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껍질

사람이 새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도 그렇다

by 김창훈

노르웨이에 오기 전, 핀란드에서 마지막 날.

한식집 <한국관>에 갔는데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있었다.

여행 중에는 볼 수 없던 한국인을 마주하니 반가움이 일었지만 속내를 감추고 빈자리에 앉았다.

'사장님, 된장찌개 하나 부탁드립니다.'

메뉴를 살펴보지 않고 주문하면서 괜스레 유쾌한 기분이 들어 웃었다.

혼자 여행하다 보니 오랫동안 한국말 할 일이 없다.


음식을 기다리던 중 뒤에 앉은 아저씨가 큰 배낭을 보시고는 혼자 여행 중이냐며 말을 건넸다.

4개월 전 한국을 떠나 세계여행 중이고 앞으로도 꽤나 많은 날을 여행하게 될 것이라는 내 말에 아저씨와 그의 일행들은 탄성을 뱉으며 엄지를 들었다.

세계 여행하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는 처음이라며 운을 뗀 그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식사를 마친 어머님 아버님들께서 몸을 돌려 앉으며 작은 반원이 만들어졌고, 멀리 계시던 분들도 관심을 보이셔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야 했다.

필리핀에서 꾸준히 서쪽으로 이동하며 쌓인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하나씩 꺼내기 수월했다.

여행자들과 영어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단어를 아는 만큼 표현할 수 있어서 어휘의 제약 안에 맴돌아야 하는 답답함이 있었지만, 모국어는 그런 표현의 제약이 없기에 경험과 느낌을 설명하는 자체에 즐거움이 있었다.

이동할 시간이 됐다는 누군가의 외침에 한분 두 분 일어서실 때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과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난 반가움을 담아 인사드렸다.

그제야 음식이 나왔다.


잠시 후 나가셨던 분들 중 한 부부가 다시 돌아와 본인들에게도 두 자녀가 있는데 하나는 서른이 넘었다며, 아들 같다며, 남은 반찬이 이것뿐이라며 반찬이 담긴 검정 봉투를 건네주시고는 가셨다.

깻잎 통조림과 참치, 김, 고추장, 스팸 등이 담긴 봉투였다.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하는 내 손을 말없이 잡아주시고 가셨다.

아들 같다며 주셨으니 부모님을 뵌 듯하여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랜만에 닿은 누군가의 체온은 굉장히 따뜻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보는 그 눈에 세상을 헤쳐 나가느라 고생이 많다며 이해가 담긴 듯했다.

'이렇게 여행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이 나이에 남들이 좋다는 직장생활을 멈추고 세상으로 나온 게 맞는지 모르겠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있는지, 변하고 있는지, 여행을 어디까지 해야 할지, 어떤 경험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지 많은 것이 어렵다.'

순간 마음 한편에 눌러둔 생각이 봇물 터지듯 새어 나와 다 토해내고 싶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눌렀다.

국밥 그릇처럼 큰 뚝배기에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된장찌개를 열심히 먹었다.

노르웨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여행이 연속될지 알 수 없으니 힘을 비축하기 위해 찾은 한식이다.

한 공기를 더 주문했고 주인아저씨는 두 공기 분량의 밥을 한 공기에 쌓아주셨다.


이런 정을 받고 온터라 혼자 광활한 자연 속을 여행해야 하는 이 순간도 든든하다.




오슬로 호스텔에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여섯 시 이른 아침이었다.

커튼 사이로 비춘 햇볕에 드러난 방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침대가 비어있었는데 이른 아침과 밤중에 많은 여행객이 떠난 것 같았다.

광활한 노르웨이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오슬로를 빨리 벗어나야 하는데 목표로 하는 지점은 차로 7시간 떨어진 곳이다.

전체 일정 중 오늘 하루를 가장 고생해서 이동하면 이후로는 이보다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숙소에서 지체할 필요가 없기에 서둘러 씻고 곧장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

오슬로를 벗어나면 아름다운 풍경이 연속될 줄 알았다.

몇 번이고 차를 멈춰 세우고 놀라운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틀어둔 라디오에선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무 개의 노래가 연속으로 흘러나왔다.


<노르웨이의 숲>을 읽기 시작한 건 이동 중 강가에 차를 세웠을 때다.

글은 주인공 와타나베가 비행기에서 비틀스의 <Norwegian Wood>를 듣고 과거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오코와 초원을 걷고 있다.

나는 작가가 나열한 모든 것을 머리로 상상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과거를 더듬는 화자의 시선을 따라 초원과 나오코를 바라보고 화자 본인의 현재에 대해서까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책에서 잠시 눈을 뗐을 때 눈앞에 노르웨이의 강이 굉음을 내며 굽이치고 있었다.

마음에 차오르는 어떤 감정을 마음껏 발산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남들은 여행 버킷리스트에 맛집, 오로라, 스카이 다이빙 등을 적는다는데 나는 마음껏 감정을 발산하고 싶다고 적었다.

살면서 여러 번 기쁨과 슬픔, 뜨거움과 울분을 마음껏 발산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기껏해야 야구장이나 노래방에 가서 소리 지르는 것으로 발산해 온 게 지난 삶이다.

그래서 세계여행을 하면 마음껏 울부짖고 고함치며 내 감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주 작은 티끌까지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부끄러운 것은 세상에 두고 돌아오면 되니까.


하지만 감정을 발산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여행을 시작한 뒤 감정이 차오를 때면 발산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목구멍이 닫힌 것처럼 내뱉어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껍질을 스스로 두르고 있었다.

필리핀을 시작으로 다양한 상황 속에 나를 놓고 껍질을 깨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이것은 일부 성공했고 일부 실패했다.

여전히 감정의 껍질을 벗지 못했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 혼자가 된 순간, 심지어 주변에 아무도 없이 강 앞에 혼자 서있는데도 감정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다.


감정 발산이란 무엇인가. 고함 한번 마구 질러볼 수 있는 게 일반인의 감정 발산이다.

거센 강물이 굽이치며 내려오는 경이로움 앞에서 마음에 차오르는 감정을 소리 내어 내뱉고 싶었지만 주저하고 있다.

주변에 누가 있는 건 아닌지만 살피고 있는 나 자신이 안쓰럽다.

"와" 와 라는 외마디 감탄이 어색하게 입으로 나와서 귀에 닿는다.

괜히 멋쩍어서 한 번 더 길게 "와아아아"라고 외쳤다.

왜 나는 감탄 하나 내지르는데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인간으로 자라왔는가.


개방되고 싶다.

여기서 개방이란 내가 만든 인식의 틀과 감정의 껍질을 깨는 것처럼 내 안의 것에 대한 개방과 외부 자극의 수용성 모두를 말한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단단한 껍질을 내 마음에 두르고 있음을 인지 한 건 세계여행을 나오자마자 필리핀에서부터였다.

한국을 떠나며 환경과 타인이 둘러싼 무형의 것이 벗겨지고 내가 잡고 있던 욕심도 놓자 비로소 내가 만든 단단한 껍질을 발견했다.

호두와 같았다.

그래서 필리핀에서부터 계속 그 노력을 한 것이다.

호두를 두드려 깨듯 나를 둘러싼 껍질을 깨려고 발버둥 친 것이다.

운동을 하려면 그전에 스트레칭을 공들여서 한다.

근육을 유연하게 해서 가동성을 높이는 거다.

여행도 그렇다. 청춘의 발버둥도 그렇다. 사람이 새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도 그렇다.

마음부터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껍질을 두드려야 한다.


강이 만드는 굉음에 묻어 소리를 내 지른 뒤부터 다시 운전을 하면서 놀라운 풍경이 보이면 감탄사를 의식하여 내뱉었다.

내뱉은 것에서 끝내지 않고 크게 소리 지르고 환호했다.

노래를 부르는 게 일상인 민족의 아들인데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리도 어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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