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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대로 먹었는데, 마음은 허기졌다.

남편은 그대로인데, 나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

by 혜윰이스트

'내일부터 다이어터'.

매번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고 다짐과 결심을 하지만 '오늘은 좀 더 먹고 내일부터 진짜 시작하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 나를 그렇게 부르고 싶다.

그래서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특히 식단관리는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임신 중, 그리고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 철저하게 식단을 조절했다.

그전까지 단 한 번도 다이어트를 위해 식단을 관리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오직 아이를 위해 노력했다.

카페인이 적정 수준이면 커피도 마셔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커피도 그랬는데, 다른 음식은 더 철저하게 제한했겠지.


남들이 보기엔 그 정도의 식단 조절은 누구나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가 아니어도, 스스로 건강을 위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유난스럽다’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비언어적 표현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아이는 잘 큰다”라는 말도 들렸다.

그저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고, 기르면 되는 거 아니냐는 의미였으리라.


그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라 믿었고, 진심을 다해 지켰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종종 고독감이 찾아왔다.

심지어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한 동료 직원들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출산 경험이 있는 엄마는 확실히 달랐다.


그때의 고독감은 그 순간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가 끝나자, 나는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그동안 먹지 못했던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밤늦은 시간, 아이를 재운 후 조용한 거실에서 먹는 음식들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절대 먹을 수 없었던 그것, 술.

맥주 한 캔, 두 캔을 육아 스트레스를 날리는 기분으로 마시게 되었다.

남들은 출산 후 원래 몸매로 돌아가기 위해 식단 조절과 운동에 몰입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먹고 싶어서 먹었고, 그게 행복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임신 중 몸무게와 다름없는 몸이 되어 있었다.

나는 원래도 마른 체형은 아니었지만, 출산 후 관리하지 못한 ‘흉한 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분명 아이는 남편과 내가 사랑으로 낳은 아이였는데, 남편의 몸은 그대로였고, 나만 변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몸무게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주눅이 들었다.

내 이야기가 아니어도 혼자 찔려서 반성하게 되는 순간들.

외롭더라.

나만 이렇게 사는 건가 싶어서.


특히 연예인들이 출산 후 빠르게 몸매를 회복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비교하게 되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살아온 인생이 아니었는데, 출산 후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는 것을.

출산 후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분명 나만은 아닐 텐데, 주변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고독감은 더 깊어졌다.


‘복직하면 좀 나아지겠지.’

하지만 복직 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운동을 하지 않았고, 워킹맘의 삶에 운동을 끼워 넣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홈트레이닝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PT를 등록했지만, 다이어트 때문이 아니라 건강 문제로 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내 몸은 예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나의 다이어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가끔씩 고독감이 몰려오지만, 나는 안다.

내 몸무게와 상관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과 아이가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나는 노력하고 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다이어트일 뿐이다.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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