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마지막 날, 정기검진을 받고 나왔다. 4.5년 차 정기검진이다.
해가 바뀌는 것에 나는 이제 무감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친절히 응대해 주신 선생님 덕분인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문득 글이 쓰고 싶어졌다.
나는 만으로 31세였던 2021년 6월 19일 유방암을 진단받았다. 경황이 없었던 나는 엄마가 난소암 수술을 했고, 내가 난소제거술을 받았던 병원에서 바로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였다. 그 당시 내게는 30대 암진단은 곧 사망판정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다른 병원을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던 전 날까지도 보고서를 쓰고 있을 정도로 바쁜 시기이기도 했고...
수술했던 병원 자체 검진은 늘 일정이 밀리다 보니 n.5년 차 검진은 외부 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하여 결과지를 들고 담당 병원으로 가서 약을 받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었다. 본 병원에 갈 때마다 화가 나서 나오곤 했기 때문이다.
어떤 암경험자들은 담당의와 꽤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고 한다. 적어도 몸의 이상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인간적인 답변은 받는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n.5년 차에 찾아가는 외부병원에서는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도 선생님이 내 질문에 답변을 친절하게 해 주신다. 오늘도 그랬다.
수술 부위는 4.5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딱딱해지곤 해서 약간 당기는 감각과 잔잔하게 아픈 감각이 있다. 어떤 날은 별다른 감각 없이 지나가기도 하지만, 가끔은 신경에 거슬릴 정도의 불쾌한 감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선생님께 혹시 내가 마사지를 한다든가 무언가 스스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일인지 여쭤봤고, 선생님은 마사지보다는 시간이 지나야 해결되는 문제라고 대답해 주셨다.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받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서니 선생님이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과 함께 아까의 질문에 부연설명을 해주셨다. 탄성 초음파로 봤을 때 빨간색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딱딱한 조직인데, 수술을 하고 나면 지방괴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지방괴사라는 것이 수술뿐만 아니라 외부 충격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수술 부위의 딱딱해진 조직을 풀겠다고 무리해서 마사지를 할 경우 오히려 지방괴사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까지 설명해 주셨다.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내가 마음이 몽글해진 이유는 4년이 훌쩍 넘은 이 시점까지도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던 것을 알려주셔서, 그리고 나의 고통을 사소하게 넘기지 않으시는 태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의 암경험은 대단한 생존기가 아니다. 나는 운 좋게 1기에 발견했고, 당시 2센티도 안 되는 작은 크기에 발견했으며, 전이도 없었고, 온코타입 검사 결과 항암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일까, 담당의는 나의 사소한 아픔들에 관심이 없었다. 살았고, 수월하게 치료했으니 됐다는 것일까. 그는 나의 "생존", "살아있음"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항호르몬제를 매일 복용해야 하고, 술은 마실 수 없으며, 조직검사를 위해 림프절 조직을 뗀 오른쪽은 늘 뭉치고 아프다. 수술 부위는 여전히 딱딱하며, 특히 6개월에 한 번 시행해야 하는 엑스레이 검사는, 원래도 무척 아픈 검사인데, 딱딱한 수술부위를 짓누르며 동물적으로 날이 서는 그런 종류의 고통을 준다. 가끔 항암 등의 과정에서 폐경이 되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폐경 대신 자궁내막이 증식하여 매달 고통받고 있다. 너무 강한 항암으로 기저귀를 차야하는 상황에 처할 때 존엄성을 상실하는 것 같다는 또래 암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그것을 매달 겪어야 한다. 삼십 대 후반에 들어선 이 나이에도 강의실 의자에 앉아있다가 달거리가 새어 당황하게 되는 상황을 겪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것에 아무도 관심 없다.
그저 살았음에 행운이라고 생각하라는데, 가끔은 살아있음이 정말 행운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생"을 감당하고 유지하는 비용과 노력이 버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