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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Feb 15. 2024

이런 어른이라도 괜찮은걸까

7주차에 걸친 글쓰기 수업 마지막 날이었다. 수업을 이끌어주셨던 작가님은 그간 제출했던 글에 대한 총평을 나눠주시기로 했다. 난 7주 사이에 3개의 글을 제출했었다. 원하는만큼은 아니었고, 꾸준히 글을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글을 잘 쓰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절절하게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작가님은 마지막 수업인만큼 7주에 걸쳐 썼던 글들에 대한 전반적인 피드백을 주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두어차례 들었을 때 즈음, 내 차례가 되었다.


"지금까지 혜민님 글을 여러 편 읽었는데요. 다 똑같아요. 일대기를 써요."


앞에 서두는 지나치게 길고, 결론은 매번 성급하다고 했다. 서두에서 지나온 어린시절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글과 무관한 서술이 많다고 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결론에 담겨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독자는 그 내용이 궁금한데, 정작 그 내용은 무서워서 달아난 고양이 마냥 숨어버린 채 이야기가 끝난다고. 결론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풀어내지 못하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현재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아차. 명중이었다. 나도 몰랐던 명중.


성인이 되어서는 '나를 좋아하는 방법'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책을 읽고 영상을 보았다. 왜냐하면 내가 싫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뭐가 싫은지도 모른채. 아니, 사실은 싫은 게 너무 많아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내가 싫었다.


무엇보다 의지가 박약한 게 정말 싫었다. 먼저 아침에 일어나, 전 날 계획했던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면 화가 났다. 날씬하고 싶으면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내 자신을 봐도 화가 났다. 아무리 봐도 거울 속 내 허벅지는 너무 두꺼워서 살을 빼고 싶은데, 유튜브 홈트를 이틀 이상 하지 못했다. 운동 가기를 포기할 때마다 거울을 보며 나를 손가락질 했다.


학교 공부도 마음 먹고 도서관에 가봤자 1시간도 못 채우고 졸기 일쑤였다. 그러다 대학 근처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5초 정도 망설이는 척을 하다 못 이기는 척 술을 먹으러 갔다.


주변에 부지런하고, 날씬하고, 성실해서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친구만 봐도 부러워서 재수가 없었다. 나도 해볼까 싶어 간만에 대외활동 공고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하고 싶은 것들은 이미 기한이 지났거나 임박했고, 기한이 널널한 것들은 다 하기가 싫어서 사이트 서핑만 주구장창 하다가 꺼버리는 식이었다.


이런 나를 극복해보고자 유명하다는 자기계발서는 죄다 사다 읽었다. 미라클 모닝, 그릿, 습관의 디테일, 하버드 첫 강의 시간 관리 수업. 이 모든 책들이 박약한 나의 의지를 강화시켜줄 묘약으로 보였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묘약에 취했지만 약효는 3일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항상 상위권이고 싶었다. 1등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상위권에서 벗어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어떤 경쟁에 참여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그래서 내가 아는 모든걸 경쟁으로 여기고, 거기에서 상위권이 되고자 했다. 외모도, 체형도, 인성도, 공부도, 스펙도, 연애도, 친구관계도 전부 다. 하지만 당연히 이런 바람이 현실화 되었을 리 없다. 그걸 깨닫는 매일 아침, 무기력하고 괴로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무기력한 모습조차 한심해서 애써 아닌 척을 했다. 세상이 재미있는 척, 일상이 즐거운 척. 생산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척, 활기찬 척. 특히 긍정적인 척을 잘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말을 잘도 했다. 그렇게 없는 모습을 지어내서 나조차 속이려고 애쓰다 보면, 하루 끝, 기진맥진한 채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하지만 글까지 속이지는 못했던거다. 애써 과거를 변명하며, 내가 왜 이정도의 사람밖에 되지 못했는지. 학창시절 그리던 내 모습과 지금의 간극이 왜 이렇게 큰건지, 자꾸 외부와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과거를 서술하는 활자의 양이 늘어나고, 현재로 돌아와야 하는 결론은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에 대해 발표를 해야 하는 학생 마냥 급하게 마무리를 했다.


그러나 계속 이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었다. 독자가 궁금하지 않은 서술을 잔뜩하고 막상 궁금한 내용은 제대로 풀어놓지도 않은 글을 쓰고 싶은 필자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그렇다면.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내가 이런 어른이 되었다는걸. 아무리 백만 가지 이유를 들어봐야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는걸.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지금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라는걸. 


아무래도 글을 잘 쓰는 일은 어렵다. 이런 어른이라도 괜찮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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