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이 화재는 우리의 추억도 함께 태웠다

by 리나

어제 아침 '마우이 화재' 소식을 CNN으로 보면서

'휴, 다행이다. 우리가 저기에 살지 않아서'

안도와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만약 나의 영주권 수속이 빨리 진행되어서 우리가 저곳으로 갔더라면,

우리가 마음에 들어 했던 집이 우리의 예산과 맞아서 부동산을 구입했더라면,

현지인으로부터 그곳의 의료 수준과 실태를 자세히 듣지 못했더라면,

마우이가 남편의 형제자매들이 사는 미동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남편이 마음에 걸려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쯤 우리는 마우이에 살고 있었을 거다.


퇴직하고 이전할 '후보지'로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곳으로 불과 3개월 전에도 다녀왔는데 만약 우리가 마우이에 살고 있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집에 모든 걸 버려두고 맨발로 불을 피해 도망갔을까? 너무 늦게 화재 소식을 들어 발에 닿는 땅이 모두 불에 휩싸여 바다로 첨벙 뛰어들어 불을 피했을까?



어제 집안일을 하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마우이' 생각이 머리와 가슴에서 떠나질 않았다.

가장 피해가 심하다는 라하이나 타운의 샵과 레스토랑,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우리가 좋아하는 '빈티지 포스터샵'은 어떻게 됐을까?

결혼기념일에 저녁을 먹으러 갔던 '라하이나 그릴'은?

호텔 라하이나는?

Taro로 만든 석탄같이 생긴 아이스크림을 팔던 그곳은?

라하이나 타운에서 요가를 가르친다던 한국 분은 무사하실까?


라하이나 타운
라하이나 타운의 역사 탐방로. 타로밭과 타로 아이스크림.
화염에 휩싸인 라하이나 타운의 모습


여러 가지 상황이 되지 않아서 우리가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셨던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나는 도대체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오후에 틈이 날 때마다 CNN을 틀어 업데이트되는 화재 상황을 지켜보았다.



화재 상황을 보려고 저녁을 먹으며 TV를 켰다.

'라하이나의 건물 80퍼센트가 전소(全燒)했다.'


남편과 나는 더 이상 저녁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은 그곳에서 우리가 함께한 좋은 시간과 추억을 모두, 순식간에 뺏어갔다.

식도에 걸린 음식이 무거운 바위가 되어 가슴을 누르는 것 같았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스쳐 지났던 라하이나 타운 사람들은 불을 잘 피해 안전한 곳에 있을까?

다들 무사하겠지?

화재로 집도 잃고 직장도 잃고 가진 것을 모두 잃었을 텐데.

쿨라에도 화재가 심하다는 데. 거기에서 만났던 커피 농장 사람들은 괜찮은 건지.


잠시 그곳에 여행자로 가서 시간을 보냈던 우리들도 이렇게 슬픈데 그곳 주민들의 심정은 어떨까?

재물뿐 아니라 사람도 잃었다면. 과연 슬픔을 털어내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이 오갔다.


잠이 오질 않아 브런치에 올라온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읽다가,

내가 구독하던 작가 분이 두 달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적지 않은 연세에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우시며 생생하게 전해주시는 음식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매일 올려 주셨는데 한동안 글을 올리지 않으셔서 작가님 소식이 많이 궁금했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오지로 여행을 떠나셨나 보다 하며 작가님의 글이 올라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인데,

내일 일을 걱정하기보다 오늘에 감사하며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후회 없이 실컷 사랑해 줘야겠다.


아침 일찍 우리의 안부를 물어봐 주는 감사한 가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