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돌이빵 Jun 26. 2021

쓰기 덕후의 끝판왕은?

타자기 써보셨나요


인터넷에 글을 업로드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종이로 인쇄된 것을 만날 일이라고는 책밖에 없다.


나는 보통 블로그나 브런치에 다이렉트로 글을 쓴다. 각각의 플랫폼에 자동 저장되어 웹하드처럼 이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들이는 글은 워드를 쓰는데, 가끔 출력해서 보면 느낌도 다르고 오탈자도 잘 보인다.

 

모니터는 가로길이가 더 길지만 인쇄한 종이는 세로가 더 길기에 한 페이지에 다 들어오지 않기도하고, 만질 수 있게 된 글이 쓰어진 종이는 접히기도 하고 휘어지기도 해서 정말 소유하는 기분이다.




이 시대 최고의 글쓰기 도구라면 역시 컴퓨터다. 모든 입력을 다 받아서 저장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니까. 하지만 컴퓨터로 쓴 글을 출력하기 위해서는 프린터에 연결해야 한다. 모니터는 글씨를 입력받아 화면에 출력해주지만 인쇄물로 소유할 수는 없다.


컴퓨터가 보편화되기 훨씬 전에 입출력이 모두 합쳐진 기계가 등장했는데, 바로 타자기다. 1960년대 타자기의 가격은 지금의 100만 원에 육박했을 정도였다.


키보드는 모니터에 우리가 볼 수 있도록 글씨를 입력하는 입력 장치에 불과하지만 타자기는 키보드와 글을 쓰는 공간, 프린터를 모두 합쳐 놓은 시스템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저장이 되지 않는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처럼.


타자기의 원리는 간단하다. 자판을 누르면 자판과 연결된 글자 막대가 튀어 올라오고, 글자 막대와 종이 사이에 있는 먹지 리본이 눌려 종이에 글씨가 찍힌다. 전원도 필요 없고 타자기 딱 하나만 있으면 종이에 인쇄된 활자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자판을 누르자마자 종이에 바로 새겨지기 때문에 삭제도 수정도 할 수 없다. 너무 살살 누르면 적은 압력으로 먹지가 눌려 희미하게 나오고, 반대로 너무 세게 누르면 진해서 뭉개지기도 한다. 게다가 초성, 중성, 종성을 자동으로 인지하는 컴퓨터와 다르게 내가 이 자음을 받침으로 쓰는지 모르기 때문에 알려주어야 한다.


'곰돌이빵'을 쓰려면 ㄱ+Shift+ㅗ+ㅁ+ㄷ+Shift+ㅗ+ㄹ+ㅇ+ㅣ+ㅂ+Half space+ㅂ+Shift+ㅏ+ㅇ라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하프 스페이스 키도 활용해야 하고 이중 자음 받침을 쓰는 키도 따로 있을 정도로 복잡해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이에 타자 속도를 높이기 위해 나온 키보드가 4벌식이다.


타자기가 보편화된 1970년대에서 50여 년이 지난 2021년에 나는 타자기를 집에 들였다. 일정한 압으로 받침까지 생각해가면서 치자니 오타를 막을 수 없었다. 평균 700타는 자랑하던 내가 독수리 타법으로 칠 줄이야. 결국 몇 개의 문장을 한 종이에 완성하기 위해서 종이를 10장 이상 버려야 했다. 오타 없이 출력하기 위해 종이를 더 낭비한 셈이다. 하지만 고칠 수 없는 매력이기에 더 소중하고 신중하게 치게 된다.


내가 타자기로 오타 없는 말끔한 글을  장의 종이에 뽑아냈다면 그것을 위해 수많은 B, C컷이 존재했다는 얘기다. 지금도  완성된 하나의 글을 뽑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백스페이스와 마우스는지 모르겠다. 타자기의 존재는 나에게 그동안 보이지 않던 B컷과 C컷의 존재를 알아채게  주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는 오늘로 막을 내립니다. 한 주 한 주 마감을 하면서 선을 긋기 위해 글감을 찾느라 분주했습니다. 하지만 사물도 생각도 전보다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비슷하게 보이던 것들을 작가님마다 참신한 시선으로 선을 긋는 모습, 어떠셨나요?


6월 28일부터는 남편에 대한 공감 에세이, 새로운 공동 매거진 <남편이라는 세계>가 이어집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 기울여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은 그렇게 글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