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로랑 Dec 02. 2020

몸과 마음이 피곤한 날, 나를 위한 식사준비를 합니다.

12월이 되었다. 연말이 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늘 이상한 허탈감에 휩싸인다. 남은 기간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이제까지 뭘 했나, 언제 끝나나, 빨리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은 매해 이맘때쯤 고질병처럼 찾아와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한다.      


정리할 것도 많고, 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소홀히 하게 된다. 어느 순간 아이들의 밥도 냉동식품에 의존하면서 대충, 설거지도 미루게 되고 책상 의자 위에는 어느덧 정리하지 않은 옷이 수북이 쌓여 앉을 공간조차 사라지게  되었다.  패턴이 흔들리고 리듬을 잃어버리며 무질서하게 변해버리는 일상은 피곤함을 더욱 가중시킨다.      


“엄마, 고기 먹고 싶어.”     


요 며칠 힘없던 아들이 오랜만에 먹고 싶은 메뉴를 말했다.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한다. 그래, 잘 먹여야지. 아무리 맛있어도 매일매일 에어프라이어가 해주는 돈가스와 공룡 치킨은 너무하다 싶었다. 엄마의 일상이 무너진다고 해서 아이들의 일상까지 무너뜨릴 수는 없다. 나의 피곤함이 요 며칠 아이들의 밥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생각에 급하게 동네 마트에서 고기를 사 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침 주말에 시댁에 다녀갔다 받아온 시금치와 배추가 보인다. 시금치나물을 무치고, 배추 된장국을 끓이고 고기를 굽는다.      


“어쩌지. 아들 시금치가 좀 짜다.”     


너무 오랜만이었나 보다. 음식의 간 맞추는 게 왜 이리 힘든지. 소금과 간장 둘 다 넣는 것이 아니었나.  때늦은 후회에 애꿎은 시금치만 째려보고 있다. 시금치는 초록색의 대지의 빛깔과는 다르게 바다의 눈물을 잔뜩 머금은 맛이 되어 버렸다. 이 눈물은 나의 눈물이어야 하는데.. 나물을 무치는 손을 정처 없이 휘져으며 아들에게 미안한 눈빛으로 말한다.      


“아냐, 엄마. 그런 말 하지 마. 난 짠 거 좋아해. 음~맛있다. 엄마 최고!”     


엄마를 위로하는 법을 빨리 깨달은 첫째 아이 덕분에 “그래, 밥이랑 같이 먹기에 맛있겠다!”라며 마음대로 결론을 내리고 밥상을 준비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밥은 안 먹고 고기에만 손 이 가지만 밥과 반찬도 골고루 먹어야 더 먹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자 밥도, 나물도 잘 먹는다. 아이들이 잘 먹자 기분이 좋다. 자식의 한 끼를 든든히 챙겨줬다는 생각에 뿌듯함까지 밀려온다. 육아란 길고 긴 터널을 지나는 일과 같아서 가시적인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때때로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육아의 성과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식사 준비다. 밥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하루의 식사가 잘 해결될 때 느낄 수 있는 개운함과 성취감은 꽤나 큰 즐거움이다.      

“밥이나 먹을까.”     


보통 아이들 밥을 준비하다 보면 밥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매일 아이들 밥은 정성껏 준비하려 하지만 내 밥은 대충 먹거나 인스턴트로 먹을 때가 많은데 오늘은 갑자기 식사 준비를 하고 싶어 진다. 나물도 좀 많이 만들었고, 시댁에서 주신 밑반찬도 있다. 나를 위한 고기를 굽고, 밥과 국을 준비하고 반찬도 반찬 접시에 모두 덜어서 식사 준비를 한다.      


“맛있겠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고기인데, 따끈한 된장국에 짭짤한 게장까지. 게다가 색감의 조화도 참 예쁘게 초록색의 시금치나물까지 준비된 식탁은 꽤나 먹음직스럽다.      


오랜만에 갓 지은 흰쌀밥과 된장국 그리고 내 손으로 한 반찬으로 만든 식탁이다. 접시에 예쁘게 담아놓고 보니 꽤나 근사하다. 대접받는 기분이란 이런 기분이구나, 나를 위한 밥상을 준비하고 먹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새삼 이 모든 상을 준비한 나 자신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잘 먹겠습니다.’     


마음속으로 크게 인사를 한 후 숟가락으로 밥을 뜨고는 입속에 넣어 꼭꼭 씹어먹는다.      


그래,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다 잘 해낼 수 있다. 이제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다. 오늘 이렇게 맛있는 한 끼 대접받은 나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준 나에게 감사하며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꼭꼭 씹어먹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지친 날, 오로지 나를 위한 한 끼 밥상을 차려먹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오늘, 든든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책하실래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