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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Aug 26. 2024

파리에 가면] 피노컬렉션의 김수자 전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2024.3.20~9.2) 중 '숨'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부르스 드 코메르스 - 피노 컬렉션'(Bourse de Commerce- Pinault Collection)은 현대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슈퍼 컬렉터 중 한 명인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가 40년간 수집한 현대미술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는 미술관이다. 150년간 프랑스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했던 증권거래소를 일본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전시장으로 리노베이션한 공간이다.


구찌,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등 명품 브랜드와 크리스티 경매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피노 회장은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 5000여 점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가는 감각과 공격적인 컬렉션으로 오늘날 현대미술 역사를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그의 컬렉션에는 피카소, 몬드리안, 마크 로스코 외에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루이스 부르주아 등이 포함돼 있다. 피노 컬렉션 미술관은 2017년부터 리노베이션 공사를 시작해 1년간의 작업 기간을 거쳐 2021년 6월  공사가 끝났다. 곧 바로 지난해 오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로 미뤄져 2022년 봄 개관했다.

프리츠커 상에 빛나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는 화려한 돔을 지닌 로톤드를 그대로 살리면서 러시아인형 마트로슈카처럼 내부에 또 다른 거대한 실린더를 만들어 현대미술 전시에 걸맞게 리노베이션 했다. 안도는 피노 컬렉션을 선보이는 베니스의 옛 세관 건물을 전시장으로 바꾼 푼타 델라 도가나의 리노베이션도 맡았을 만큼 피노 회장이 적극적으로 신뢰하는 건축가다. 피노 회장의 선택은 옳았고, 그간 햇빛을 보지 못하고 수장고에 있었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 애호가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증권거래소를 뜻하는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 피노 컬렉션을 합쳐 만든 이 미술관은 대규모의 프로젝트를 보여줄 수 있도록 6800평방미터의 모듈식 전시공간이 포함되며 100~600㎡ 규모의 전시실들로 구성된다.  회화, 사진, 설치, 조각, 비디오를 포함한 다양한 규모와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시공간 외에 수장고와 284석의 강당에서는 미디어 상영과 강의, 콘서트를 진행할 수 있다. 


제 60회 베니스비엔날레(2024. 4.20~11.24)를 보러 지난 6월 말부터 약 3주간 유럽여행을 갔다가 오는 길에 파리에 들러서 바로 달려간 곳이 부르스 드 코메르스- 피노컬렉션 전시장이었다.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이곳에서 한국 작가 김수자(1957~)의 중요한 전시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피노컬렉션의 2024년 상반기 전시가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Le monde comme il va, The World as It Goes)’는 제목으로 2024년 3월 20일부터 2024년 9월 2일까지 열리는데 이 중 김수자 작가의 작품은 가장 상징적인 공간인 ‘로톤다’ 외에 원형의 실린더를 따라 설치된 쇼케이스, 그리고 지하 전시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도 타다오가 옛 증권거래로 건물 내부에 설치한 실린더 내부를 활용한 전시공간인 로톤다의 안쪽 공간 바닥 전체에 거울을 깔아 놓은 장소 특정적 작품 ‘숨으로’(To Breath, 2024)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바닥의 거울을 통해 천장에 복원된 프레스코화가 비치고, 동시에 나의 모습이 비치는 것이 마치 원형의 공간이 아니라 구(球)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것이 현실인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듯 특이한 공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전시 설명문에서 작가는 “ 아무도 소유할 수 없지만 모두가 공유하는 물, 공기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는데 장소에 딱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도록 한 것에서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되고 큰 인기를 끄는 전시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가서 보니 관람객들이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사진을 찍으며 정말 전시를 즐기고 있었다. 

어린 시절 자주 이사를 다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동(노마드)’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며 이를  ‘보따리’라는 상징물로 풀어낸다. 미술관의 원형 공간을 따라 설치된 쇼케이스에는 지난 40년간 작가의 궤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오브제들이 놓여 있었다. 

지하 공간에는 그의 보따리 작업들을 설치해 놓았고 상영실에선 여성들이 수공예하는 모습을 세심한 터치로 담은 ‘바느질하는 여자((A Needle Woman, 1999)’도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던 프랑스 여성이 “너무 섬세하고 아름답다.”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로톤다의 관람객들이 즐겁게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보니 같은 한국인으로서 흐뭇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들 신기해 하면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전시는 인스타그램에서 일찌기 화제가 되었다.) 

작품의 설명문에는 '보따리'를 알파벳으로 써서 'bottari '라고 써 놓은 것을 보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카셀 도큐멘타 등 굵직한 현대미술제에서 김수자의 작품을 많이 보아오곤 했는데 파리의 피노컬렉션에서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전시는 9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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