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메리카 드림'...위로 올라가고 싶은, 내 20대 한 페이지
5월 어린이날 황금연휴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다. 일에, 일상에 치여 차분히 앉아서 오후 4시쯤 글을 쓰는 여유를 느낀 적이 얼마 만인가. 정말 바쁘게 살았다. 나란 사람 10대부터 부모님 말 잘 듣는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고 20대부터 내 인생 더 높이 가기 위해 여러 도전하며 살았다.
광주광역시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나. 순탄하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아왔다. 부모님께서 밀어 주셔서 2007년 그 당시 미국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지금 유학 가라고 해도 못 갈 것이다. 그땐 젊었고 패기가 있었다. 그때 그 시절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다 있는 것 같다.
나의 20대. 모두 개척해가며 살았다. 그땐 도전 정신이 남달랐다. 20대 초중반 대학교 2학년때 미국 텍사스로 떠났다.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등 다른 지역을 생각할 여유나 지식이 없었다.
텍사스주는 미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주다. 웬만한 나라 이상의 크기를 가졌다. 일본 전체 면적보다 크다. 경제력이 높은 주도로 알려져 있다.
내가 가는 학교는 UT Dallas다.유명한 Naveen Jindal School of Management이 있다. 경영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Texas Instruments와의 교류와 협력을 하고 있다. 산학 협력 등 취업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텍사스 주 주요 산업인 석유, 천연가스, 농업, IT 등이다. 졸업 후 고소득을 받기에 좋은 직종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업종은 사양산업, 박봉이다. 자체 수익모델이 없으며 광고를 받아 운영한다. 흑흑. 직업을 잘못택했다고 여겨진다.
미국 가기 전 중국이나 호주를 갔다 왔던 나였지만 미국은 완전히 새롭고 경이로운 곳이었다. 그때 그 기억으로 그 낭만으로, 그 시절 느낌으로 메이저 업체가 아닌 인터넷 마이너 언론사에서 버티고 있는지 모른다. 한국 언론계 적응이 정말 힘들었다. 수직적 구조에 반말, 말 함부로하는 데스크, 박봉, 긴 근무시간, 명절, 휴일에 일하는 당직, 기자정신이라며 열정페이로 일 시키려는 사람들, 미국 유학 후 돌아와 경력이 있음에도 기자가 하고 싶어 인턴을 나이먹어 했는데 그 시절 나이 많다고 어쩌고 하면서 깔아뭉개려는 사람들, 또래보다 늦게 취업해 굉장히 조바심이 생겼다. 실제 나이 많지 않았음. 한국 사회는 나이에 굉장히 민감해했고 그 언론사들은 또래보다 나이 많거나 지방에서 미국 대학교 졸업한 나를 아니꼽게 받아들이며 받아들이지 못했다.
꿈꿔 온 일이지만, 일은 지금도 적성에 맞지 않다. 주변에 누가 기자하겠다고 하면 메이저에서 하라고 하고 마이너 기자는 말리고 싶다. 비전 없는 곳. 마이너 인터넷 언론사에서 발제하고 기사 송출하는 게 사회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겠나. 메이저 언론사의 느리고 굵은 기사 한 방이면 사회가 바뀌는 걸.
다시 미국.
난 온실 속 화초였다. 세계는 넓었다. 학부 들어가기 전 글쓰기, 미국 역사 등 수업을 들었다. 나 혼자 한국인, 인도인, 중국인들이 많았다. 저마다 꿈을 가지고 온 그들.
학교 등록하고 집을 구했다. 중고 자동차를 하나 샀다.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하고 거기서 학교 선배들, 동기들, 서울 동국대학교에서 온 학생들, 동생들과 지냈다. 지금은 아이 둘 낳고 미국서 살고 있는 지혜를 통해 교포 친구들도 만났다.
텍사스는 정말 넓었다. 거기선 여자라고, 서울이 아닌 광주라고 이런 차별이 전혀 없었다. 모두 거기서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었고 꼰대나 나이로 밀어붙이는 사람이 없었고 평등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왔을 뿐이다.
학교가 너무 좋았다. 캠퍼스 안엔 분수대와 학생회관엔 당구대가 여러 대가 있었다. 당구나 포켓볼 치고 먹고 치킨 필라 샌드위치를 먹고 햇살을 내리쬐었다. 저녁엔 예술대학에 가면 그랜드피아노를 마음대로 연주할 수 있었다. 수업 듣고 내 차를 가지고 그 일대를 돌아다녔고 캠퍼스가 워낙 넓어 주차 고민이 전혀 없었다.
라디오에서 빌보드100 노래를 틀어줘 그 당시 브루노마스, 테일러스위프트, 네요, 리오나 루이스, 저스틴 팀버레이크, 팀바랜드, 비욘세, 제이지, 어셔 등 2005년대 빌보드 노래들을 들으며 달렸다. 오후 3시면 햇살을 받으며 차가 없는 도로를 달렸다. 지금 그 여유가 그립다.
한국처럼 바쁘고 힘들고 스트레스 받지 않지만 조금 느리지만 하나씩 해나가며 나중엔 모두 이루는 미국 대학 시스템이 정말 좋았다.
고등학교 때 왔으면 더 좋았을 걸 싶었다.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지내다 대학 갈 수 있으니. 세상은 넓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그랬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정말 세상이 넓고 일자리는 미국에 많았다. 다른 누가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 조언해줄 수 있다.
나는 경영학 수업을 들으며 미국 학생들과 토론하며 자기들 조에 끼워달라고 했다. 쭈뼛쭈뼛 거리며 말 거는 내게 그들은 친절했다. 한국보다 모든 게 여유있었다. 시기나 질투, 나이 서열 등이 없다. 그들은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했고 손짓 발짓 느린 내 영어를 들으려고 시간을 기다려줬다.
실제 쓰이는 영어는 배우는 영어와 달랐다. 한국서 배운 영어는 또렷또렷 또박또박 말하지만 실제 영어는 연음이 그렇게 많고 굴리는지, 텍사스 사투리에 섞여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수업 끝. 집으로. 뭐 먹지? 낮에 운전하고 집에 가는, 차 안막히는 도로, 경치들, 지금도 선하다. 텍사스는 걸어다닐 수 없고 걷는 이들이 거의 없다. 큼직큼직 다 떨어져 있어서 대중교통이 없어 차가 없으면 돌아다니기 어렵다.
라이프가 확실히 여유가 있다. 한국처럼 경쟁에 치여 남들보다 뒤처지는건 아닌지 불안해하거나 참고 있거나 미래만 바라보지 않아도 돼 좋았다.
낮에 경치 보며 집으로 가는 길. 오늘 뭐 먹지? 집 가서 아파트 옆에 공용 수영장에서 수영을 해볼까? 그 땐 젊구나, 젋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