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싹트네 싹터요 내 마음에 사랑이~
긴 기다림 끝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 식물들은 어느새 고마운 식구가 되었다.
9월 2일부터 시작된 나의 씨앗 키우기는 조금씩 탄력을 받아 화분 속 흙으로 옮겨진 아보카도까지 생겼다. 더디지만 관찰하고 기다리며 나의 소소한 일상 속 확실한 행복을 주고 있다. Good morning? 베란다 속 식물들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밤새 별일은 없었는지 안부를 물어본다. 대답은 없지만 보드랍고 예쁜 새순을..ㅎㅎ
한국에서는 겨울이 되면 베란다의 식물들을 실내로 들이지만 이곳 베트남은 11월 인데도 반팔 차림에 긴팔 카디건 정도를 입을 정도로 따뜻하다. 그래서 베란다에서도 식물들이 잘 자란다. 어릴 적 생물시간에 식물 싹튀우기를 배울 때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지금은 생물 선생님이라도 된 듯 싹 튀우고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처음 시작은 무싹을 키워서 먹는다는 언니를 따라 플라스틱 통에 키친타월을 깔고 물을 조금 부어 젖힌 후 무 씨를 뿌렸다. 하루 지나 불어있는 씨앗에서 꼼지락꼼지락 싹이 텄다. 그리고 이틀 후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일주일이 지나자 제법 무싹이 크고 있었다. 오 홀~ 신기 신기해!. 그 후 이삼일이 더 지나자 무싹은 샐러드용으로 또는 샌드위치 속으로 그리고 비빔밥 속에서 알싸한 맛을 내며 내 입속으로 들어왔다.
그 후, 아보카도를 먹고 버리던 씨앗을 키우게 되었다. 유튜브를 검색한 후 날짜별로 아보카도를 물에 담가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나란히 5개의 아보카도 씨를 바라보며 뿌리가 나길 바랬다. 생각보다 씨도 크고 모양도 뾰족하고 둥글넓적했다. 며칠이 지나고 반으로 벌어진 틈으로 싹이 올라왔고 조금씩 변신을 했다.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누며 이뻐해 주었더니 뿌리를 내리고 싹을 올리고 잎사귀로 보여주었다.
다만, 성장이 빠른 씨앗과 좀 더디지만 천천히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씨앗을 보며 어쩜 식물들도 이렇게 다른지 처음 알았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주인의 인사를 받고도 조금씩 다른 성장을 보여주었으며 모양도 색깔도 비슷한 듯 똑같지 않았다. 사람마다 다른 외모와 자신만의 개성이 있듯이 식물들도 그랬다. 9월 2일생 아보카도는 보통 한 줄기가 올라오는데 두 줄기가 올라왔다. 참 신기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 이제야 뿌리를 내리고 있는 늦둥이 아보카도까지 그렇게 나의 식구가 되어갔다. 첫째 사랑이 아보카도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베트남 하노이에도 귤이 많이 나왔다. 유난히 작고 귀여운 귤을 사 왔는데 씨앗이 제법 컸다. 호기심에 씨앗의 딱딱한 부분을 벗겨내니 연초록빛의 부드럽고 반짝이는 씨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또 싹튀우기를 했다. 뚜껑 있는 플라스틱 통에 키친타월을 잘라 넣은 후 물을 붓고 씨를 담고 뚜껑을 덮어둔지 3일 만에 싹이 났다. 조심스레 화분에 살포시 넣어 흙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네가 먼저 아니 내가 먼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앙증맞은 연초록 잎이 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중이다. 둘째 상큼이 귤 씨다.
그러던 중 작은 아들의 생일(11월 3일)이 되어 미역국에 완두콩밥을 짓고 남은 완두콩 몇 알을 빼내어 싹틔우기를 했다. 완두콩은 3일 만에 씨눈과 뿌리를 꼼지락 거렸고 귀요미 자태를 뿜 뿜 뿜어 올렸다. 신통방통하고 이뻤다. 화분을 사서 흙속에 살포시 묻어 주었다. 며칠 후, 연초록빛 싹이 짙은 초록빛을 띠며 자라고 있다. 생일 기념 완두콩이 아들처럼 쑥쑥 자라주길 바란다. 셋째 귀요미 완두 콩씨다.
이웃에 사는 친한 동생이 제주도 배가 베트남 하노이까지 배달되었다며 한 개 먹어보란다. 반으로 가르니 까만 씨가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배는 먹고 씨는 발취했다. 6개쯤 4개는 컸으나 두 개는 너무 작았다. 딱딱한 씨를 벗겨내니 하얀 배 씨가 뽀얀 속살을 드러냈다. 똑같은 방법으로 싹을 틔웠고 3일 후 연초록 색깔로 변신하여 새순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중한 한국 제주도 배 씨도 흙속으로 살포시 옮겨주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싹이 한 개뿐이다. 그래서 넷째는 소중이 배 씨다.
분주하고 바빴던 한국에서의 아침이 생동감 있었다면 지금의 아침은 새싹들과의 대화로 여유롭게 시작된다. 그렇게 식구가 늘어났다. 작은 베란다 가득 새싹들과 인사를 주고받던 중~ 잭푸르트라는 열대과일을 사 왔다. 설마 너도.. 그렇다 딱딱한 껍질을 과일칼로 조심스레 벗겼다. 그 안에 미끄러운 씨앗이 들어 있었다. 겉은 노란 과일이나 속씨는 초록이었다. 3일 후 두쪽으로 쪼개 졌고 5일쯤 지나 싹이 나고 뿌리가 생겼다. 조심스럽게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다섯째 초록이는 열대과일 잭푸르트이다. 어느새 작은 농부가 된듯하다.
나무를 심는 노인
나이 지긋한 노인이 정성을 다해 뜰에 어린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던 나그네가 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그 나무에 언제쯤 열매가 열릴까요?"
"이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70년은 지나야 할 거요."
"할아버지께서는 이 나무에 열매가 맺힐 때까지 살아계실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허허, 어찌 그때까지 살 수 있겠소. 내가 살고 죽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오. 내가 태어났을 때 이 뜰에는 나무마다 주렁주렁 과일이 열려 있었소.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의 할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어린나무를 심어 놓은 것이지요. 나도 내 후손( 자신의 세대에서 여러 세대가 지난 뒤의 자녀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위해 할아버지와 똑같은 일을 한 것이라오."---아이세움 논술 명작 중에서---
탈무드는 유대인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2000명의 학자들이 10년에 걸쳐 펴낸 책으로 위대한 유대인들의 지혜와 정신을 담고 있는 바다 같은 책이다. 수업을 하면서 탈무드를 읽고 감동적인 곳을 찾아오라 했더니 11세 여학생이 찾아온 글을 옮겨 적어본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의 제자에게서 오늘도 나는 삶의 지혜를.. 선물 받았다. 참! 신기 신기해! 커다란 나무 열매의 씨가 작고 미약하지만 긴 세월을 거쳐 커다란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더디지만 자신의 색깔과 개성을 가진 멋진 나무로 성장해 가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이 키우는 아보카도는 언제 열려요? 귤은요? 배는요?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