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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Dec 19. 2023

지금 행복한 일만 생각하는…

답은 일 속에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리노베이션을 앞두고 마지막 전시가 오늘이란 걸 알고 부랴부랴 그곳으로 향했다.

(오늘이란 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마지막’이 주는 아쉬움이 큰 탓인지 자꾸만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

벡스코 앞 얽히고설킨 도로 위에서 삼십 분을 보내고 건물 지하주차장에 들어가 차를 댔다.

주차장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만난 첫 번째 전시는 <많은 사람들(Lots of People)>이었다. 김홍석의 스티로폼 조형물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고슴도치처럼 보이는 하얀 양과 토끼 같은 핑크 돼지에 자꾸 눈길이 갔다.

옆으로 ‘어린이갤러리’ 입구가 있었다. 멀리서도 그곳엔 아이들이 손으로 만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내하시는 분께 여쭈어보니, 전시된 작품들은 어린이갤러리 옆 ‘작업실’에서 일 년 동안 아이들이 직접 스티로폼으로 자유롭게 만든 작품들이라고 했다. 다만 내일부터는 파기된다고 하니 한 작품 한 작품 마음의 눈까지 열고 바라보게 되었다.

<슛팅하는 이강인>. 옆으로 쓰러질 것 같은 축구선수 이강인의 모습을 조각하는 아이의 눈빛이 떠올랐다. 어쩌면 자신의 꿈일 멋진 축구선수를 이강인 선수가 골 차는 장면으로 상상해 본 게 아닐까.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꿈꾸는 여우>. 만약 작품의 작가가 있다면 묻고 싶었다. 어떤 이미지를 보고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아이는 ‘꿈꾸는’에 감정이입을 했을까 ‘여우’에 꽂힌 것일까. 무엇이었든 그려낸 표정이 사뭇 진지해서 오래 바라보았다. 저 먼 무언가를 향해 절실하게 각오를 다지는 눈빛. 꿈꾸는 모든 이의 긴장감이 바로 그러하지 않을까.

<파도 속의 모터보트>. 파도가 만들어낸 동그라미 속에서 동그라미 웃음을 짓고 있는 주인공. 그 순간만은 자기만의 세상 속에 푹 빠져 있다는 걸 이렇게 공간으로 표현해 냈다는 게 대단했다. 덩달아 행복해졌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만큼은 나만의 세상 속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지금 행복한 일만 생각하는 서핑보트 위 사람>.

‘지금 행복한 일만 생각’을 주입하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건 성인, 예를 들어 일에 묶인 성인의 일로만 생각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내 목표는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이다”를 매 순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어린이는 서핑보트를 타는 사람에게서 ‘지금 행복한 일만 생각’하는 모습을 발견해 냈다. 작품의 제목을 보는데 기이했다. 여러 유추를 했다.


첫째, 서핑보트 위 사람이 작가 자신인 경우. 초등학생들도 지금 행복한 일만 생각해 내야 할 만큼 행복하지 않은 일들로 고민이 많은가? 학교, 학원, 숙제, 테스트 등등등. 그래서 그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 서핑보트를 타는 동안만은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고 있는가.

둘째, 서핑보트 위 사람이 작가가 알고 있는 아저씨인데, 그 아저씨는 늘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음. 작가는 평소에 일이 많아 피곤해하는 아저씨를 늘 안타까워하다가 서핑보트를 타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어린이 작가는 그 모습을 보고 아저씨를 응원하게 되었고, 그 장면이 깊게 뇌리에 박혀 작품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아저씨는 작가의 아빠가 아닐까…?)

셋째, 처음에는 ‘즐겁게 서핑보트를 타는 사람’이 제목이었는데 옆에서 부모님이 제목을 살짝 고쳐줌. 그래서 제목에 어른의 시각이 가미가 됨.


위의 추측이든 아니든 이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이 제목에 꽂혔는가일 것이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내가 택한 일을 하면서 충분히 행복한가? 이 질문에 답을 찾으러 다니는 길에 부산시립미술관에까지 발길이 닿았다. 그곳에서 다시 내 안의 질문을 만났으니 뜨끔했던 것이다.


답은 언제나 명쾌하다.

고민하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택한 일을 묵묵히 하는 동안 얻어진다. 일을 하는 그 자체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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