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시에서
브랜드사이드로 오게 되었지만.

by 클레어온더문

22년 차인가 23년 차인가 아님 24년 차?

대학원을 다니면서부터 일을 했으니. 그 정도쯤 된 거 같다.

돈을 벌고 싶었고, 그래서 미술이 아닌 디자인을 하면 돈을 예술가보다 더 벌 수 있다고 해서 디자인 과를 선택했다. 돈을 벌고 싶은 것은 여전하다. 돈을 벌어서 스스로 충족될 수 있을 때까지 그만큼 충분히 벌고 싶다.

그래서 대학원을 다니며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싶어서 디자인 작업 알바를 하며 돈은 조금씩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학생활을 마치며 한국에 와서도 잉여스러운 내가 너무 싫고 돈을 빨리 벌고 싶어서 어떤 회사이던 나에게 적정 수준의 월급을 주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 헸다.

그렇게 일하면서 조금 더 나에게 돈을 더 많이 주는 회사로 이직하고 이직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지금의 나의 회사는 대한민국에서 네임밸류로 손꼽자면 1,2위를 다투는 대기업이다.

외국계 전신을 두었다 해도 대대행사? 에서 입사하여 일하던 내가 대기업 인하우스 에이전시로 옮기고, 대행사에서 광고주가 시키는 업무를 밤낮없이 하는 것이 너무 고달파서 브랜드 관점에서 큰 기획을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에 브랜드 사이드로 이직했고 대기업 브랜딩 업무를 하다가, 다시 그전에 일했던 에이전시를 인하우스로 두고 있던 대기업 본사로 이직을 했다.

웬걸. 브랜드사이드로 오면 내가 하고 싶은 기획을 잘해서 실현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크리에이티브 기획은 브랜드사이드의 역할이 아니었다. 대기업 브랜드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메이크업하기 위해서 수많은 내부 컨센서스가 필요했고, 특히 오너 드리븐 탑다운프로젝트가 아니면 힘이 실리지 않았다. 콘셉트이나 마켓 지향적 방향의 기획은 우선시되지 않았고, 회사차원에서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오너의 지시였는지가 더 중요했다. 아무리 우리 본부장이 우리 본부는 '스타트업이나 마찬가지야,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로서 미친 짓을 해봐!'라고 해봤자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봤자, 직속상사나 주변팀들은, 그런 거 해봤자 감사받아. 조심해야 해. 안돼. 못해. 이런 소리밖에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무슨 스타트업이고 무슨 새로운 걸 한다는 거지? 그렇게 새로운 시도는 묻히고, 본부장은 안된다고 하면서 동시에 왜 안 하냐고 하며 소리 지르는 아이러니한 나날을 겪으며. 직장인의 매일매일은 내가 생각했던 멋있는 직장인의 나날들이 아니었다. 그게 이렇게 오래도록 될지 상상도 못 했고. 매 순간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수도 없이 거절당하고 꺾이니 점점 자신감이 사라졌다. 오래 일했는데 초년생 때보다 갈수록 점점 더 그렇다.

나는 많은 면접을 보는데, 보통 에이전시 친구들이 브랜드사이드로 오고 싶어 하는 이유는 대부분 나와 거의 일치한다. 어떤 프로젝트, 브랜드를 기획하고 싶은데 에이전시는 정해진 거에서 이것만 만들어주세요. 다른 방향은 없고, 해달라는 것만 잘 만들어 주세요. 이런 방향하에 움직이다 보니, 어떤 프로젝트를 끝내도 항상 목이 말랐다. 성취감은 있지만 만족감은 없었던 상황, 결국 브랜드로 가서 브랜드 자체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브랜드로 와서 오래도록 일해보니, 그 하나 정해주는 거 크리에이티브하게 잘하는 게 속편 했겠다 싶었을 수도! 브랜드에서는 그 하나 정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밑작업을 해야 한다.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 못 하는 수많은 stakeholder들의 공감대를 얻어야 하고, 탑다운 디렉션이 없을 경우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 프로젝트가 그렇게 지난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메이드 되는 시점에 에이전시에게 브리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직장인의 성장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