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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곰 Dec 15. 2020

'살아남다' 머리 깨지고 차에 치이고

[시간이 멈춘 방-여행편]


이마에 밭고랑이 생겼네


거울 앞에 선 어느 날. 쟁기로 판 것처럼, 주름 하나가 이마에 자리했다.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렸을까? 고민이 많아 인상을 썼을까?' 그동안 얼마나 인상을 구겼으면 이럴까. "정말 깊게도 팼다" 장탄식이 터졌다. 




여행의 첫날. '이미그레이션 심사는 어떻게 통과하지? 환승은 어떤 식으로 하는 거지? 내 수화물은 잘 올까? 소매치기가 많다는데? 배드버그가 나오면 어쩌지? 인종차별 당하면. 끝없는 걱정에 하루가 사라졌다.


거리를 걸을 땐 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처럼 두리번거렸고, 외국인이 다가와 해코지하면 금세라도 방어할 수 있도록 머리로 그려봤다. '저 사람이 나를 위협하면 이런 식으로 대응해서...' 중증 피해망상 환자였다.


'항상 긴장하고 다녀야 해.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여행 초기, 이런 마음이 늘 함께였다. 근데 말이다. 걱정을 아무리 해도, 대비를 아무리 해도 다 막을 수 없다'는 걸. 우린 얼마 지나지 않아 뼈저리게 느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까. 우리 여행은 '우당탕탕'이다. 남들이 붙여준 말이다. 그만큼 사건·사고가 많았다. 금전적인 부분부터 인명 사고까지 다양했다. 이제서야 얘기지만 여행 중엔 부모님께 밝히지 못했다. 




예능 '꽃보다 청춘'으로 더 유명해진 라오스 방비엥. 시골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한쪽엔 고급 리조트가 자리했다. 한국인이 몰려 동남아시아의 강촌으로도 불리는데, 대부분의 가게엔 한글로 된 설명과 가격표가 자리했다. 


'나영석 피디와 꽃청춘이 온 곳' 문구를 적은 곳이 즐비했다. 내눈을 의심했지만 '얼짱·몸짱 도우미 항시 대기'를 내건 노래방도 있었으니 말해 뭐하겠냐.

 

이곳의 대표 관광지는 '블루라군'이다. '파란색 물감을 푼 천연 수영장' 수많은 사람들이 나무 위에 올라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우리에게 이곳의 추억은 아주 강력했고 또 짜릿했다. 


사람들이 몰린 땐 '물 반 사람 반'이라고 했는데, 그 '사람 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건 한국인이었다. 한국어로 나누는 대화가 라오스 현지어보다 더 많이 들릴 정도였다.


각설하고 나무 줄기 끝에 연결된 핸들을 잡고 물로 뛰어든 뒤, 적당한 지점에서 핸들을 놓고 물속으로 빠지는걸 본적 있는가? 타잔이 나무 줄기 타는 장면을 상상해 봐라. 


우리 역시 도전했다. 차례를 기다렸고, 드디어 순서가 됐다. 출발 점에 선 B. 핸들을 양손으로 꼭 쥐었다.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발이 바닥에서 떨어질 때쯤 한 아이가 B의 진행 방향을 막아섰다. 


아이와 부딪힐 것을 염려한 B는 줄을 놓을 수 없었고, 핸들을 잡은 채 공중에 매달렸다. 힘이 빠진 B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자리가 나빴다. 머리가 뾰족이 튀어나 온 돌 계단 끝으로 향했다. 


찰나지만 슬로우 모션처럼 펼쳐졌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현실로 돌아온 나는 B에게 달려갔다.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사고를 유발한 남자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옆에 있던 지인은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B의 손바닥과 무릎에선 지혈제가 필요한 수준의 피가 흘렀다. 머리는 찢어져 멍과 함께 피가 맺혔다. 참을성 최강자인 B가 옅은 웃음과 함께 "머리가 울리고 아프긴 하지만 큰 이상은 없는 것 같다"고 날 안심시켰다. 


'뇌진탕 증세가 있네' 숨을 크게 내뱉었다. 때마침 들려온 한 중년 여성의 말. "밥먹으러 가자.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사실 네가 무슨 잘 못 한 것도 아닌데..." 남자 아이는 여성에게 이끌려 물밖으로 향했다.


분노 조절 장애가 없어 다행이고 내가 사람 새끼라 다행이었다. 순간 '이곳에 병원이 하나 있지만 시설이 낙후됐고, 크게 다치면 도시로 나가야 하는데 쉽지 않아 진짜 조심해야 한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기억났다.


'내가 그 순간 잘 봤어야 했는데. 병원에 가야하는데' 자책과 걱정이 이어졌다. 먼발치에서 우릴 보던 라오스 현지인이 안타까운 눈빛 보내며 다가와 약을 내밀었다. 타박상에 바르는 약으로 추정했고, 부풀어 오른 이곳 저곳에 바르기 시작했다.


응급처치를 마치고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남은 스케줄은 고사하고 돌아가는 길부터 문제였다. 자전거를 대여한 우린 내리 쬐는 해를 맞으며 페달을 밟았다. 끝까지 말썽이다. 그렇게 방비엥 일정이 '여행'에서 '요양'으로 바뀌었다.




'주차장에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치겠어?' 블랙박스 TV에서나 볼 법한 이 기막힌 일이 우리에게 발생했다. 한적한 시골 풍경과 예쁜 카페로 유명한 태국 빠이. 이동 편이 마땅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렌트한다. 


근교를 구경하던 어느 날. 우린 지나가는 차량을 피해 길 한켠 주차 구역에 섰다. 나와 B의 거리는 1m. B의 등뒤에 있던 차량이 움직였다. 그리고 '툭'. 차가 계속 움직였고 B는 밀려났다. 난 다급히 트렁크를 내리치며 '스톱'을 외쳤다.


차가 멈춰 섰다. 하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그저 차 안에서 멀뚱 멀뚱 거리며 얘기하기 바빴다. 운전자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창문을 두드렸고, 내리라는 사인을 보냈다. 


두명의 여성이 내렸다. "난 중국인이고, 영어 못해" 운전자가 영어로 정확하게 말했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동승자는 "어디 부러졌니? 아니야? 그럼 괜찮은거네?! 차가오면 피해야지 왜 거기 있냐" 


영어·태국어·중국어를 구사했다. 사건의 해결사인가. 한술 더 뜨는 모습이다. '신박한건가 ? 아님 천박한건가?' 이정도면 또라이 검정능력평가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을 것이라고 본다. 


"우린 너희가 차에 타기 전부터 이곳에 서 있었다. 넌 누군데 이런 식으로 말하냐. 운전한 사람은 왜 말이 없고 왜 사과조차 하지 않냐..." 차에 치인 사람은 있는데 차를 몬 사람은 없는 모양새다. 


분위기가 가라 앉자 운전자는 해결사 뒤로 숨었다. '어떤 시험을 보고 운전 면허증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감독관의 잘못인가?!' 그들을 보며 떠올랐다.


더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차량이 사람을 친 사고다. 병원행을 요구했다. B는 기본적인 진료와 방사선 촬영을 진행했다. 


"뼈에 문제가 없지만 교통사고 특성상 후유증이 있을 수 있고 통증이 증가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는 해결사 비릿한 웃음을 날렸다. "의사가 이상 없다고 하니깐 됐지? 진료비는 우리가 계산했어" 표정과 말투는 '어디서 거지 같은 것들이 돈을 뜯으려고 수작이야'였다. 


병원을 빠져 나왔다. 가해자에게 연락처를 요구했다. 사고 후유증을 고려한 조치였다. "우리 연락처는 못 주니 너희 연락처 줘" 해결사는 우리의 신분증을 요구했다. '말이야 방귀야. 우리가 피해자고 다친 사람인데' 사고 회로가 궁금하기 시작했다.


길바닥에서 아웅다웅하길 십여분. "그냥 경찰서 가자" 나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해결사는 바삐 움직였다. '너흰 이제 딱 걸렸어'라는 표정으로.  


낡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안녕하세요. 도움이 필요한데요" 영어로 말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뒤 늦게 나타난 경찰 한명이 본인이 직원 중 유일한 영어 가능자라고 설명했다.


시작부터 불길했다. '침착하자. 천천히 잘 설명하면 될거야.' 사건 경위서를 쓴다고 종이와 펜을 준비하는 모습에 몸을 떨었다. 경위서는 태국어로 작성됐다. 


아라비아 숫자인 0과 1 조차 태국어 '영'과 '일'로 쓴. 그들이 사건 경위서에 '너희는 바보 멍청이'처럼 전혀 다른 얘기를 써도 알 방법이 없었다.


태국어로 진술하는 해결사는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에게 유리한 설명을 이어나갔을테니. 아마도 저 입꼬리는 '내가 이겼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근데 멀쩡히 서 있던 사람을 차가 친거다. 신나게 설명하던 해결사의 얼굴이 경찰의 말 몇마디로 흙빛으로 변했다. '그래. 어느 나라가 됐던 이건 아니지' 경찰이 중재에 나섰다. 


가해자의 연락처와 이름을 받은 뒤 경찰서를 나섰다.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가해자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영어를 못한다는걸 유창하게 영어로 말한 사람이. 


더이상 상종하고 싶지 않은 그들을 뒤로 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B의 뭉친 근육을 풀어줬다. 시간이 지나며 씁쓸한 기억과 함께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또한번 '여행'이 '요양'으로 바뀌었다. 이마에 밭고랑이 생길 정도로 미리 걱정하고 대비해도, 상상 밖 일들이 발생하는 '우당탕탕 여행'을 다녔지만 그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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