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스타트업을 떠나, 영어 교사가 되었다

by 박혜리

오랜만이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2024년 11월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전 글들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한 스타트업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즐거움은 사라지고 고통만 더 커져갔다.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20대 초반의 막내에게 지워지는 책임과 부담은 갈수록 무거워졌고, 끊임없이 나를 포장하고 어필하며 다음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 속에서 나는 조금 더 안정적인 울타리를 찾아 이직을 시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위 대기업이라 불리는 곳들의 문을 열심히 두드렸지만, 서울대라는 타이틀과 1년 남짓한 실무 경력은 신입 채용을 위한 면접 자리 하나조차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명확한 답이 있는 공부와 달리, 취업 시장은 그야말로 거대한 블랙박스였다.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언제면 끝나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당근의 주니어 PM 자리와 연이 닿았다. 서류, 1차 면접, 과제, 그리고 2차 면접까지 약 한 달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최종 면접의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3시간 동안 이어진 면접에서 나는 눈물을 꾹 참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당근의 인재 채용 원칙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동료를 뽑는 것이다. 최종 면접 역시 이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나는 왜 내가 그들보다 더 뛰어난지 증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증명에 실패했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의 범생이 DNA가 어디 가겠는가. 나는 결국 그들이 원하는, 도전 정신과 야망으로 무장한 진취적인 독기녀는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 셈이다.)

공교롭게도 최종 탈락 메일을 받은 날은 나의 졸업식이었다. 공허한 마음을 붙잡고 카메라 앞에서 애써 웃어 보이던 그때, 졸업장 사이에 끼워져 있는 교원자격증이 눈에 들어왔다. '아, 내가 4년 동안 학교를 다닌 건 이걸 받기 위함이었구나.' 회사에서도 치이고 취업 시장에서도 치이며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린 나에게, 이 종이 한 장은 마치 구원처럼 느껴졌다. 그날 저녁, 나는 60만 원어치의 임용 인강 패키지를 바로 결제했다.

놀랍게도 그 이후로 평온하고도 즐거운 나날이 이어졌다. 전년도에 합격한 동기에게서 원서와 자료들을 넘겨받고, 퇴근 후 채용 플랫폼 대신 임용 인강 사이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대학에서 배운 익숙한 내용,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영어, 내가 사랑하는 교육. 그리고 무엇보다, 명확한 답이 있는 시험 공부는 불안했던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물론 일을 하며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금방 지루함을 느끼는 내 성격상 오히려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더 잘 맞았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교사가 꼭 되어야겠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도피성으로 시작한 공부였고, 늦게 시작한 만큼 그 해에 바로 합격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때, 지도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함께하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취업 시장에서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었던 내가, 어떤 분야에서는 인정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또, 프로젝트 중에 만난 선생님들과 교수님들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친절했다. 그렇게 나는 차가운 경쟁 사회를 떠나,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할 수 있는 교직 사회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와중에 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떻게든 버티고 버티던 내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그날, 나는 퇴근하고 가만히 앉아 세 시간을 내리 울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마침내 애증의 첫 직장을 떠나 자유로워졌다. 그것이 2025년 6월이었다.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백수가 된 나는 오직 초수 합격만을 목표로 공부에 매진했다. 먹고, 자고, 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롯이 공부만 했다. 그런데도 그 시간이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다. 한두 달이 지나 안정적인 점수가 나오기 시작하며 합격에 대한 확신도 점점 커져갔다. 그렇게 2025년의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현재 나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가끔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행복한 요즘이다. 교육이 좋아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 비로소 나는 나의 천직을 찾았고, 진심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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