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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미술관 여행
by 에디터C 최혜진 Apr 29. 2018

계속 움직일 수만 있다면

여행은 도착하는 순간이 아니라 출발을 결심하는 순간 시작된다. 출발 비행기 편을 예약한 뒤 그곳에서 보낼 시간에 대한 공상을 이리저리 굴리는 시간을 좋아한다. 페르난두 페소아가 《불안의 서》에서 쓴 ‘보르도를 꿈꾸는 것이 보르도 역에서 기차를 내리는 것보다 더 나을 뿐만 아니라, 더 진실에 가깝기도 하다’라는 문장을 실감하는 시간.  


특히 출발 전날, 생선구이 집에서 생선을 발라먹고 난 뒤 보는 접시 위 풍경처럼 배가 반으로 갈리고 속살이 아무렇게나 뒤섞인, 싸다 만 여행 가방을 한쪽에 가만히 둔 채로 여행지에서 들을 음반을 고르는 순간이 좋다. 아직 가보지 않는 도시의 공기 질감, 햇빛, 골목길 등을 상상하며 어울리는 음악을 고를 때면 기대감이 부푼다.  


목적지에 따라 챙겨가는 음악이 달라지는데, 몇몇 음반은 목적지가 어디든 언제나 여행 플레이리스트에 포함시킨다. 이들을 한국에 놓고 나만 훌쩍 떠나는 건 어쩐지 불안하다. 에어(Air)의 ‘Talkie Walkie’, 수지 서(Susie Suh)의 ‘Susie Suh’,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의 ‘The Subrubs’, 제이미 운(Jamie Woon)의 ‘Mirrorwriting’, 샤를로트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의  ‘5:55’와 ‘IRM’이 나의 단골 ‘이동요’다. 이번 북유럽 미술관 여행 중에는 샤를로트 갱스부르를 많이 들었다. 특히 ‘AF607105’이라는 곡.    


If I can only keep on moving 

만약 내가 계속 움직일 수 있다면 

And never stop and think of me 

절대 멈추지 않고 나에 대해 생각한다면   


 노래가 이 부분에 이르면 나는 내 마음대로 가사를 조건형으로 바꿔 부른다.  



“만약 계속 움직일 수만 있다면 나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을 수 있을텐데.” 

 

‘나를 찾는 여행’, ‘길을 잃고 나를 찾다’, ‘바람이 불었다’ 같은 여행을 둘러싼 관용어를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알러지 반응을 보이지만, 여행이란 결국 내 몸을 움직여 어딘가로 이동하는 행위이며, 이 움직임으로만 시동을 걸 수 있는 사유가 존재한다는 데 동의한다.     


특히 여행 중 기차에 몸을 싣고 차창 밖에서 이어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동그랗게 말려있던 오래된 생각이 두루마리 휴지 풀리듯 둥그르르 풀려난다. 그 틈 사이로 옛연인의 얼굴도 다가왔다 멀어지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꿈쩍 않는 불안의 그루터기도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고, 얼마 전 저지른 끔찍한 실수도 기억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내려간다. 

무엇보다 아주 오래 전 어느 날  낯선 도시로 가는 기차 차창에 매달려 생각을 풀어내고 있던 과거의 나와 마주한다. 이방인 자리가 익숙한 나.  



어릴 때 나는 감정과 느낌을 말로 설명하는데 서툴렀다. 누군가 느낌이나 의견을 물으면 “몰라”라는 말 뒤에 숨고, 여러 선택지 중 가장 좋은 걸 골라야 할 때면 “아무거나”라는 말 뒤에 숨었다. 

꺼내 보여줄 감정과 느낌 알갱이가 없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주머니 양쪽에 그득했다. 너무 과잉이라 울고 싶었다. 입을 뻥긋 했다간 주체할 수 없이 우르르 쏟아질 것 같아서, 불룩한 주머니의 무게감에 온갖 신경을 빼앗겨서 무얼 해도 어색한 포즈가 됐다. 입을 닫고 주변 사람들에게 한발짝 떨어져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만지작만지작, 동그랗고 단단한 알갱이들의 감촉을 느끼며 혼자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곁에 영화와 책이 있었다. 주머니 그득 온갖 잡다한 구슬을 모아놓고 사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란 사실, 주머니 속 그것을 하나 하나 꺼내놓고 보면 각자의 방식으로 영롱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영화와 책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나는 “몰라”, “아무거나” 뒤에 숨는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주머니는 가벼워진다. 넘쳐 흐를 것 같은 아슬아슬함 대신 수용가능하다는 확신이 깃들고, 무얼해도 자연스러운 포즈를 가진 사람이 된 듯 느껴진다. 편안하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소통하는 상태. 

그런데 가끔 알 수 없는 갈증이 치민다. 이 변화가 관성적인 나이듦과 굳어짐의 징표 아닐까 두렵다. 이렇게 마냥 익숙해져도 괜찮을까? 똑같은 질문이 며칠에 한 번씩, 그러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솟으면 별 수 없이 이방인 자리로 가야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 입을 닫을 수 밖에 없는 도시, 사람들에게서 한발짝 떨어져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야 하는 공간으로.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이 편치 않은 곳으로.  

그렇게 툭 하면 먼 나라 미술관을 헤매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주머니에 여전히 알갱이들이 그득하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동그랗고 단단한 감촉을 느끼며 안도하기 위해.  


이국에서 무언가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할 때면 언제나 초월의 충동이 인다. 더 반짝이고 싶고, 더 멀리 가고 싶고, 더 근사해지고 싶고, 더 웅숭깊어지고 싶고, 더 유연해지고 싶고, 더 따뜻하게 안아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픈 욕망이 인다. 웅얼웅얼 노래한다.  


“만약 계속 움직일 수만 있다면 나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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