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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단 Nov 03. 2022

깨발랄한 젤리 세상으로의 초대

<하리보 골드베렌 100주년 생일 기념전>


하리보 골드베렌 100주년 생일 기념전


전시 기간: 2022년 10월 13일 ~ 2023년 3월 12일
관람 시간: 오전 10시 ~ 오후 8시
(입장 마감 오후 7시)
전시 위치: 안녕인사동 B1 인사센트럴뮤지엄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49 B1)



쫀드기, 쥐포, 달고나, 피카츄, 마시멜로, ... 온갖 군것질이 초등학교 인근을 휩쓸 무렵 나는 우직하게 컵 떡볶이만을 고집했다. 그리고 초코 시럽이 가운데에 진하게 들어찬 100원짜리 초콜릿 과자. 뭐든 뒤늦게 배운 게 제일 무섭다지 않은가. 군것질의 묘미를 깨달은 건 20대가 훌쩍 지나서였다. 워낙 간식거리 사는 습관이 없다 보니 소비 패턴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할 무렵, 타인의 말을 통해 알았다. "언니 하리보 잘 먹던데요."


그래서였을까.

입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리보 골드베렌 하나씩 쥐여준다는 말을 보고 덜컥, 가고 싶어졌다.



'grown-ups love it'


늘 받자마자 뜯어먹느라 몰랐는데, 포장지엔 나의 현주소를 꿰뚫은 문장이 적혀있기도 했다. 전시를 다 관람하고 나니 다른 한 가지도 눈에 띈다. 'The original since 1922'. 숫자가 왠지 친근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그러니까 1세기 전에 탄생한 게 하리보 골드베렌이다.


'하리보'라는 브랜드가 생겨난 건 이보다 2년 빠르다. 관련해서 잠시 비하인드를 읊자면, 전시 기획도 하리보 탄생 100주년에 맞춰서 2년 전인 2020년에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때가 무슨 해인지 알 거다. 미세먼지와 상관없이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된, 코로나의 본격적으로 퍼지던 때다. 엄격한 규제와 살벌한 분위기 앞에서 전시를 추진하는 건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골드베렌의 100주년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젤리의 특성을 살린 것인지 팸플릿의 재질이 매끈하다. 왠지 모르게 광택이 흐르기도 하고. 하리보 월드라는 명칭에 걸맞게 테마파크 분위기로 전시장이 소개되었다. 하리보 스토어를 포함하여 9가지 섹션으로 나뉘었다.


인사센트럴뮤지엄은 규모 자체가 큰 편이 아니라서 1시간~1시간 30분 이내에 모든 곳을 둘러보기 충분하다. 하지만 전시 끝으로 갈수록 생각보다 시간을 지체할 수 있다. 게임은 물론 트램펄린(!)까지 있어서 완전히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조금 더 자세히 전시 내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를 즐겼던 세 가지 방식으로 소개해 본다.




1. 깨알 같은 재미

AR 앱을 통해 곳곳에 숨겨진 골드베렌을 찾는 것도 쏠쏠하지만, 전시장 벽에서도 은근한 재미를 느꼈다.



이외에도 다른 종류의 영화 포스터를 서너 개는 더 보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 포스터를 젤리로 바꾸니 왠지 우습기도 하다. 왼쪽의 사진을 보고는 조금 놀라기도 했다. 기다란 머리카락-빨간색 젤리, 모자-초록색 젤리. 두 조합으로 각각 어떤 성별인지 한눈에 그려졌다. 동심의 세계로 물든 이곳에서 사회의 일반적인 시선을 새삼스럽게 되새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패러디가 목적이란 걸 알아서 일단 웃어넘겼지만.



다음은 깨알이라기엔 생각보다 큰 재미, 트램펄린 존이다. 팸플릿 내 명칭으로는 '원더풀 카니발'과 '메가 파티 스테이션'이지만 트램펄린이 제일 재밌었다. 이건 나만 느낀 것이 아닌지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현장 사진을 찍지 못하는 바람에 자료 사진으로 대체해 본다.


HARIBO TM & © 2022. HARIBO Holding GmbH & Co. KG.


왼쪽이 트램펄린을 팡팡 뛰면서 젤리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던 곳, 오른쪽으로 보이는 세 개의 기계는 게임들이다. 마치 오락실에 온 것 같은 분위기라서 가장 생일 파티다운 섹션이 아닐까 싶었다. 인사센트럴뮤지엄의 전시는 이전에도 몇 번 가봤는데 항상 공통된 인상을 받는다. 바로 미디어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존을 재치 있게 구성한다는 것.


또, 게임하는 곳으로 가기 전,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하리보 스퀘어도 언급하고 싶다. 가판대에서는 예전에 하리보 젤리를 어떤 식으로 팔았는지 보여준다. 하리보 캐릭터가 담긴 비닐봉지며 하리보 젤리가 칸마다 들어간 굿즈, 틴케이스 등 다양한 물품 중에서도 단연 '콘'이 눈에 들어왔다.



꽃다발 같기도 하다.


하리보 본사 내부에서만 볼 수 있던 영상물에서도 한 아이가 저 꽃다발 같은 콘을 들고 나선다. 지금의 네모 반듯한 정사각형 모양도 좋지만, 바스락대는 종이로 감싼 1900년대 초중반 고유의 느낌이 있는 듯하다. 왠지 모르게 알초밥이 연상되기는 해도.


이어서 미용실, LP 숍, 카페 등 젤리들이 움직이는 테마 영상은 귀엽기 짝이 없다.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 젤리가 무얼 하는지, 저 젤리는 또 어떤 걸 하는지 하나씩 톺아보았다. 하리보는 정말 어린아이들 못지않게 어른들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맞는 것 같다. 꼬꼬마 친구들은 의외로 가벼이 지나가는데 다 큰 어른들이 이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중 한 명이 나였고.



2. 예상치 못한 재미 (다소 놀람 주의)

이렇게 귀여운 것만 같은 하리보 젤리들엔 반전이 숨었다.



그렇다. 자세히 보면 왠지 모르게 무섭다. 사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흠칫할 만큼 의외의 비주얼이었다. 손가락 한 마디보다도 작은 크기라 그런지 막연히 동글동글한 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건 독일 특유의 감성일까, 아님 독일 사람들도 다소 섬뜩하다고 느낄까. 궁금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젤리, 잘 모르던 젤리를 통틀어서 자세히 볼 수 있던 퀄리티 연구소. 특히 연구소 콘셉트인 작은방은 돋보기로 젤리 모양을 아주 세세히 볼 수 있었다. 달걀 프라이 모양은 자세히 봐도 달라질 건 없었는데 좋아하는 맛이라 그런지 찍어왔다. 물론 이곳에서도 의중을 알 수 없는 신기한 젤리 모양새가 있었다. 이런 건 현장에서 감탄사만 뱉었을 뿐 찍지 않았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할 생일 파티 포스터.



이 몬스터들은 하리보 월드에서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하필 조명 색도 심상치 않아서 더 살벌하게 찍혔다. 축제 분위기이던 100번가 곳곳에 붙어있어서 괜히 최근에 본 영화를 떠올렸다. 앞서 소개했던 젤리들의 영상 중에서 <놉>의 한 장면과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어 혼자 흠칫 놀랐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전시회를 보며 공감할 수도 있겠다.



이제 분위기를 바꾸어 다른 재미 이야기로 넘어가 본다.



3. 알아가는 재미


'생일 축하'라는 키워드에 맞게 알록달록하고 유쾌한 분위기에 놀 거리 위주이긴 해도 중요한 포인트는 다 챙긴 전시다. 골드베렌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젤리 제작 과정을 간단하게나마 볼 수 있다. 놀라운 건 석고판을 직접 깎아서 젤리 틀을 만든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은 이보다 기계화가 되긴 했어도, 석고틀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한 것 같다.



위 사진의 석고틀을 활용해 젤리 모양대로 움푹하게 판을 만들고, 그 빈 공간을 색색의 글루텐으로 채운다. 어릴 때 좋아했던 얼려 먹는 초코 만들기가 떠오른 모양새였다. 석고로 젤리 틀을 만들어서 대량생산을 시작한 건 하리보가 처음이었을까. 조금 더 자세한 히스토리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한다.



하리보=젤리 회사이긴 해도 사회 환원에 관심 없는 건 아니다. 2009년에 하리보 레이싱팀이 따로 있을 정도로 스포츠팀을 성실하게 후원하고 지지했다. 우리는 스포츠 직관할 땐 치킨과 맥주, 과자 정도를 떠올린다. 만약 하리보가 우리나라 브랜드거나 이보다 빨리 들어왔더라면 일찍이 젤리 먹으며 스포츠 관람하는 게 문화로 자리 잡았을까.


하리보 캐릭터로 된 스포츠들을 보자니, 올림픽 마스코트를 해도 충분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장난처럼 했던 생각인데 곱씹을수록 괜찮을 것 같다.


이외에도 하리보를 활용하여 예술 작품을 만든 섹션도, 하리보 굿즈로 넘쳐나던 하리보리안의 방도 있다. 거울에 서면 자신과 어울리는 색의 하리보를 보여주는 곳도, 하리보 젤리가 나고 자란다는 신비로운 숲까지. 글과 사진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전시장에 많다.


굿즈 숍이 전시장의 일부라고 동선에 넣었다는 건 그만큼 특별한 게 있다는 의미일 거다. 하리보 스토어에서만 볼 수 있는 한정 상품들이 곳곳에 보였다. 키링, 틴케이스, 펜, 렌티큘러 엽서 등등. 다양한 제품군을 다루고, 전시 관람 없이 스토어 구경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인사동에 갈 일이 있다면 겸사겸사 구경해 보는 것도 좋겠다.



1시간 동안 짧고 강력한 테마파크에 놀다 온 느낌이다. 인사동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젤리 세상에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초대권을 받아 관람 후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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