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새와 사랑에 빠졌다_푸른발 부비새
갈라파고스는 에콰도르 본토보다 한 시간이 더 느리다. 그러니까, 한국과 15시간 차이라는 거다.
약간의 습함이 느껴지는 공기, 활주로 옆으로 보이는 선인장들이 내가 지금 갈라파고스에 왔구나 실감하게 했다. 갈라파고스 제도 중 가장 번화한 섬인 산타크루즈의 공항에서는 탐지견이 캐리어 위를 지나다니며 킁킁 냄새를 맡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여행자들은 멀찌감치 서서 검은 개 한 마리가 가방에 발도장을 퐁퐁 찍는 모습을 지켜본다.
(갈라파고스에는 이 곳만의 특별한 동물들과 식물들이 산다. 오랜 세월 고립된 환경이 낳은 결과이다. 갈라파고스 당국은 생태계 보호를 위해 생물, 농수산물 및 씨앗 등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미리 빌려둔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다.
사진보다 방도 넓고 작게나마 키친도 있어 굉장히 맘에 든다. 짐은 대충 풀어 두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을 기다리며 작지만 안락해 보이는 의자에 몸을 늘어뜨려본다. 비싼 항공료에 생활 물가에 각종 체험 비용까지- 앞으로 나갈 돈을 생각하면 손이 벌벌 떨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파고스에 오게 된 이유는 딱 하나다. 궁금해서! 중고등학교 생물 중 유전을 배울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찰스 다윈이 도대체 갈라파고스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책마다 갈라파고스 갈라파고스 하는 건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허기를 달래려 들어간 가게에서 4.5불짜리 점심(almuerzo) 메뉴를 시켰다. 보통 주스(jugo)와 메인 메뉴, 수프(sopa)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는 소고기가 함께 나오는(con carne) 식사를 골랐다. 기대하지 않았던 수프는 무려 닭 수프였는데, 밥알 뺀 닭죽과 어쩜 그리 맛이 똑같은지! 고향의 맛에 감동해 밥을 몽땅 말아 국물까지 싹 비워냈다. 사람 참 단순하다. 닭 수프 한 그릇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을 느끼다니. 솔직히 엄마 밥보다 맛있었다. (필자의 어머니는 요리를 잘 하시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매 끼니를 사 먹을 수는 없는 노릇.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외식은 사치다. 우선 항구를 좀 둘러보고 나서 장을 봐 오기로 했다.
파아-랗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 다른 섬들에 비하면 이 곳 산타크루즈는 동물을 많이 볼 수 없는(?) 곳이란다. 하지만 갈라파고스 답게 바다거북들의 조용한 오후 수영과, 벤치를 차지하고 드러누워 사람들이 오든지 말든지 낮잠을 즐기는 바다사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래, 이 땅의 주인은 너희였지. 1535년 인간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섬에는 어느 것 하나 너희의 꿀잠을 방해하는 것이 없었을 텐데 어느 순간 건물이 들어서고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쪽잠을 자는 신세가 되었구나. 혹시라도 잠에서 깰 까 봐 조심조심 기념사진을 남겨본다.
바다거북도, 바다사자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건 푸른 발 부비새(blue-footed booby)였다.
부비새는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하지만 유독 이 녀석은 생김새가 독특하다. 형형하게 빛나는 눈과 파란 발이 눈길을 끈다. 녀석의 파란 발은 꼭 바다를 닮았다. 날갯짓을 하며 바위에서 발을 뗄 때면 새파란 물이 튀기는 것 같이 상큼하다. 갈라파고스에 딱 어울리는 새다. 나중에 알아보니, 영양상태가 좋은 개체일수록 선명한 푸른빛을 띤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푸른 발 부비새를 만날 때마다 색깔의 짙은 정도를 확인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너는 요새 밥을 잘 못 먹었구나, 잘 좀 먹고 다니지 그랬어- 하며...
혜정언니가 저녁으로 짜장밥을 뚝딱 만들어냈다.
많이 먹어.
짜장 한 국자를 푹 퍼주는 언니가 꼭 먹이를 챙겨주는 엄마 부비새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왠지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발이 파래져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