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고 억울한데 그걸 표현하기엔 아빠는 너무 무서웠다. 당장 용돈부터 끊어버리겠다고 하면 나는 굴복하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경제적 능력, 교육, 모든 것을 의존해야 했기에.
첫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오늘은 늦게까지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해도 버럭 하며 집에 돌아오라고 화를 내면, 나는 붓을 내려놔야 했다.
그것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는 사건이었다. 하루에 2시간 이상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는 것일까? 거짓말하고 놀러 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내가 대체 무엇을 잘못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두운 생각들이 몰려왔다.
엄마도 내 생각을 읽으려 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나를 자신이 꿈꾸던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떤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는지, 성적은 왜 높아야 하는지, 나는 제대로 이해도 못한 채 부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나마 미술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줘야겠다고 판단했다.
엄마의 경우, 우연찮게 해결 방안이 하나 체득하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나를 믿으라’는 말을 하였다. 나 믿지? 이건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 마.라고 말이다.
그러면 엄마는 불안한 잔소리를 멈추고 알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 방법이 통하는 게 신기하면서도 슬펐다.
내가 엄마를 의지하지 못하고 엄마가 날 의지하는가? 그게 과연 일반적인 어른과 아이의 관계일까 싶었다.
좀 더 지나서는 간섭하지 말란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단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늘 짜증 가득한 잔소리와 불평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 엄마도, 아빠도, 나도 이해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와중에 다니는 그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가장 어린아이였다.
내리 갈굼은 동생 다니를 향하기 시작했다.
밥을 먹다 말고 다니에게 숟가락을 던지고 나서 깨달았다. 얼어있는 다니와, 어느새 가장 싫어하던 아빠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는 나.
그때를 떠올리는 것은 괴롭다.
엄마 아빠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고, 서로 감정이 고조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질러 보는 성격이 못되어 번번이 굴복하고 눈치만 보았다. 그런 자신에게도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언제나 현실에 타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태도와 행동이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에 익숙해져, 또 다른 약자에게 똑같이 행동하는 나 자신이 충격적이었다. 나는 달라져야 했다. 싫어하는 행동을 닮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 생각은 여전하다. 그 이후로도 계속 다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고, 비슷한 이유로 아이를 낳고 키울 자신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