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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khokwon Dec 15. 2019

동물병원 에세이, 두가지 기부

같이 사는 이야기


미국에서 생활하다보면 한국과 여러가지 다른 점이 있다. 인상깊은 것 중 하나는 기부문화이다. 미국은 기부문화가 굉장히 활발하다. 어렸을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꼭 갖추어야 하는 하나의 덕목으로 계속 교육을 받는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을 페이스북 친구로 가지고 있으면 페이스북의 기부금을 모으는 기능을 활용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형편이 어려운 자기 이웃이 이번에 낳은 딸이 희귀병을 가지고 있다거나, 동네에 떠도는 유기견에게 밥을 주기 위해서, 혹은 도시에 노숙자들을 위한 앰뷸런스 비용을 기부하기 위해서 소액 펀딩을 친구들에게 요청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직 한국인들을 비롯한 아시아 사람들 중 그 기능을 사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기부에 대한 인색함 때문인지 다른 형태의 기부를 하고 있어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거나, 이런 물건들을 모아서 판매를 한 뒤 수익금을 기부하는 건 가장 흔한 형태의 기부 형태이다. 이런 일상적인 기부문화를 바탕으로 성공한 굿윌 (Goodwill) 이라는 기업이 있다. 사람들에게 기부받은 물품을 모아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를 한 뒤, 발생한 소득으로 어려운 사람들 돕고 회사를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미국 메릴랜드에서 처음 시작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그 매장을 운영중인데 나도 미국에 처음 정착할 때 가정에서 사용할 가구를 구입하기 위해 굿윌을 자주 이용하고는 했다. 


기업에서 세금을 줄이기 위한 목적의 기부도 많다. 목적만 놓고 본다면 100% 선한 마음에 비롯한 기부라고 볼 수는 없지만 국가에 내야할 돈을 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가게 만들었으니 결과적으로 윤리적인 순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뿐만 아니라 특별한 날 파티를 기부금을 위한 도네이션 파티를 열거나 기부행사가 아닐지라도 행사의 참가비 중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경우가 많다. 지인중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미교포가 한국에 와서 설립한 단체가 있다. 한국의 독거 노인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무브먼트를 만들기 위해 매분기마다 정기적으로 갈라쇼를 열어서 수익금을 노인 복지 센터에 기부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로 요즘 꽤 주목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설명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마지막 방점을 찍는 과정도 기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 와서 어떤식으로든 경제적인 성공을 이룰지라도 결국은 자신의 성공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찾고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그리고 그들과 만나 좋은 식당에서 스테이크 썰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골프를 친다던지 취미생활을 같이 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이루고 싶어한다. 하지만 기부를 하지 않고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악착같이 돈만 밝히는 사람은 커뮤니티에서 끼워주지 않고 따돌림 당하기 쉽상이다.



이렇게 일상에 다채롭게 녹아들어가 있는 기부문화는 미국에서 반려동물 임상을 할 때에도 느낄 수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두가지 케이스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번째는 반려견의 사체를 학문적 발전을 위해 기증받았던 경우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자주 있기 때문에 미국의 1,2차 사설 동물병원에서는 근처 수의과대학병원의 기부 담당자 연락처를 항상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야기인지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자보자.



시카고의 한 대학교에서 평생을 물리학과 교수로 일했던 할아버지는 은퇴 후 살이 에일듯 추운 바람이 부는 시카고를 떠나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일생을 마무리 짓기로 결심했다. 캘리포니아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반려견을 입양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인연이 되어 바셋하운드라는 귀가 큰 개를 키우게 되었다. 개의 이름은 퀀텀이었고 할아버지와 퀀텀은 14년째 같이 살고 있었다. 보호자는 개를 처음 키워봤기 때문에 공부를 참 많이했다고 한다. 직업이 교수인데 오죽했을까.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책처럼 순리대로 돌아가는 세상일은 하나도 없다. 수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일은 퀀텀이 시한부 인생판정을 받을 때였다. 2년 전, 퀀텀의 온몸에 몽우리가 지기 작은 덩어리들이 갑자기 솟아나기 시작했다. 말캉말캉한것도 있고 딱딱한 것도 있었는데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보호자는 동물병원을 방문했다. 첫방문에는 몸에 있는 여러개의 덩어리 중 3~4개 정도를 선택 한뒤, 주사기를 찔러 조직을 빨아 들여 슬라이드위에 펼치고 난 뒤에 어떤 세포들이 있는지 확인하는 세포흡인검사를 했다. 세포검사 결과는 다행히도 지방 조직으로 이루어진 양성 종양 (lipoma) 으로 나왔었다고 한다.



하지만 몇달 뒤 주사기로 흡인을 하지 않았던 엉덩이에 딱딱한 혹 하나가 계속 커지더니 표면에 궤양이 생기고 진물이 끊임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방문한 동물병원. 이번에는 더 정확한 결과를 위해서 전신마취를 하고 엉덩이 혹의 살점을 떼어낸 뒤에 조직검사를 받았다. 대략 1주일 뒤, 보호자가 받아든 결과지에는 고등급 연부 조직 악성 종양 (Soft tissue sarcoma, High grade) 이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떼어내도 다시 재발할 수 가능성이 크며 폐나 간 같은 다른 장기로 이미 전이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보호자는 포기하지 않고 수술을 시도했다. 주먹만한 덩어리의 종양을 제거했지만 몇개월 뒤 같은 부위에서 다시 똑같이 증상이 나타났다. 



그때부터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면서 약물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면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암이 몸을 정복하는 속도를 늦출수는 있었겠지만 줄여주지는 못했다. 암덩어리는 점차 몸 안으로 점차 퍼지기 시작했다. 비장과 폐에도 종양이 가득들어차서 호흡을 힘들어 했고 관절염으로 인해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해 다리 바깥쪽에 욕창이 생겨서 매일 소독을 해주어야 했다. 병원에 와도 기본적인 치료 와 필요한 상처소독을 하고 통증을 줄여주는 약을 처방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고 모든 부담은 오롯히 보호자가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1년을 넘는 시간동안 퀀텀을 돌보았다. 



하지만 항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느 날 보호자는 큰 마음을 먹었는지 병원에 와서 안락사를 요청했다. 몇일전부터 상태가 더 안 좋아졌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잡고 있는 것은 자신의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라고했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들었고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최선을 선택이라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밤새 고민하고 또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퀀텀이가 죽으면 사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직원이 물어보았다. 보통 병원에서 화장 업체와 연결이 되어 있어서 화장을 하고 재를 집으로 배달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호자는 퀀텀이의 사체를 근처 대학병원에 기증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수의과대학 학생들에게 부검을 하면서 퀀텀이를 잡아먹은 암을 직접 눈으로보고 공부해서 극복할 수 있는 치료법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자신의 아버지도 평생을 군인으로 살았는데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시체를 의과대학의 부검용으로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고 했다. 더 나은 세상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버지의 확고한 철학이었고 아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퀀텀이의 안락사가 진행되는 동안 보호자는 크게 울지 않았다. 오히려 뜨거운 눈시울로 처음부터 끝까지 안락사를 지켜보면서 퀀텀이에게 계속 말을 건냈다. 같이 여행간 이야기도 털어놓고, 수영장에 빠져서 익사할뻔만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같이 한 추억들이 참 많았다. 그가 가진 뜨거운 눈시울과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를 보면서 80살이 넘은 노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끝까지 연신 고맙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반려견을 병원에 두고 떠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반려견을 떠나보내기보다는 오히려 가슴깊숙히 더 꽁꽁 묻어 놓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번째는 소위 한국에서 핫한 유모차 브랜드를 기부 받은 경우이다. 평소에 담요나 사료, 고양이 장난감 같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반려동물 용품을 기부하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하지만 고가의 제품을 기부하는 사람들도 꽤 자주 보인다.



병원에는 다니는 보호자중 기자가 한명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항상 병원에 올때마다 무릎이 늘어난 검정 체육복에 검은색 아베크롬비 후드티를 입고 오는 중년의 백인 여자였는데 나이는 50대 후반 6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나이를 적다보니 웃긴건 남의 인상을 평가할 때 나이를 고려하는 걸 보면 나도 천상 한국인인가보다. 처음에는 외국인들의 나이를 알아 맞추기가 상당히 힘들었지만 계속 보다보니 관록이 생기는 것 같다. 이제는 백인일지라도 어느정도 상대방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상 편한 복장과는 다르게 흰색 단발머리를 항상 빗은채로 단정하게 유지했으며 빨간색 뿔테 안경 아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굉장히 예의가 바르고 아는 것도 많았지만 겸손하고 대화 매너가 좋았다. 대화를 나눌수록 즐거운 사람이 있지 않은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그냥 집에서 놀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고 재택 근무를 하는 사람이라는 추측을 했다. 어느날 병원직원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병원에 미국에서 꽤 유명한 기자분이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기자다운 사람을 본 기억이 나지 않아 한번도 본적이 없겠거니 하고 누군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그 중년여자가 아니던가? 구글에 이름을 치면 나오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백신 접종을 위해 짧게 2~3번 병원을 방문해던 보호자가 병원을 다시 찾은 이유는 슬개골 탈구 때문이었다. 보호자는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몇년전 유기견 보호소를 방문했다가 인연이 되어 조그만한 노포크 테리어 (Norfolk terrier)를 한마리 입양해서 키우고 있었다. 반려견의 이름은 로제리타 (Roselita)로 대략 7살 정도로 추정하고 있었다. 보호자가 집에 앉아있으면 항상 옆에 와서 조용히 앉아있고 짖지도 않는 얌전한 작은 반려견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로제리타가 한쪽 뒷다리를 들고 땅에 디디지 못하기 시작했다. 큰 통증은 없어보였지만 3발로 걷는것이 불편해보였다. 하루, 이틀 정도가 지나면 괜찮아질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증상은 사라지지가 않았다. 덜컥 겁이 난 보호자는 바로 동물병원을 방문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임상증상을 듣자 바로 생각나는 질환이 있었다. 로제리타를 안고 오른쪽 슬개골을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안쪽으로 슬며시 누르니 슬개골이 툭 하면서 빠졌다. 슬개골 탈구였다. 문제는 빠진 슬개골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지 않아 수술을 고려해야할 단계였던 것이다. 추가적인 검사를 위해 엑스레이를 찍어보았더니 슬개골이 왔다갔다 거리면서 빠지는 부위에 관절염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뼈와 뼈의 마찰 때문일 것이다. 



슬개골 3기로 진단을 내렸다. 보호자에게 대증치료를 하면서 기다리는 방법과 수술을 바로하는 두가지 선택지를 주었고 개인적으로 수술을 권유했다. 참고로 미국 동물병원에서는 보호자에게 치료방법에 대해 여러가지 선택지를 주고 충분한 설명을 한 뒤에 보호자가 내린 선택을 존중하는 구조이다. 몇가지 질문과 대답이 오고갔고 결국 보호자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더 꼼꼼하고 완벽한 수술을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해서 수술을 하는 외과 전문의에게 케이스를 의뢰했다. 어렵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수술은 아니었기에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수술 당일날 퇴원할 수 있었다. 보호자는 로제리타가 다리를 못 쓰는 기간동안 코에 바람을 넣어주기 위해 30만원이 넘는 유모차를 샀다. 내가 어렸을 때 탔던 유모차보다 좋은 것 같아보였다. 보호자가 바로 옆에 붙어서 부지런히 관리를 잘해 준 덕분에 한달 뒤부터는 걸음걸이에 큰 문제가 없어져서 천천히 걸어다니는데 문제가 없었고, 두달째부터는 침대와 소파 위를 종횡무진 누볐다. 두달동안 너무 갑작스럽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서 깜짝 놀라 1번 방문한 것 이외에는큰 문제랄 것도 없었다. 3달 뒤에 병원을 방문해서 검진을 하고 완치 판정을 내렸다. 3달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 아픈 반려동물을 돌봤던 반려인들은 이 기분을 너무 잘 알것이다. 살짝 눈물을 보인 보호자는 다행이라는 말은 연발했다. 날아갈 것 같이 후련한 표정으로 그동안 얼마나 자신이 힘들었고 마음을 졸였는지 심경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유명한 기자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드라마틱한 인생이야기가 펼쳐졌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CNN에서 종군기자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20~30년 전 젊었을 때는 위험한 전쟁터들을 골라서 돌아다니면서 생생한 현장을 전달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집에 돌아와 다음 취재전까지 조용한 집에서 쉬고 있을때면 전쟁터에서 느낀 참혹한 상황들과 감정들이 머리속에서 계속 되감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업무에 대한 사명감은 줄어들었고 아드레날린은 예전처럼 분비되지 않았다. 수면장애가 오기 시작했고 병원을 방문한 뒤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증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그녀는 종군기자 생활을 마감했다.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뒤 정치, 사회 분야를 걸쳐 취재를 하고 다녔지만 사회에 가득한 부조리를 보면서 염증을 느끼게 되었고 은퇴를 일찍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던 중 아는 지인의 부탁으로 잠시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 편집장 자리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는데 옳고 그름에 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편했다고 한다. 그렇게 새 직장을 구한 기자는 일주일에 이틀만 출근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자택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반려견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자기도 모르게 들어간 유기견 보호소에서 채 1살이 안된 로제리타를 보고 한눈에 빠져서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몇가지 이유기를 나눈 뒤에 보호자는 비싸게 산 유모차와 모든 관련용품을 필요한 사람이 꼭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기부한뒤, 유유히 병원을 떠났다. 유모차는 몇달 뒤 관절염이 심한 비글 노령견을 키우는 할아버지에게 돌아갔고 최근 병원직원에게 연락을 해서 물어보니 아직도 유용히 잘 사용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개인주의가 삶의 방식인 미국이지만 오히려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배푸는 모습들을 한국보다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은 땅은 좁지만 혈연주의, 지연주의, 학연주의라는 연고주의(Cronyism)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도움되는 사람들만 챙기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모르는 타인에 대한 친절이나 배려는 부족하다. ‘정’을 앞세우는 한국에서 이기주의가 더 만연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부문화야 말로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던 청교도들이 바라던 미국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한국도 예전보다는 기부문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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