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복합쇼핑몰 롯데월드몰의 ‘레트로(retro) 마케팅’
작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전국민에게 저마다의 ‘추억 여행’을 선사했다. 꼭 1988년이라는 특정 시점이 아니어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각자의 기억 속에 따뜻하게 자리 잡고 있는 특별한 시간과 소중한 공간이 있을 터. 현실이 각박하다 보니 옛 추억을 떠올려보며 작은 위안을 삼고자 하는 심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업이 세인들의 이런 심리상태를 놓칠 리 없다. 그 중에서도 롯데월드몰은 ‘레트로(retro) 마케팅’을 꾸준하게 추진 중이다.
레트로 마케팅이란 말 그대로 ‘복고풍의(retro)’ 제품, 분위기, 이미지, 콘텐츠 등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추억과 향수(鄕愁)를 마케팅 전략에 연계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이해하기 쉽게 <응답하라 1988>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이 드라마에 등장했던 롯데제과의 가나초콜릿은 방송의 인기로 엄청난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 이에 롯데제과는 1980년대에 나왔던 제품의 포장 디자인, 서체 등을 똑같이 재현하여 추억의 과자 판매전을 기획했다. 이는 레트로 마케팅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롯데월드몰로 시선을 돌려보자. 국내 최대 복합단지 ‘잠실 롯데타운’에 위치한 국내 대표 복합쇼핑몰 롯데월드몰 곳곳에서는 다양한 양태의 레트로 마케팅을 목도하게 된다.
롯데월드몰 5층과 6층에 위치한 ‘서울서울 3080’은 1930년대의 경성과 1980년대의 서울을 엿볼 수 있는 테마 스트리트다. 종로와 명동의 옛 거리를 복원한 복고적 인테리어 구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는 롯데월드몰이 단순히 상품만 판매하는 공간이 아님을 시사한다. 매출진작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기존 유통업계의 구태를 벗어 던지고, 소비자(‘몰고어’)의 향수를 자극하고 방문객에게 즐거움과 추억을 선사하는 일에도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다.
서울서울 3080에서는 우리나라 최초 영화관인 우미관과 최초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근현대사 교과서나 영화에서나 봤던 전차, 예전 극장 포스터, 빨간 공중전화박스 등은 젊은 세대들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왔는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다.
F&B(Food and Beverage•식품과 음료) 구성도 이 분위기와 절묘하게 조응된다. 대한민국 최초의 부대찌개 전문점 ‘오뎅식당’,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빵집 ‘이성당 카페’ 등이 입점해 있다. 인사동 명물 ‘삼보당 호떡’, 국내산 팥으로 만든 ‘강남 붕어빵’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롯데월드몰의 명물이다.
주말과 공휴일에 전개되는 주요 층별 이벤트도 레트로 마케팅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수일과 심순애’ 변사극을 연출하는가 하면, 옛 교복을 빌려서 사진을 찍는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 동안 진행해온 이벤트들도 복고 마케팅과 맥이 닿아 있다. DJ 뮤직박스라는 행사가 있었다. DJ가 관객의 사연을 받고 신청곡을 틀어주는 정말 예전 DJ의 모습을 연출한 것. 중장년층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옛 버전의 DJ 퍼포먼스를 보며 추억에 잠기곤 했다. 새마을운동 퍼포먼스, 복고댄스, 종이접기, 7080 포크콘서트 등 롯데월드몰은 같은 이벤트를 반복하기보다는 여러 테마를 변주하며 관람객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1월에는 국악 오케스트라 공연을 펼치기도 했고, 2월에는 엿장수, 구두닦이 등으로 분장한 퍼포머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3080 시간여행’이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얼스터 대학(University of Ulster)의 스티브 브라운(Stephen Brown) 교수는 레트로 마케팅을 ‘혁명’이라 칭한 바 있다. 그는 옛 브랜드의 성공적인 부활과 이것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매력적인 마케팅 옵션으로 대두되는 현상을 가리켜 ‘레트로 혁명(retro revolution)’이라고 표현했다.
‘혁명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더 세련되고 창의적인 마케팅 전략 수립이 필요하지 않을까?
레트로 마케팅은 지난 기억을 항상 아름답고 긍정적인 것으로 미화하는 현상인 ‘무드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무드셀라 증후군은 일종의 기억왜곡 현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회고 절정(reminiscence bump)’이라는 심리학 용어도 짚어봐야겠다. 노인들에게 지난 삶을 반추하게 하면, 청소년기와 초기 성인기의 기억을 집중적으로 회고한다는 개념이다. ‘무드셀라 증후군’과 ‘회고 절정’ 개념을 통해 많은 기업은 레트로 마케팅의 추진 동력을 얻고, 복고 트렌드의 시장가치를 간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위적인 복고 프로모션은 외려 소비자의 반감을 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레트로 마케팅은 단순히 과거의 복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공감’이 결여되었다면 고객에게 소구력이 떨어지기 마련. 현재의 트렌드와 기호에 자연스레 녹아 들면서, 소비자와 쌍방향 소통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중장년층에게는 익숙함과 노스탤지어(nostalgia)를 선사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함과 재미를 제공할 수 있다.
서석화 시인의 <IN MY MEMORY>라는 시에는 “기억을 말하는 일을 어렵다/넘겨야 할 페이지의 끝자락을 붙들고/긴 소매끝 말아 올리며/눈물을 참는 일은 더 어렵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레트로 마케팅 전략 수립시 이런 부분에도 유의를 해야 한다. 서석화 시인의 말처럼 누군가에게는 “기억을 말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이처럼 분명 양가성이 있다. 지난날에 좋은 일만 있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레트로 마케팅 기획과정에서 마케터의 세심한 태도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롯데월드몰의 레트로 마케팅은 개별 상품의 복고화(復古化)를 넘어서 공간 자체를 추억의 무대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는다. 쉼 없이 앞만 보며 살아온 현대인들을 따뜻하게 위무하는 프로모션 기법인 레트로 마케팅. 이 ‘레트로 혁명’의 승자가 누가 될지 궁금해진다.
*위 칼럼은 <아시아엔>에 송고한 글을 일부 수정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