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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티올 Jun 29. 2019

사원증, 그 잔인함에 대하여

나도 당당히 사원증을 목에 걸고 싶다.

회사원의 상징, 사원증

대학교 강의 시간에 교수님의 초청으로 먼저 취업한 학교 선배가 회사에 대한 소개를 해 준적이 있었다. 그 선배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선망하는 좋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선배는 자랑스럽게 사원증을 걸고 취업 과정과 회사생활에 대해 소개해 주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회사생활을 그저 상상으로만 그려볼 때이고 사원증을 직접 본적이 없었다. 그 때 사원증을 걸고 발표있는 선배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나도 꼭 내가 원하는 기업에 들어가서 내가 다니는 회사의 사원증을 걸고 다니며 회사를 자랑하고 싶었다.


잠깐 봤던 선배의 사원증이 강렬했는지,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갈 때마다 직원분들이 걸고 있는 사원증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비슷할 것 같은 사원증은 회사마다 미묘하게 달랐다. 그런 사원증을 보고 회사의 분위기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통계적으로 반명함 사진을 사용하고 있는 회사의 면접은 딱딱했고, 자유양식의 사진을 사용하거나 화려한 사원증을 사용하는 회사의 면접은 자유럽고 부드러웠다. 면접 때 직원분들의 사원증을 볼때마다 취업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랐고, 나의 취업 동기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데 사원증 색깔이 다르다구요?


계약직으로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가장 충격적이 었던 일은 정직원과 계약직의 사원증 색깔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정직원 사원증은 회사를 상징하는 색이었고, 계약직은 심지어 비슷한 색깔도 아닌 '나 계약직이에요'라고 어디에서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촌스러운 정반대의 색이었다. 계약직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다른 대우를 받을거라고는 각오했다. 하지만 사원증으로 정직원과 계약직을 구분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같은 회사,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데 사원증 색깔로 차별을 하다니......


내가 꿈에 그리던 사원증의 모습이 처절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외부사람들은 사원증의 색만 보고 그 사람이 정직원인지 계약직인지 알 수 없다. 당연히 그 회사 사람이겠거니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사원증의 구분되는 색으로 또 다른 계급을 너무나 눈에 띄게 형성하고 있었다. 계약직이라는 타이틀 자체도 힘든데 다른 색의 사원증은 계약직을 두번 죽이는 일이었다. 일하는 내내 다른 색의 사원증을 걸고 있다는 자체가 나를 더 위축되게 만들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같이 일하는 사람 외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회사에서 지나친 사람이 정직원인지 아니면 나와 같은 계약직인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계약직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만, 정직원은 퇴근 후에도 걸고 다닌다.


내가 상상했던 사원증에 너무나 실망했던 나는 스스로 자격지심이 생겨 대부분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원증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물론 정직원 중에서도 사원증이 일하는데 불편하다며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분들도 많았다. 비록 색은 다르지만 사원증을 당당하게 목에 걸지 않고 주머니에 넣는 나를 볼때마다 참 씁쓸하면서도 계약 기간인 1년 동안만 참자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사원증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친구 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대기업 정직원이었다. 야근 때문에 약속에 늦은 친구는 급해서 잊어버렸는지 목에 사원증을 건 채 약속장소에 나왔고, 자리에 앉을 때 사원증을 목에서 빼며 탁자위에 올려 놓았다. 나는 탁자에 놓였있는 친구의 사원증을 보고 머리가 띵해졌다.


'아, 나는 보여주기 싫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데, 쟤는 얼마나 자랑스러우면 퇴근 후에도 사원증을 목에 걸고 왔을까? 내가 정직원이었다면 굳이 사원증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도 않았을꺼고, 나도 한번쯤은 회사를 자랑하고 싶어서 사원증을 일부러 목에 건채로 퇴근했겠지?'   



나에겐 생각할 필요 없이 당연한 일이 누군가는 간절히 갈망하는 것일 수 있고, 남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나는 가질 수 없어 괴로운 것일 수 있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동안 나에겐 사원증이 그런 잔인함을 처절하게 알려주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 정직원에겐 당연하지만 계약직인 나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언제쯤 나는 정식 사원증을 목에 당당히 걸고 다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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