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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이는 ADHD라고 말했잖아요?

제 아이에게도 적용되는 수업을 진행해 주세요!

by 루아나

“ADHD 당신들의 뇌는 놀랍습니다. 페라리 엔진을 가졌어요. 그런데 문제는 자전거의 브레이크를 가졌다는 거예요.” Dr. Edward (Ned) Hallowell, ADHD 당사자이자 정신과 의사


Year 8(중학교 2학년)의 첫번째 텀이 끝나고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리포트(한국의 학교생활 기록부와 유사)를 컴파스(compass, 학교에서 사용하는 학교 관리 소프트웨어)에 올렸다. 아들 학교는 일년에 공식적인 학부모와 교사의 면담을 두 번 진행한다. 담임제가 없는 호주의 중등학교에서(아래 참고 1), 첫번째 텀의 마지막 주에 올라온 리포트를 가지고 원하는 과목의 담당 교사와 상담을 하고, 세번째 텀의 마지막 주에 리포트를 바탕으로 다시 상담을 한다. 그 외에는 부모가 개인적으로 상담하고 싶은 교사와 방문상담 또는 온라인 상담을 잡아서 진행하면 된다. 참고로 호주의 학제는 연간 4개의 텀으로 이루어져 한 텀 당 약 10주 정도만 등교하면 방학이 온다. 가을, 겨울, 봄 방학은 2주간, 그리고 여름 방학은 12월 중순부터 1월 말 까지다. 한 마디로 교사나 학생들이 지칠만 하면 방학이 온다. 한국에서 온 이민자의 눈에는 이렇게 읽힌다.


‘공부를 질리게 할 필요가 없고, 지쳐서 번아웃이 올 때까지 가르칠 이유가 없는 나라!’


나는 아들이 초등 저학년 때 신경다양인이라 진단 받은 후(아래 참고 2) 매년 학기초 마다 학교에 연락을 했다. 겉으로 보면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 그냥 유쾌하고 즐거운 아이라서, 더 열심히 내 아이의 ‘드러나지 않는’ 어려움들을 호소해야 했다. 올해도 학기가 시작하자 마자 통합교육 담당 부장 교사에게 아들을 가르칠 담당 교사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내 아들이 ADHD 라고,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수업에 잘 참여시키고, 내 아이의 흥미를 어떻게 수업에 연결시키고, 내 아이의 뇌가 작동하는 법에 맞게 수업하는 노하우를 적어서 보냈다.


“산만하다, 과제를 너무 성급하게 끝낸다. 오랜 기간 집중이 어렵다, 쉽게 집중이 흐트러진다.”


이게 최선이란 말인가? 리포트를 읽어보니 기가 막힌다. 리포트의 맨 마지막에 교사의 코멘트 부분에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렇게 작성했다. 너무 속상해서 가슴이 뻐근하고 핸드폰 스크린으로 눈물이 떨어진다. 당장 아들의 작업 치료사인 칼리에게 긴급 SOS 이메일을 보내서(아래 참고 1) 지원을 요청한다. 며칠 뒤에 열릴 학부모와 교사 상담날에 모든 교사와 상담을 잡았다. 그리고 칼리에게 말했다. 나는 이런 말도 안되는 리포트를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고, 이미 진단을 준 아이인데 왜 내 아들의 리포트에 ADHD 의 진단상의 특성만을 나열 하냐고, 이미 내 아이가 ADHD 고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은 부모도 심지어 내 아들도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 내 아이는 학교 생활 내내 이렇게 본인의 부정적이고 단점만 나열된 리포트들 받아야 한단 말인가?


“모든 선생님들이 수학 선생님처럼 가르치면 난 다른 과목도 수학처럼 좋아하고 성적도 훨씬 좋을 거야.”


언제나 그래왔듯 제일 먼저 아들의 의견을 물었다. 아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아들이 젤 잘 알 테고, 당사자 아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선택을 하게 하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가르치고 싶어서 어려서부터 행해온 나의 교육 방식이다. 아들이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은 수학이다. 다른 과목과는 달리 수학 선생님의 리포트에 담긴 아들은 반짝거렸다. 아들이 얼마나 수업에 집중을 잘하고, 수업시간을 즐겁게 만들고, 발표를 잘하고, 과제를 잘 완수하는지, 앞으로 더 발전하고 도전하기 위한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왜 수학과목이 좋은지를 묻자 아들은 이렇게 답했다.


“수학 수업은 아주 체계적이고 정리가 잘되어 있으니까 그렇지. 한 과제를 끝내면 선생님이 학생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줘서 음악도 들을 수 있고 게임도 잠깐 할 수 있어. 그리고 내가 한 과제에 대해서 바로 피드백을 주셔. 어떤 부분을 잘했고, 어떤 부분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내 아들은 나의 천국이고 내 삶의 자부심이다. 이 순간 내 눈에서는 별이 반짝이고 하트가 억 만개 반짝 거리고 있었을 게다. ADHD 아이들에게 꼭 맞는 수업방식을 교사들은 몰라도 ADHD 아들은 이미 알고 있다. 본인의 ADHD 가 문제가 아니라, 교사들의 수업 방식이 본인의 뇌에 맞지 않는 방식이어서, 즉 환경(환경에는 사람도 포함된다)이 신경다양성 아이들에게 맞게 조정되지 않아서 본인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 즉 장애를 의료적 관점이 아닌 사회적 관점으로 자연스럽게 깨닫고 있었다.


칼리가 긴급하게 보내 준 ADHD 아이를 위한 수업 지원 내용을 바탕으로 교사들과 면담을 했다. 다음부터는 내 아이가 가진 어려움을 어떻게 지원했는지와 그 방법이 효과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적어달라고, 그래야 그에 맞춰서 가정에서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를 고려해서 학교 생활을 더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수학 교사에게 말했다.


“제 아이에게 꼭 맞는 수업을 진행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아이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1. 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루아나 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대처한다’ 편 참고

2. 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루아나 저, 여는 글 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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