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애완동물이라니, 이제는 반려동물
'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10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관련 시장 규모도 2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고령화, 1인 가구 급증 등이 기폭제가 됐다. 단독주택은 당연하고 아파트, 심지어 원룸에서도 많은 사람이 동물과 동거한다. 단순히 인구수만 늘어나고, 시장만 커진 것이 아니다. 과거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동물'을 '펫(Pet)' 또는 '애완동물'이라 부르며 '소유물'이나 '살아있는 장난감' 정도로 여기는 것은 어느새 먼 옛날 일이 됐다. 이제는 미국에서 부르는 '컴패니언 애니멀(Companion Animal)'을 번역한 '반려동물'이라 부르는 것이 일반화하고 있다. 예전처럼 '(동물을)기른다'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마치 자식을 대하듯 '(동물을)키운다'고 한다. 심지어 '(동물과)함께 산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반려동물 인구가 급증하고 관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일컫는 말'이 달라져도 '반려동물 문화'는 여전히 '수준 미달'이자 '함량 부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일부이지만, 반려견에게 인스턴트 식품(사료)을 먹일 수 없다며 매일 아침 갓 만든 전용식을 배송받아 먹이고 주기적으로 전용 스파에 데려가 휴식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이와 정반대로 TV에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귀여운 모습에 반해 반려견을 키우기 시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싫증이 나거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라자 낯선 곳에 이를 몰래 버리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 반려동물 붐은 1990년대 경제 성장과 핵가족화로 시작해 2000년대 초·중반 크게 일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국내에서도 반려동물 위기가 일어났다. 유기견(遺棄犬), 유기묘(遺棄猫) 등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했고, 관련 산업은 극심한 불황을 겪었다.
지금처럼 반려동물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는 데 발맞춰 문화가 성숙하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는 앞으로 국내에서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 반려동물 붐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반려동물 문화의 정착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짚어본다.
#1.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사는 회사원 최민지(28여)씨는 지난 4월29일부터 5월1일 '근로자의 날'까지 2박3일 동안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 라마다 인천 호텔에서 묵었다. 반려견인 포메라니안종 몽실이(2.수)와 함께였다.
호텔에 어떻게 반려견을 동반했을까. 이 호텔이 '사랑하는 반려견을 위한 힐링 여행'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러브 펫 패키지'를 선보인 덕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가운데 반려견과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을 겨냥한 숙박 상품이다.
룸 명칭은 '도기 파라다이스'. 이름 그대로 반려견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구비됐다. 자작나무 원목으로 만든 반려견 하우스, 식기 등을 비롯해 반려견용 편백나무 욕조, 음이온·근적외선·아로마 테라피 등이 가능한 붐펫 드라이룸 등이 그것이다. 웰컴 선물로 호텔 측으로부터 반려견 장난감, 수제 간식, 천연원료 애견 목욕제품 브랜드 '아인솝'의 애견 비누와 입욕제도 받았다.
룸 타입은 스위트, 프리미어, 디럭스, 스탠더드 등 네 가지가 있는데 가장 저렴한 스탠더드 룸(주말 기준 19만9000원)은 3개가 이미 모두 나가 디럭스 룸에 묵어야 했다. 1박 22만원씩 2박해 44만원이나 들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최씨는 "그동안 여행을 떠나면 몽실이만 두고 가야 해서 미안했는데 이번에는 몽실이와 함께 인천 여행도 하고 호텔에서 휴식도 하며 즐겁게 지냈다, 인천 지역 맛집에는 몽실이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호텔 옆에 소래포구 어시장에서 회를 떠나 호텔에서 먹을 수 있어 좋았다"며 "반려견과 투숙할 수 있는 호텔이 더 많아져 몽실이와 전국을 여행하고 싶다"고 전했다.
#2.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사업가 정만규(53)씨는 '딸' 지나와 함께 산다. 딸은 나이가 '28살'이나 됐지만 그가 귀가하면 달려와 안겨 뽀뽀하고, 늘 그의 품에서 잔다.
아니 과년한 딸과 그 무슨 황당한 짓인가 하겠지만, 사실이다. 다만 지나는 사람이 아니라 스코티시 폴드종 반려묘이긴 하다.고양이가 개보다 오래 산다고 해도 28살까지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28살이라는 나이는 사람 나이로 환산한 것으로 실제 나이는 3살이다.
하지만 그는 늘 사람들에게 지나를 딸이라 소개하면서 28살이라고 말한다.정씨는 사실 비혼이다. 하지만 50평대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것이 처량해 보였는지 사촌 누나가 선물해줬다. 반려견을 키우고 싶었으나 사업차 해외출장이 잦아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관리하기 좀 더 쉬운 반려묘를 선택했다.고양이가 외로움을 덜 탄다고 하지만 예외는 있는 모양이다.
정씨가 집에 오면 너무 반가워하고 절대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물론 반려견보다 눈치가 있어 정씨가 바쁜 듯하면 살짝 피했다 조금 한가해지는 듯하면 다시 가까이 온다. 그런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정씨는 지나를 위해 많은 것을 해주려고 한다.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해주는 것은 물론, 해외출장을 가면 현지에 있는 펫숍에 꼭 들러 영양제나 장난감을 사 온다. 국내에서도 최근 반려묘가 급증하면서 관련 상품들도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 쓸만한 것이 부족하다고 느껴서다.
이달 중에는 새로운 캣타워를 설치해줄 생각이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것 중에는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해외 사이트를 뒤져 겨우 찾아내 직구를 신청해놓았다. 정씨는 "지나를 키우면서 어렸을 때 섣불리 중성화 수술을 해 손자를 볼 수 없게 된 것이 너무 아쉽다"면서 "대신 지나가 살아있는 동안 친딸처럼 잘해줄 생각이다. 지나는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요즘 단독주택은 다섯 집 가운데 한 집, 아파트는 두 층 걸러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가정이 있다고 할 정도로 반려동물이 붐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반려동물 가구는 전국적으로 약 457만 가구에 달한다. 보통 한 가구의 구성원을 4인으로 보므로 반려동물 인구는 1900만 명이라 할 수 있지만, 반려동물의 경우 1인 가구에서 키우는 비중이 높은 만큼 보수적으로 계산해 절반 남짓한 1000만명으로 추산할 수 있다.
덕분에 관련 산업 규모도 지속해서 커져 지난 2012년 약 9000억원에서 3년 만인 2015년 약 1조8000억원으로 두 배가량 성장했다. 올해는 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020년 5조8000억원 규모를 형성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까지 나온다.
과거 수입품에 의존하거나 영세 업체들이 소량으로 내놓는 것이 전부였던 반려동물 용품 시장에도 대기업이 앞다퉈 뛰어들어 상품을 내놓고 있다. LG생활건강, 애경 등은 샴푸, 컨디셔너, 미스트 등 반려동물 케어 용품을, CJ제일제당, 풀무원은 반려동물용 사료를 각각 생산, 판매 중이다.
성장 정체에 처한 대형마트들도 새로운 먹을거리로 반려동물을 주목했다. 신세계 이마트는 지난 2010년 '몰리스'를, 롯데마트는 '펫가든’이라는 카테고리 킬러형 매장을 각각 운영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편의점 업계도 앞다퉈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동물병원들의 경쟁도 더욱 격화하고 있다. 서울 시내 곳곳에는 2차 진료기관을 표방한 대형 동물병원들이 앞다퉈 문을 열고 있다. 이들은 컴퓨터 단층 촬영(CT) 장치나 자기 공명 영상(MRI) 촬영장치를 도입하고 있고, 서울 중구 충무로 윤신근애견종합병원처럼 하모닉 제너레이터300·엔실 RF60·서지트론 4.0 등 사람 병원에도 없는 첨단 의료기기를 활용해 수술 시 동물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극소화하고 있는 개인 동물병원까지 생겼다.
서울대 동물병원이 지난 2015년 11월부터 반려동물병원을 증축하고 있는 이유도 날로 증가하는 수요를 잡기 위해서다. 증축이 끝나면 현재의 약 3배인 연면적 5667.6㎡가 돼 더 많은 반려동물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 국내 최초로 ICT(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진료시스템을 갖추게 되는데 이를 이용하면 입원한 반려동물의 위치와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호자에게 알려주고, 의료진과 집으로 돌아간 보호자가 간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 건강증진센터, 국내 최초 방사선 암 치료 시설도 갖추게 된다.
반려동물 문화·산업 평론가 제이 김씨는 "현재의 반려동물 붐이 지속해서 이어진다면 저출산·고령화로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대한민국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국내 반려동물 관련 지출액의 70% 가까이를 여전히 동물병원 진료비가 차지한다는 사실은 문제다. 그만큼 진료비에 거품이 잔뜩 끼었다는 의미라 볼 수 있는 탓이다. 유기동물 발생에도 과중한 진료비가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만큼 그에 대한 정부 차원의 한 대비책과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