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소설의 한 문장이라면 좋았을 문장이 현실이 되었다.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물리적 무게감을 갖고 내려앉았다.
항암치료를 하면 1년에서 2년 더 사시고 치료를 받지 않으면 3개월이라고 했다. 3개월과 1, 2년 사이라는 숫자 중에 답이 있다면 선택은 확실할 텐데. 그 3개월과 1, 2년 사이의 고통이 문제였다. 마약성진통패치를 붙이고 고통을 움켜쥐고 있는 엄마에게 답은 더 어려웠다. 당장 결론은 어려웠지만 당장 항암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당장 병원에서 퇴원을 해야 했다.. 엄마는 혼자 배를 움켜잡고 괴로워했던 집으로 돌아가기를 싫어하셨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차이도 모르는 형제들은 우왕좌왕했다. 동생은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간다고 했지만 그 집에는 고3과 중2 짜리 조카가 있었다. 오빠 집은 병원에서 너무 멀었고 엄마가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셨다.
"엄마, 저희 집 가실래요?"
엄마가 대답대신 미소를 지었다.
병원에서 멀고 먼 순천 집에 가자는데 엄마가 좋아하셨다. 의사에게 위험성을 물었고 의사는 일주일 정도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다. 엄마는 순천에 내려오시는 내내 편안해 보였다. 차 창문을 열고 바람에 바싹 마른 몸을 맡겼다. 눈을 감고 바람에 흔들리는 엄마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건너다보았지만 하얀 안개만 자욱했다.
엄마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다. 식사도 잘하셨다. 여든 살이 넘으셨지만 틀니는커녕 임플란트 하나 없는 튼튼한 치아였다. 연어회, 광어회, 전복회까지 조금씩이지만 잘 드셔주었다.
하지만 고통은 하루하루 짙어졌다. 가슴이, 등이 아파 죽겠다고 하실 때면 엄마 등 뒤에 앉아 등과 팔, 다리를 주물렀다. 팔보다는 마음이 아파 눈물을 삼키고 삼켰다. '푸우, 이제 살 것 같다.' 엄마 말 한마디에 등을 문지르던 한 시간여의 무게가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야금야금 고통은 제 몸을 부풀려 갔다. 등을 문지르는 시간은 길어졌고 횟수가 늘어갔다.
하루는 엄마가 식사를 하시고 침대에 누우며 나에게 물었다.
"다른 데도 이상한 거 아니야. 다른 데도 아프다. 좋아지기는 한다냐? "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한테 제대로 상황 설명을 한 거야?"
"어."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지?"
"엄마한테 약이 독한가 보지."
"간 전이된 거랑 제대로 말한 거 맞아?"
"내가 도대체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데?"
동생이 화를 냈다. 2주 동안 병원에서 엄마를 쫓아다니며 수발을 들고 아무 예고도 없이 엄마의 검사결과를 들어야 했던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에게 난 제대로 의사 말을 전했느냐고 다그치고 있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울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친구는 딸인 내가 독해져야 한다고 했다. 사심 없이 정확하게 말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나밖에 없다고 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의 말을 내 입으로 전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말만 하고 싶었다. 거짓말이라도 좋아질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를 위해서 내가 독해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약성 진통 패치를 교환한 날, 엄마가 말했다.
"네가 점점 안 아파진다고 했는데 왜 점점 더 아파지냐?"
울컥. 화가 났다.
"나,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엄마가 흐릿한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내 속의 마음이 독하게 이를 물었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와 받지 않을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3개월이라는 말씀은 드리지 못했다. '몇 개월'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자동차 뒤에서 목을 덜렁거리는 강아지 인형처럼 고개를 돌렸다. 나는 방을 뛰쳐나왔고 한참을 울었다. 그 사이 할머니를 보러 온 둘째 딸이 엄마 등을 문질렀다.
울음을 그치고 찬 방바닥에 누워 일기를 썼다.
어제 버린 숨이
오늘은 살려달라 조른다.
"제발 살려달라고 매달리라고 했어."
구차할까? 두려워서였을까?
치과의사였던 친구의 입을 빌려 엄마가 토해놓은 말이 온몸으로 스며들더니 온몸을 쪼갠다.
살려드릴 수 있다면 하겠죠.
살려드릴 수 있다면...
엄마.
그 방법을 아신다면 가르쳐주세요.
좋은 교육방법은 아이에게 명령하는 게 아니라 질문하는 거라는데 오늘은 엄마가 명령했으면 좋겠다.
"나를 살려내라."
"그 방법이 뭘까요?"
내가 물으면 엄마가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어릴 적 책상에 앉아 숙제하던 밤처럼.
그리고 정답이 있었으면 좋겠다.
글이란 거, 일기란 거 못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써야겠더라. 백 번 우는 것보다 천 번, 만 번 우는 것보다 한 번 쓰고 나니 그나마 정신이 차려지더라. 글이란 거 써야겠더라. 나를 위해서, 내가 쓰러질까 걱정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엄마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