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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Feb 15. 2022

사탕 공장

단편소설 7 화

 송 약사는 개인주의를 존중했다. MZ 세대를 이해하려 했다. 쿨-한 삼십 대 선배가 되기를 원했다. 물정 모르는 어린 후배에게 이것저것 일렀다. 주저리주저리, 눈앞에 놓인 산을 설명했다. 개국 일정을 이야기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약국을 차릴 예정이라며.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고.

 온화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송 씨가 어떤 약사인지 하등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무사히 오 주 끝내길 원했다. 사십 분은 오롯한 시간이길 바랐다. 아무도 식사에 말을 얹지 않고, 나른한 정오에 마른반찬을 우물거리고 싶었다. 염원은 출근 셋째 주에야 이루어졌다. 느린 쾌거였다.


 온화는 검수를 배웠다. ‘삼 검’을 한댔다. 세 번 검수한다는 의미였다. 첫 번째 검수는 직원이 맡았다. ATC에서 나온 약을 빠르게 훑었다. 모양이나 색깔이 다른 약이 들었는지 대강 확인했다. 중간에 빈 포가 끼였는지 보았다. 아침끼리, 저녁끼리. 용법대로 약포지를 절단했다. 둘둘 말아 약사에게 전달했다.

 약사는 두, 세 번째 검수를 맡았다. 두 번째 검수는 가장 중요하댔다. 본 검수라고도 불렸다. 세 번째 검수는 정신없댔다. 복약지도 CCTV 아래서 했다. 두 번째만큼 약을 꼼꼼히 확인하기 어렵댔다. 송 약사는 퉁퉁한 어깨를 으쓱거렸다.

 ― 제대로 하세요-옹. 틀리지 않게 진행해야 해요-옹.

 말끝마다 콧바람이 붙었다. 혼잣말에도 비음이 섞였다. 송 약사 주변은 온통 소리였다. 온화는 두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본 검수를 시작했다. 조제된 약과 처방전을 비교했다. 일수를 확인했다. 성분과 용량이 옳은지, 약 모양과 색깔로 판단했다. 네 포 정도 살피면 적절했다. 송 약사는 쉬운 방법을 알렸다. 맨 앞 포 약을 한 알씩 검수한 다음, 다른 포수는 색과 형태 위주로 훑는 식이었다. 노란 정제 세 알, 흰 정제 두 알, 초록 캡슐 하나. 첫째 날 약과 똑같네. 맞겠네, 했다.

 사탕 공장 같았다. 솜사탕 색 낱알이 알록달록했다. 흰 알을 배경으로 연분홍, 연노랑, 연두, 드물게 연하늘색이 빙글빙글 돌았다. 동그랗거나, 둥글 길쭉하거나, 다이아몬드 모양을 닮았거나, 각이 다섯이거나, 하트나 뼈다귀 모양인 여럿이었다. 포장지 안에서 조화롭게 굴러다녔다. 캡슐도 정제 못지않게 다채롭고 영롱했다. 꿀 빛 연질캡슐은 반투명하게 반짝였다. 꾹 누르다 푹 터뜨리고 싶었다. 배고플 때는 한 움큼 쥐고 입에 털어 넣을 뻔했다.


 양 약사는 똑딱댔다. 괘종시계 추처럼 흔들렸다. 늦은 출근, 이른 퇴근 사이를 오갔다. 아이 아침을 챙겼다. 학교에 보냈다. 출근했다. 삼십 분 늦은 시각이었다. 오전 근무만 맡았다. 온화가 점심을 마치고 양치를 할 즈음이었다. 갈 때였다. 도돌이표 같은 점심을 챙기러, 집으로. 온화는 양 약사를 배웅했다. 철없는 부러움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 일찍 퇴근하시네요. 좋겠다.

 ― 지금부터 진짜 출근이죠. 스무 시간.

 약국 밖을 보는 동공이 공허했다. 양 약사는 일하는 시간이 더 좋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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