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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Oct 19. 2021

사랑하는 우리 집

<할머니의 사계절>



1.

우리 집은 도로에서 한눈에 보이는 '초록대문 집'이다. 나는 이 초록색 대문을 우리 집의 시그니처라고 생각한다.

"끼익-"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여닫던 우리 집의  번째 . 날이 저물면 작은 쇠고리와 묵직한 바위로 잠금장치를 대신하던 . 작은 턱이 있어  방문에는 누구나 걸음을 조심하게 되는 . 할머니와 손녀를 지켜주던 . 언제나 돌아갈  있는 .




2.

우리 집은 남동향의 밝은 집이다. 해가 마당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게 불편했는지 할머니는 수돗가까지 처마를 연장했다. 가장 왼쪽은 연탄을 땔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고, 순서대로 주방, 방 1, 방 2, 사랑방이다. 주방 안쪽으로 화장실이 있다. 맨 오른쪽 문으로 막혀 있는 곳은 내가 어릴 때는 마루였다. 반질하게 칠이 된 마루가 있고 그 안쪽으로 창호문이 그대로 있는 사랑방이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우리 집 마루에서 간식을 먹고 공기놀이를 하고 마당으로 점프를 하며 놀았다. 사랑방은 할머니의 시어머니가 계시던 곳이라고 했는데, 돌아가신 이후로는 곡식이나 각종 먹을 것을 보관하는 서늘한 창고가 됐다. 마루 밑으로는 종종 시골 고양이가 터를 잡았는데 어느 날은 고양이가 쥐를 잡아 마루 밑에 가져다 놔서 할머니가 곤욕을 치렀었다. 나는 할머니 말만 듣고도 하루 종일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3.

뒷마당으로 가는 문이다. 어릴 적에는 이곳을 미지의 공간이라 생각했다. 내 몸이 아주 작았을 때는 화장실도 집 밖에 있었다. 이 미지의 공간을 지나 뒷밭 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화장실에 가야 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작게 겁에 질렸다. 그래서인지 집 안에 화장실이 생긴 이후로도 이 통로를 지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4.

할머니가 이 가마솥으로 요리를 하시는 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이곳에 올 때는 몇 년 지난 교과서와 문제집, 다 쓴 공책을 태울 때였다. 나는 매번 "다 버려도 돼" 했고 할머니는 "이걸 왜 버리노?" 했다. 다 쓴 공책의 기준에 대해 작은 실랑이를 벌이며 우리는 지나간 것들을 태웠다.




5.

지붕의 기와가 우리 할머니를 닮았다. 정확히는 지금의 할머니가 아니라 이십여 년 전 어린 손녀를 키우던 할머니의 표정을. 할머니는 나를 키우면서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할머니가 키운다고 손가락질받지 않게 해야지."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힘 빠지는 말을 덧붙였다.

"애는 부모가 키워야 돼."

이제야 할머니는 모든 양육의 책임에서 벗어났다. 할머니는 편안해 보인다.

나는 가끔 우리 집 기와에서 할머니의 얼굴을 찾는다. 근엄하면서도 푸근한 할머니의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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