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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권 그림책 아카이브
By 에디터C 최혜진 . Jul 16. 2017

토미 웅거러의 시간 속으로

기원전(B.C)과 기원후(A.D)를 구분짓는 것은 예수의 탄생이다. 프랑스 그림책 역사에도 이런 분기점 같은 존재가 있다. 이전까지 존재하던 아동도서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시킨 혁명적 작가 토미 웅거러의 생애를 살펴본다. 


ⓒ Photo Musées de Strasbourg, M. Bertola
ⓒ Photo Musées de Strasbourg, M. Bertola
ⓒ Photo Musées de Strasbourg, M. Bertola
ⓒ Photo Musées de Strasbourg, M. Bertola


“내가 그림책을 만들며 무언가를 의도했다면 아마 이 두 가지일 것이다. 
먼저 아이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그 다음, 생각의 충격을 추기 위해. 
터부시 되던 주제, 전형적이었던 표현을 뒤엎어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흔히 악당으로 등장하는 강도나 괴물이 알고보니 심성이 여리다거나, 착한 존재로 알고 있던 순한 동물들에게도 의심할 여지가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 토미 웅거러


1931년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약 70여권의 그림책을 발표한 (그 중의 절반은 직접 이야기를 짓고 글을 썼다.) 대작가 토미 웅거러. 프랑스와 벨기에 등 불어권 국가에서 일러스트레이터들과 인터뷰를 할 때, 영감과 영향을 준 작가로 꼭 빠지지 않고 이름이 언급되는 신화적 존재다. 

일례로 얼마 전 <펭귄 365><왜 이래요 왜 이래><똑똑한 동물원> 등을 지은 프랑스 작가 조엘 졸리베(Joelle Jolivet)를 만나 인터뷰 했는데, 그녀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게된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15세 무렵이었을 거예요. <100 idees>라는 문화 잡지가 있었는데 그 잡지 안에서 토미 웅거러에 대한 기사를 발견했어요. 오려서 벽에 붙여두고 계속 읽었던 기억이 나요. 특히 1981년 파리 장식미술관(lMusee des Arts decoratifs de Paris)에서 했던 그의 전시회에서 ‘이 길이다!’ 하고 명확하게 꿈을 정했어요. 어린이 책도 책이지만 그가 한 포스터 작업, 광고물 디자인 등에서 더 영감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전시장 벽에 ‘technique mixte(혼성기법)’이란 단어가 적혀 있었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얼마나 멋지게 느껴지던지요.” 


토미 웅거러가 후배 작가들에게 이토록 큰 영향과 울림을 남긴 이유는 뭘까. 그의 무엇이 이토록 특별한 걸까.  



4세 때 그림 포함 8천여점 작품 소장


토미 웅거러의 고향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박물관은 2007년 11월 개관했다. 1975년 스트라스부르 박물관(Musees de Strasbourg)에서 회고전을 열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토미 웅거러는 자신의 고향인 스트라스부르에 매해 작품은 물론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책, 사진, 장난감 등을 기증했다. 시간이 쌓여 기증품은 직접 그린 스케치와 원화 등 작품만 8천여점, 20세기 디자인사가 고스란히 담긴 개인 컬렉션 물품이 1천5백점에 육박하게 됐다. 

이중에는 토미 웅거러 어머니인 알리스 웅거러(Alice Ungerer) 여사가 선견지명으로 버리지 않고 모아둔 작가의 4세 때 낙서들이나 제2차 세계 대전 전쟁을 직접 보고 겪었던 유년기에 그린 전쟁에 대한 풍자화까지도 섞여 있다. 한 작가의 일대기와 예술관의 변화를 꼼꼼하게 집대성하게 된 스트라스부르 시청은 이 모든 소장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결정, 수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토미 웅거러 이름을 딴 일러스트 박물관을 오픈하게 된 것이다. 


토미 웅거러 박물관은 국립극장(Theatre National de Strasbourg), 국립오페라(l’Opera National du Rhin) 등 주요 문화 시설이 자리한 스트라스부르 시내 중심에 위치해있다. 1880년대 네오 클래식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700제곱미터 크기의 고풍스러운 건물로 크게 세 구획으로 나뉜다. 

먼저 0층은 그림책 작가로서의 토미 웅거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입구에는 작가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상영되고, <제랄다와 거인><곰인형 오토><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엄마 뽀뽀는 딱 한 번만> 등의 원화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 토미 웅거러가 개인적으로 모아온 장난감들과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 더해졌다. 

1층은 광고와 포스터 디자이너, 언론 삽화가로서 토미 웅거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1960~70년대 뉴욕에서 <뉴욕 타임즈><The Party> 등을 위해 왕성하게 그렸던 베트남전과 인종차별 반대 포스터, 사회의 위선을 가차없이 폭로한 풍자적인 원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측은 모든 원화 작품의 전시 일수를 엄격하게 관리한다. 4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빛에 노출될 경우 원화가 손상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4개월에 한번씩 전시되는 작품을 로테이션 하고 있다고. 

마지막으로 ‘Le rez-de-jardin’은 어른들을 위한 공간이다. 토미 웅거러의 예술 세계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는 ‘에로티시즘’을 표현한 작품을 모아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성과 죽음, 기계문명을 결합해 세기말적 이미지를 탄생시켰던 시리즈 <Danses macabres>의 원화들과 웅거러가 평생 모아온 바비 인형들이 있다. 


Musee Tomi Ungerer - Centre  International de l’illustration 

관람시간 : 월~금(화요일 휴관) 12시~18시 / 주말 10시~18시 
관람료 : 일반 4유로, 학생 등 할인 2유로 / 매월 첫번째 일요일 무료 입장, 18세 미만 무료 
주소 : 2, avenue de la Marseillaise, 67076, Strasbourg, Cedex
문의 : 03 69 06 37 27 
홈페이지 : www.musees-strasbourg.org




토미 웅거러라는 이름의 다면체 


토미 웅거러를 ‘어린이용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는 독자라면 놀람을 넘어 어쩌면 배반감까지 느낄지도 모르겠다. 실제 1970년대 미국에선 토미 웅거러가 아이들 책을 만들면서 동시에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포스터, 성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그를 크게 비난하는 여론이 있었다. 베트남 반전 포스터 시리즈 때문에 공항에서 FBI에게 나체 검문을 받는 일도 있었다. 

결국 미국 공공 도서관은 이런 상황에 압박감을 느끼고 그가 만든 어린이 그림책을 모두 퇴출시킨다. 그림책 안에서 허용되는 주제와 감성이 극히 제한적이고 전형적이었던 1970년대 사회상을 반영한 사건. 이런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토미 웅거러가 표현하는 세계의 폭은 넓다. 토미 웅거러는 유명한 그림책 작가이지만, 그림책 작가이기만 한 예술가는 아니다. 


토미 웅거러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토미 웅거러 스토리(Far Out Isn’t Far Enough, 2012)>에서 그는 자신의 유년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자란 알자스 지방은 2차 세계 대전 기간동안 독일 땅에 편입되었어요. 어릴 때 쓰던 알자스어는 모두 금지되어 독일어를 다시 배워야했죠.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는 다시 프랑스령이 되었어요. 그때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게 독일어로 된 서적을 모두 불태운 일이에요. 문학적 가치가 있든 말든 모두 태워버렸어요. 성숙한 문화인으로 알려진 프랑스 사람들이 이랬다는 게 놀랍지 않나요? 전쟁 기간동안 그렇게 독일을 욕하던 ‘우리 편’ 사람들도 결국은 똑같은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무엇을 진짜 선, 진짜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크릭터(Crictor)><아델라이드(Adelaide)><에밀(Emile)><루퍼스(Rufus)><올란도(Orlando)>는 토미 웅거러가 그림책 작가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던 1960년대에 뉴욕에서 그린 작품들로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제목이 모두 주인공 동물의 이름이라는 것. 그리고 이들은 기존에 절대 동화책 속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는 어두움의 상징이자 비주류였던 동물이었다는 점. (크릭터는 뱀, 아델라이드는 캥거루, 에밀은 문어, 루퍼스는 박쥐, 올란도는 독수리다.) 이 동물들이 처음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지만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 불행을 막아주면서 점점 친구가 되고 우정을 나눈다는 스토리 역시 일관되다. 


선과 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작가의 철학은 그의 최고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세 강도>나 <젤란다와 거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마차를 터는 무시무시한 강도가 어느 날 한 소녀를 만나 그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우게 된다는 이야기나 어린애를 잡아먹는 거인이 젤란다의 요리 솜씨 덕분에 음식 맛을 깨우쳐 다시는 아이를 먹지 않고 평화롭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악’이라고 쉽게 배척하는 존재 안에도 ‘선’의 씨앗이 있음을 일깨운다. 


토미 웅거러의 작품 연보를 살펴보면 1974년 발표한 <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와 1996년 발표한 <플릭스> 사이에 긴 공백이 있다. 이 시기는 그가 미국 출판계에서 퇴출 명령을 받고 캐나다를 거쳐 아일랜드에 정착해 자신만의 철학을 더욱 더 발효시킨 시기다. 

<플릭스> 는 고양이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강아지 ‘플릭스’가 유년기엔 고양이 세계에서 따돌림을 당하다가 고난 끝에 강아지와 고양이를 화해시키는 영웅이 되는 이야기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경계인으로 살았던 자신의 체험과 그럼에도 놓치 않았던 인류애에 대한 열망이 담긴 이 작품으로 그는 1998년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le prix Hans Christian Andersen)’을 수상하게 된다. 그 뒤로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작업에 매진해 단 열흘만에 유대인 학살과 전쟁의 시대를 곰 인형의 일대기로 표현한 <곰인형 오토>를 발표하기도 하고, 음악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연주자의 이야기 <트레몰로> 등을 발표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 l’ecole des loisir, Paris

마지막으로 토미 웅거러가 2008년, 그의 오랜 파트너였던 레콜데르와지르(l’ecole des loisir) 출판사의 편집자에게 남겼던 말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내 모든 책은 사실 나를 위한 책이야. 

어린 시절 가졌던 두려움이나 주입받은 왜곡된 관념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나를 도와줬거든. 

내가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요즘 아이들 책은 많이 다양해지고 진지해졌지. 

아마 나같은 작가들이 그 변화에 기여하지 않았을까? 내 책이 지금껏 읽히는 이유는 독자들로 하여금 시대의 전형성과 금기를 뛰어넘게 했기때문 아닐까.”  


*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도서관이야기> 2015년 3월호에 기고한 초고입니다. 최종 게재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글을 쓴 최혜진은 

자발적 마감노동자.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명화가 내게 묻다><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 저자, 계간지 <볼드저널> 콘텐츠디렉터. www.radiohea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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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명화가 내게 묻다>저자, '볼드저널' 콘텐츠디렉터 / www.radiohea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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