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이란 말을 붙인 사람은 누구

여전히 용기가 필요하다

by 김창훈

45도가 넘는 경사의 바위 산을 올라간다.

체감은 70도. 아차 하면 몸이 뒤로 넘어갈 정도의 가파름이다.

하나의 거친 암벽을 타고 정상에 올라서자 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또 하나의 암벽이 서있다.

신음이 나왔지만 이를 악물고 다부지게 올라간다.

이른 아침 싱그러운 산보와 같은 트레킹을 상상했던 나에게 불쑥 다가온 거친 현실이었다.

대체 노르웨이 3대 트레킹이라는 말을 붙인 사람은 누구인가, 트레킹은 무엇이고 등산과 차이는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트레킹을 명명한 이들은 최소한 이 코스에 적합한 신발을 추천해줬어야 했다.

미끄러움 방지를 위한 밑창이라거나 충격 흡수를 위한 탄탄함 따위는 없는 내 뉴발란스 러닝화는 가벼운 게 최대 장점이어서 오로지 체력과 순발력으로 올라갔다.

위태로운 구간마다 잡을 수 있는 밧줄이 있었으나 그마저도 안전하진 않았다.

밧줄을 잡고도 몇 번 미끄러져 넘어졌다.


Kjeragboltn는 Kjerag 산에 있는 돌이란 의미다.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도 그 돌 때문이다.

언젠가 절벽 틈새에 낀 돌 위에서 발가벗은 남자가 돌아서서 만세하고 있는 포스터를 보고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이후 줄곧 이곳에 오고 싶었다.

도전, 모험, 자유를 담은 사진 속 공간에 가면 나도 그러한 것을 얻을 것이라 상상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아침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공기는 서늘했지만 침구는 몹시 부드럽고 푹신해서 기분 좋은 잠자리였다.

여행을 하는 동안 곤히 잠들고 개운하게 일어나는 것의 반복이 많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스트레스가 없는 탓이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내내 신체가 이완되어 있다.


주섬주섬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을 땐 안개가 걷히고 온전한 협곡의 형태가 눈앞에 드러나 있었다.

양 옆으로 끝없이 늘어선 협곡의 벽은 너무나 거대해서 그 앞에 선 스스로가 매우 작은 존재로 느껴졌다.

살면서 나라는 존재를 세상의 일부로 자각한 경험이 많지 않기에 우두커니 서서 전율을 느끼다가 돌아섰다.

Kjeragboltn 트레킹은 저 협곡의 벽 위로 올라가는 여정이다.


트레킹을 시작하고 꾸준히 두 시간을 걸었을 때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피오르드의 일부이고 협곡을 이루는 절벽의 상단이다.

돌로 된 고지대는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보기 드문 회색지대로 타 행성에 온 느낌이다.

Kjeragboltn, 처음 보는 광경은 상상처럼 대단하지 않았다.

절벽 틈새에 낀 바위 딱 그 정도.

잠시 후 그 바위가 내가 올라온 높이만큼 허공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경이로운 것을 눈으로 보고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것은 큰 영광이지만 그 영광스러운 순간이 죽음과 가깝다고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바위 쪽에 도착한 순서대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올라섰다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슬렁슬렁 해졌다.

대단한 경험이다.

앞서 산을 올라온 사람이 사진을 찍어줄 수 있는지 물어서 가로로 세로로 멀리서 가까이서 줌을 당겨서 풀어서 이 포즈 저 포즈로 최선을 다해 찍어줬다.

그에게 내 카메라를 맡기고 나도 바위에 다가간다.


바위에 가까이 갈수록 밑으로 상상할 수 없는 높이의 허공이 보였다.

바위에 오른 사람이 떨어질 수도, 바위 자체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 열린 가능성이 주는 복잡한 감정이 순식간에 팽창한다.

혼자인 데다가 이런 상황을 전혀 생각지 않았기에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을 타인과 나누고 기댈 수도 없다.

포스터를 보고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 장소를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 바위에 올라서는 것이었다.

사진 속 그 남자는 어떻게 저기에 옷을 벗고 올라가서 뒤돌아 만세 포즈를 하고 서있었을까.

불안함, 초조함, 긴장이 뒤섞여 감정의 파도를 타는 동안 차례는 다가왔고 끝내 눈 질끈 감으며, 해볼 건 다 해보자 싶은 마음으로 조심스레 바위 위로 기어서 올라갔다.

높이를 생각하면 손에 땀이 나고 어지러워서 바위에 오르는 동안 밑은 아예 쳐다보지 않았다.

바위 위에 조막만 한 마음으로 앉았다.

차마 일어설 용기는 나지 않아서 그 자세 그대로 사진을 부탁한 사람을 바라봤다.

그가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기에 나도 어색하게나마 웃으며 포즈를 취한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그대로 도망가려는데 그가 스탠드업을 외쳤다.

일어나 보라고 괜찮다고.

잠시 망설였지만 역시 안될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안될 것 같다고 손사래 치면서도 ‘이왕 왔는데,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라는 미련이 남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한 번의 용기와 즉각적인 실행이 이번 세계여행을 시작하면서 되뇐 주문 같은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그 용기가 필요했다.

그에게 일어나 보겠다고 말하고서 조심스레 일어났다.

누군가의 작은 박수가 들렸다.

긴장으로 굳어있는 몸의 어떤 상태를 유지한 체 손을 하늘로 뻗어 포즈를 취하는 동안 이번엔 조금 더 크고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몸을 바로 세우고 시야가 넓어졌을 땐 사람들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고 나 역시 미소 짓고 있었다.

해냈다는 어떤 느낌과 자신감이 생기며 올라설 때보다 여유롭게 바위를 내려왔다.


카메라를 받아 들고 다시 그 바위를 보면서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느꼈다.

‘맙소사 내가 저기에 올라갔다니’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을 혼자 여행하기 때문에 감정을 고스란히 내비치고 온전히 스스로를 마주한다.

외롭지만, 외롭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순간들이다.

누구 하나 아는 사람 있었다면 포기했을지도, 혹은 용기 있는 척 감정을 포장하며 올라섰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의지할 곳 없는 경험이 혼자 하는 여행 동안 있다.

서울 자취방에서도 감정을 의지할 곳 없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외로움이 있었지만 많은 것이 얽히고설킨 거주지의 일상은 비행기 이륙과 동시에 모든 사슬로부터 벗어나 '여행' 하나만을 계획하고 만들며 느끼는 감정과 달랐다.


넘어온 큰 바위산은 협곡 상단의 아주 작은 돌기에 불과하다.

수직의 절벽 아래는 차마 서서 볼 용기가 없어서 기어가서 엎드린 채로 내려다봤다.

어릴 때부터 높은 곳에 있을 때면 아래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가 있다.

난간에서는 몸이 실제로 기울어서 특히 난간을 기피하게 된다.

정말 까마득히 높아서 엎드려 있는데도 긴장과 아찔함이 몰려오고 아득한 높이에 마냥 경탄하게 된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번 가파른 경사 앞에 다다르자 막막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벽에 기대어진 사다리를 올라갈 때 올라가는 자세로 내려오지 반대로는 엄두가 안 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올라와봤기에 내려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하행했으나 세 번을 미끄러져 넘어졌다.


결과적으로 꽤 즐거운 트레킹 코스였다.

왕복 4시간가량의 적당한 거리이고 가는 과정과 목적지가 지루하지 않다.

만들어진 길보다는 자연 그대로를 각자의 방법으로 자유분방하게 올라가는 묘미도 있다.

경로는 사방으로 트여있고 여기저기 돌에 그려진 'T' 표기가 최소한의 방향 안내를 돕는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행자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바위에 올라갈 수 있고, 피오르드 벼랑 끝에 고개를 내밀 수 있다.

포스터의 장면처럼 멋진 사진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둥근 바위 위를 오르던 경험은 깊게 남아서 언제든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고, 몸이 기울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게 돼서 글을 쓰는 지금도 손에 땀이 배어 나온다.

이런 경험을 하고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값지다.


페리를 타고 피오르드를 따라 이동한 뒤 jorpeland로 간다.




글을 써보려고 시도한 적이 몇 번인가 있었다. 하지만 그땐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지나치게 선명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알게 됐다. 결국 따지고 보면 - 하고 나는 생각한다 - 글이라는 불완전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상념밖엔 없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여행을 하면서 뿐만 아니라 여행을 마친 직후에도 몇 차례 글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마음에 드는 글을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손으로는 글을 쓰고 있지만 기록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과 메모를 굳이 보지 않아도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선명했으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더듬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찬란한 순간들이었다.

다만 사실의 발자취를 쫓는 것에 비해 순간순간마다 느꼈던 감정의 발자취를 쫓는 것은 점점 어려웠다.

사진과 숙박기록, 메모 등을 참고해도 그랬다.

감정은 그날 여행을 하면서도 몇 발짝 뒤에 놓치곤 했던 것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글이 마음에서 풀려 나오기 시작할 때 결국 경험이 아니라 감정의 파편들이 글의 요소가 됐다.

나 자신이 솔직할 준비가 필요했다.

여전히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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