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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Dec 20. 2021

영화 <엔칸토: 마법의 세계(2021)> 리뷰

두려움조차 긍정하게 만드는 디즈니의 마술적인 성장 서사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엔칸토: 마법의 세계(2021)>는 남아메리카가 배경인(정확히는 콜롬비아)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를 보자마자 나는 친구에게 툭 말했다. '코코(2017) 보단 못하네, '라고. 그러자 친구가 날 타박했다. '야, 코코는 레전드지. 그거랑 비교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그 순간엔 웃기만 했는데, 어쩐지 친구의 말이 오래오래 남았다. 그래서 디즈니에게 퍽 야박했을 내 첫 번째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엔칸토만을 생각하며 감상을 적어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했더랬다.



디즈니의 <엔칸토>는 내가 오래간만에 본 정석적인 성장 서사를 담은 동화다. 누구나 자라면서 마주하는 질문이 있지 않나.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근사한데, 나는 왜 이런 걸까? 와 같은 물음. 디즈니의 <엔칸토>는 이것에 대해 상당히 직접적으로 대답을 전달한다(물론 동화의 문법에 따른 전달이므로 '직접적'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하 스포일러 주의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대개 동화는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내면의 감정/감각을 외부로 끌어내어 객관화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엔칸토>에서는 불가해한 '기적'의 힘을 부여받은 주인공의 가족과 그러한 능력이 없는 미라벨(스테파니 베아트리즈)을 통해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품고 있을 걱정을 두드린다. 모두 특별한데 실은 너만 특별하지 않은 게 아닐까? 특별하지 않음으로 특별해지는 삶을 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니?



영화 초반, 미라벨은 동네 장난꾸러기 소년소녀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까지 대답하는 명랑한 소녀인 듯 보인다.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것도 잠시, 사실은 가족들 사이에서 위치가 애매하다는 게 서서히 드러난다. 촛불이 어떠한 능력도 주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라벨은 여전히 다섯 살 사촌동생 안토니오(라비 캐봇 코니어스)와 방을 함께 쓰고 있다. 미라벨의 부모인 훌리에타(앤지 세페타)와 어거스틴(윌머 발더라마) 역시 할머니 아부 엘라 알마(마리아 세실리아 보테로)의 은근한 차별을 알고 있었기에 이따금 그러시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까지, 영화는 포착한다.



부모님이 아무리 사랑에 인색하지 않더라도 미라벨은 불안하다. 엔칸토라는 커뮤니티를 이끄는 마드리갈 가족에서 자신만이 오점이 된 듯 한 불길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모두들 이야기하지 말자며 쉬쉬하는 삼촌 브루노(존 레귀자모)가 있긴 하다만, 그는 예언의 능력을 지녔으며 자발적으로 집을 떠났다고들 하니, 마드리갈 직계 가족에서 능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가족과 커뮤니티 전체를 실망시킨 사람은 미라벨이 유일하다. 가족에게도, 자신에게도 자랑스러운 일원이자 개인이 되지 못한 미라벨은 공간을 겉도는 듯 보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집과 가족. 디즈니의 <엔칸토>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단어는 바로 이 두 가지다. 떠올려보자. 기적이 아부엘라에게 가장 먼저 준 것은 다름 아닌 집이었다. 아이들에게 신비로운 능력을 주기 전, 기적은 아부엘라 알마가 잃은 남편과 가정을 보상하려는 것처럼 집을 선사했고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선물했다. 기적이 축복의 형태로 아이들에게 능력을 부여했던 것이 과연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다. 그러나 집과 능력으로 대표되는 기적 그 자체를 가족보다 소중히 여기는 본말전도가 일어날 때 영화는 문제적 상황으로 치닫는다.



엔칸토에서 드러나는 마술적인 집은, 할머니가 등장할 때엔 계단과 벽 등의 공간이 함께 제시되며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측면이 있지만, 미라벨이 가족을 부르기 위해 넘나드는 공동정원을 비춰줄 땐 영상이 수평을 이루며 좌우 이동을 할 때가 잦다. 또한  능력 있는 마드리갈 가족 각자의 방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으로써 타인이 침범하기 어려운 공간의 형태를 띠는 반면, 미라벨의 경우는 다르다. 그에겐 기적이 부여한 능력이 없기에 누구나 오갈 수 있는 얕은 방에 산다. 누구나 오갈 수 있다는 뜻은 미라벨이 누구든 돌보고 소통할 수 있단 뜻이기도 하며, 그 대상엔 마드리갈 가족의 집 자체도 포함된다(미라벨은 다른 가족에 비해 더욱 적극적으로 집과 소통하고 가구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집은 사적인 공간이고, 집 안의 방은 더더욱 개인적인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엔칸토>에서는 각 인물의 신비스러운 방을 모조리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장치는 미라벨이 다른 인물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비춰주는 듯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완벽해 보이는 마드리갈 가족의 구성원은 저마다의 사정에 있으면서도, 가족에게 모두 털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작 스무 살이 넘은 미라벨의 언니 이사벨라(다이앤 게레로)조차 약혼자를 썩 맘에 들어하지 않음에도 가족을 위해 결혼을 결심하고 자신의 능력이 얼만큼인지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미라벨이 이사벨라의 방에 들어가는 순간, 즉 그가 품은 고뇌와 사정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사정은 바뀐다. 미라벨도, 이사벨라도 일정 부분 자유를 찾으며 성장한다. 또한 달아났다는 삼촌 브루노만의 공간을 찾아갔을 때 미라벨은 남들이 쉬쉬하던 그의 진면모를 파악하며 외로움과 고통을 해소하고자 애쓰는 이로 변화한다. 그가 갖지 못한 능력이 있다 해서 항상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흠결 없이 완전한 인간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으며 울퉁불퉁한 면모를 다독이며 공존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서서히 배워가는 것이다.



그간 디즈니/픽사에서 다룬 다수의 애니메이션은 성장을 위해 주인공을 집 밖으로 내쫓았다. 물론 외부에서 주인공을 부르는 소명이 있는 경우도 있었으나 (<뮬란(1998)>의 경우 주인공 뮬란이 아버지가 징집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족을 벗어났으며,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3)>에서 메리다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 외부의 힘을 취했다. <모아나(2016)>는 테 피티의 심장을 가져다 놓아야 한다) 미라벨은 집안에 닥친 위기를 가족 간의 연대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인간이 성장하는 동력은 외부에서 진행하는 성인식도, 우연히 받게 된 신비로운 힘도 아니라는 근본적인(그러나 너무도 자주 잊는) 성찰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극본이 다소 허술하여 갈등이 해결되는 부분에선 아쉬움이 많이 남은 걸 부정하고 싶진 않다. 20세기의 2D 애니메이션에 비해 얄팍해진 서사는 여전히 아쉽다. 사건도 인물도 점차 입체적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어째서 전반적인 플롯의 힘이 강해지진 않는가에 대한 안타까움은 최근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 이와 동시에, 제작진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만큼은 분명했고, 외면하기 어려웠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이렇듯 <엔칸토>는 미라벨이 그간 이해하지 못한 가족들을 이해함으로써 성장하는 서사를 취하므로, 언뜻 마지막까지 그는 기적이 선사하는 어떤 선물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온 가족과 커뮤니티 전체가 함께 참여해 만든 문손잡이를 꽂아 넣는 순간 대문은 미라벨을 중심으로 한 그림을 새겨 넣는데, 이는 미라벨이 지니는 공간은 하나의 방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는 관객에게 건네는 디즈니식 위로와 치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적이 실재하지 않는 우리  세계에서,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는 희망과도 같은 힘은 바로 가족애라는 것이 아니겠냐고 그들은 묻는다. 또한 어린 소년소녀들에게 디즈니는 이렇게 말한다.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다가가 보면 사실 그들 역시 너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을 것이라고. 또 지금 당장은 네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순 있어도, 사실 깨닫고 나면 너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일 거라고도.



너야말로 유일한 존재라던가, 가장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라던가 하는 미사여구 없이 한 명의 단독자를 개인으로 인정하고 위로하는 영화는 흔치 않다. 스토리가 아쉬운 점이 있다고 썼으나, <엔칸토>에서 보여준 화면 장악력과 음악에선 굉장한 디즈니의 위력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임에도 성인까지 충분히 끌어안는 그들의 이야기가 앞으로 더욱 다양하고 풍성해지기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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