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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와 T 공생하기 Sep 24. 2024

말놀이

가계와 정부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경제의 3가지 주체는 가계, 기업, 정부라고 하고, 경제적 활동의 동기는 이기심이라고 합니다. 그래 보입니다.

개별 주체로서 가계는 어떨까? 이기적일까, 이타적일까? 이타적 일리 없습니다, 절대로. 무조건 이기적입니다. 다소의 예외가 있을 수도 있고, 유별나게 다소의 예외가 엄청나게 큰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기적이라고 보는 것이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개별 주체로서 기업은 어떨까요? 이 역시 이타적 일리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다음 세대를 위해, 환경친화적으로, … 요즘 세상에 비인간적인, 세대 간 이익의 큰 불균형 등이 있다면 기업 역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이를 이타적이라고 볼 수는 없고, 기업의 운영 환경의 변화라고 볼 수 있겠죠. 기업 역시 무조건 이기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도에 벗어남이 없을 듯 보입니다. 특히 이기적인 개인으로 구성되는 가계라는 경제주체로 구성되는 기업이 이타적일 것이라는 기대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기업의 선택이 특정 가계, 특정 개개인에게도 이기적인 선택이 되지 않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정부라는 주체의 성격이 뭘까 하는 의문이 든다.

흔히 정부는 가계 혹은 거주 시민, 세금 납부자들의 이익을 위한 이타적 행위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정부는 법에 따라 잘 운영, 운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탈법도 있고, 형법에 따른 범죄에 해당하는 완벽히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개인 혹은 가계 역시 존재함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정부를 지휘하는 개개인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정부를 구성하는 공무원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정부의 정책적 행위들을 감시하는 국회는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정부는 이기적인 개인과 가계로 구성된 집단이지만 이타적 목표를 달성해 주기를 기대받는 곳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이기와 집단적 이타가 같은 방향이려면 개인(가계)의 이익과 이타적 공공성을 향한 선택이 같은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세상을 보자.

국민 모두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소위 한자리하는 공무원들의 일탈, 누가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가 등으로부터 현실 세상에서 공공 조직과 공공 조직을 구성하는 개인과 가계의 이기적 선택을 이미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수수방관하든, 그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소위 지식인,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이라 다를까? 그들은 이기적일까, 이타적일까?

이기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본질이다. 따라서 정치, 사회적으로 이 이기가 이타적으로 발현, 제어, 감시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시스템이 중요하다. 이 이기를 다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우리는 고연 충분히 민주적인지, 나의 민주적 사고와 행동이 나의 생계를 위협하지는 않는지 살펴야 한다. 이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말씀하신 두 가지가 있다. 국가는 중요한 것을 지향해야지만 당장 먹고사는 급한 문제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완전히 다른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 내에서 살았던 경험이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과 급한 것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번영하는 국가,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고, 급한 것은 안정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이다. 나의 이타적 행위가 나의 이기적 생존을 위협한다면 이기적 전문가의 이익이 공공성을 따를 수 없다.


정부에게 기대하는 공공성 유지를 위해선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야 한다. 부당한 요구, 부정한 행위가 만연되면 결국 이기적인 가계와 기업 역시 더 이상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 없다. 그냥 밀림에서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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