책에서는 ‘일주일에 하루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날을 만들라’는 내용이 있었다. 일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바다 보러가기, 게임 하기 등 취미 생활을 일주일에 한번 무조건 하라는 것이다. 이런 자기계발서에나 나올 법한 말을 평소에는 무시했겠지만, 어제는 이 구절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내가 만약 아무 죄의식 없이 하루 놀 수 있다면 뭐 하고 놀까? 여자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드라이브 하겠지.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책을 쓰거나 맥도날드 배달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건 그냥 내 ‘일’에 가깝다.



일주일에 한번 내 마음대로 노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되긴 될까? 의문이 든다. 작가로 성공하는 것, 그리고 돈 벌어서 결혼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 아닐까? 창밖에 날씨가 좋아도 참아야 한다. 책상에 앉아 조급하게 글을 적어도 부족할 판에, 저렇게 한가하게 결혼 가능성 0퍼센트 여자들과 이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꽃놀이가는 건 좀 아니지 않는가? 이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알겠는데 내가 진정 원하는 건 자연 그 자체가 아니다. 내가 솔직하게 원하는 것은 성공, 성공, 또 성공이라는 것을 안다.


(참새가 찍은 노을 사진)




내가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 공황이 가끔씩 왔다. 난 사실 그때 공부를 마음껏 하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열심히 해서 당시 여자친구랑 진짜 결혼을 하고 싶었다. 남들이 다 똑똑하다고 인정해주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공부에만 몰입하는 다른 친구들이 진심 부러웠다. 그런데 나는 공부에 집중만 하려고 하면 공황이 어김없이 찾아와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나는 항상 긴장을 하면서 공부를 했다. 내 의식은 ‘성공’에만 머물지 않고, 이 순간 내 마음이 평화로워야한다는 강박으로 깨어 있었다.



공황이 오면 정말 짜증나게도 1~2일 정도는 공부를 전혀 할 수가 없었다. 경쟁자들은 독서실에서 하루에 14시간씩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공황이 오면 내 마음에 안정을 우선 취해야 했다. (시험에 떨어진 이유가 다 있었네) 공원을 천천히 산책했으며, 남들은 잘 가지 않는 고요한 길에 머물며 평화로운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친구를 불러 가까운 바닷가를 가거나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밥 먹기도 하였다. 그렇게 현재를 느끼고 나서야 그 다음날 공황 없이 공부를 할 수가 있었다.


정리하면, 그 당시의 내 딜레마는 두 가지 바람 때문이었다.


1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떻게든 공무원 시험에 꼭 합격하고 싶다.

2번. 내 마음이 공황이 없이 그저 평안했으면 좋겠다.



나는 공무원 시험 합격(1번)을 위해 억지로 하루에 시간을 정해서 산책을 하거나 명상을 하기로 했다. 그러면 공부도 할 수 있고, 갑자기 치고 오는 공황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나의 우선 욕망은 1번이었다. 그렇게 그 힘든 시기를 버텼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다. 나는 왜 그때나 지금이나 성공만을 원했을까?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도 뚜렷하게 답이 안 나온다.



지금 내가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조용히 공원 산책하면서 명상하는 것이 시시하기만 하고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껴서일까? 그렇다면 내가 성공하는 것은 또 무슨 의가 있을까? 성공해서 부자가 되고, 하연수랑 결혼하고,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을 받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지금 상태로 대성공을 해도 삶에 감사하기는 커녕 매 순간 걱정만 하면서 살텐데..



혹시 내가 36년 동안 뭔가 대단히 잘못 생각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너무 1번, 성공만 맹신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성공에 대한 죄의식 없이, 미래에 대해서 아무 욕심이 없이, 산책만 하면서 소소하게 살아간다해도 그 속에서 진짜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도대체 성공해서 행복한 거랑 소소하게 자연에 심취해서 행복한 거랑 근본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지? 옛날 인도사람들은 평생 명상만 하면서 행복하게 살지 않았느냐? 그것도 삶의 한 방식이다.



솔직히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붉은 노을을 보면서 마음껏 행복해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할 일이 너무 많고 자연에 경탄하는 것은 사치일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우리가 문화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살아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나는 인류가 문명의 발달과 함께 당연하다고 믿었던 이 핵심믿음을 깨 보고싶다. 나의 이 문제 제기가 인류사에 위대한 발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1번(성공)을 위해서 2번(행복)을 희생만 했지, 한번도 2번을 위해 1번을 희생하지는 않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보편적인 문제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휴가를 갈 때, 자연을 보고 머리를 식혀서 일의 능률을 더 올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번도 휴가 그 자체가 삶에서 목적이었던 적이 없다. 이제 내 인생에 무게중심을 바꿔보고 싶다. 이제부터는 지금 내 행복을 위해 하루에 시간을 정해서 글을 쓰거나 일을 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성공에만 집착해서 자연을 아름다운 노을을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성공이 아닌, 현재의 행복의, 행복을 위한, 행복에 의한 삶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마음 편하게 낮잠 자면서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내 마음이 불편해지면 억지로 몇 시간 공부를 해주는 것이다. 시험합격(성공)을 위해서 자연을 느끼는 것은 괜찮고, 자연을 느끼기 위해 시험 공부하는 것은 안 되는건가? 기본적으로 나의 우선 욕망은 이제부터 2번(행복, 평화)가 되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위해 살아야 성공도 더 가깝게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속적인 성공이란 참 희한해서 직접 그것을 가지려고 발부둥치면 오히려 더 멀리 도망치는 성질이 있는 것 같다. 중학교 때 내가 필기를 예쁘게 하는 데 몰입하니 성적이 올랐던 것처럼 지금 현재에 행복해야 더 성공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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