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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mish Jul 19. 2020

고래가 그렇게 떠나갔다

도시로 물드는 스물여덟 걸음

나의 이야기에 가장 귀 기울여주던 고래가 그렇게 떠나갔다. 



한바탕 폭풍 같은 학창 시절이 지난 뒤, 성인이 되자 집 안의 분위기는 풀렸다. 

나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였고, 가족들과는 자주 연락하지 않았다. 10대를 거치면서 더욱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학비는 대출을 받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스스로 벌기 시작했다. 아빠의 경제 상황에 대해 눈치채고 있었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 제대로 발언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우습게도 내 예상은 적중했다. 


집에 대한 애정은 딱히 없었다. 서울에서의 집이 새로운 고래가 되진 않았다.

나의 집이라는 개념 없이 기숙사, 하숙 혹은 월세살이를 하며 떠돌았다.

부대껴 살며 서로의 온갖 짜증을 받아 살아야 했던 예전에 비해, 꼭 필요한 정보만 나누는 것도 화목해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이따금씩 듣는 불평이나 볼멘소리는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었다. 가끔, 드문드문 방문하는 본가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졸업하기 전 마지막으로 수강한 대학 수업은 서양화 수업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궁 마을에서의 기억이 가장 포근하고 반짝이던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는 있는 힘껏 그곳의 풍경을 종이 위에 담았다. 진하진 않지만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리는 얇은 붓터치는 그곳에서 보낸 어린 날의 시간들과 다름이 없었다. 조그맣고 사소한 추억이 쌓여 만들어진 풍경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 종이 위의 이층 집은 옅은 빛깔을 천천히 덧대어져 밀도가 쌓였다. 


엄마에게 한동안 궁금해하지 않았던 이층 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엄마는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길 때까지 나의 고래에 대한 안부를 미뤄두었다.


할머니까지 돌아가신 후 아빠는 점점 어두워졌다. 무언가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 다락방 집 가족과도 소원해졌다. 지니와 무니도 대학생활을 하느라 서울 혹은 다른 지역에서 지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살 길을 찾아 나서는 동안 어른들 사이에선 알 수 없는 감정의 골이 파이고 있었다. 


그 시기에, 우연히 무니를 만난 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무니가 어른들의 묘해진 사이에 대해 말해주었다. 어른들이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해서 우리까지 안 좋아질리는 없었다. 우리는 남의 얘기를 하듯 각자 아는 어른들의 입장에 대해 공유했다.

아빠가 입을 다물고 혼자 힘들어하는 동안 고모도 속만 앓았다. 친구 같던 남매는 오해가 쌓여갔다.


나는 이제 어느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할머니의 부조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아빠가 집에서 엄마와 하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무니에게 말해주었다. 아빠는 부조금으로 장사할 생각이 없었다. 

할아버지 장례식 때 슬플 겨를이 없을 만큼 바쁜 상을 치렀기 때문에 할머니 장례는 상조에 의뢰를 했다. 모든 부조 금액을 이 장례식에 맞게 써달라고 하고, 아빠는 오롯이 슬픔에 집중했다.


어른들은 그런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 나는 좀 놀랐다. 직접적으로 물어만 봤어도 알 수 있던 일 아닌가.

무니가 그 이야기를 곧바로 고모에게 말해주었을까 싶었지만, 몇 달 뒤 가족들이 다시 뭉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대화를 하지 않으면 오해는 풀 수가 없다.


그 후 아빠의 경제 사정이 점점 더 좋지 않아 졌기 때문에 추억 가득한 이층 집과는 그렇게 안녕을 해야 했다. 아빠는 결국 감당이 되지 않는 이층 집을 그의 누나에게 팔았다. 아빠의 자존심을 고려해봤을 때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었는지, 가족이 아니면 몰랐을 것이다. 고모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마련하여 그 집을 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모가 그 집을 구매한 것이기 때문에 그 집이 완전 남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집이 팔렸다는 건 나와 다니에게 무척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우리 집이라는 타이틀을 넘겨주게 된 게 사실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이층 집은 우리에게 어린 시절을 의미했으니까. 

이제는 우리 집이 아닌 이층 집.


어린 시절 나의 이야기에 가장 귀 기울여주던 고래가 그렇게 떠나갔다. 

아니, 고래 입장에서는 내가 떠난 것일 수도 있겠다. 


아빠의 아이들을 위해 부수적으로 장만했던 아파트를 팔았으면 더 좋았으련만. 이제는 그 아이들이 다 커버렸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빠는 돈을 벌 줄은 알았지만 불릴 줄은 몰랐다. 번 것에서 즐길 만큼 쓰고, 소소하게 행복한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만큼 매일 일해야 했다. 아빠는 더 이상 젊고 유연한 사업가가 아니었다. 새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무산되었다. 아빠는 힘든 시기를 지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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