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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mish Jul 21. 2020

나는 펜을 들었다

도시로 물드는 서른 걸음

나는 펜을 들었다.



지니와 무니를 다시 만나기 시작한 것은 지니가 아이를 낳고부터였다. 지니는 정착할 목적으로 한강의 서쪽에 신혼집을 구했다. 무니도 같은 동네에서 자취를 시작하였다.


이 곳 저곳 떠돌이 생활을 하던 나 역시 같은 동네로 이사하였다. 잠시가 될지 오래가 될지 모를 일이었지만 동네가 평화롭고 맘에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가까운 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고모와 고모부가 어울려 살기 시작한 때도 내 나이 이쯤이었다고, 추측해본다.


이 나이쯤, 그러니까 스스로의 경제력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때 아빠는 서울에서 물막으로 갔던 것이지만 어른이 된 궁 터의 아이들은 한강의 서쪽으로 올라왔다.


지니는 말했다. 아이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네가 어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솔직하게 네 입장에서 다시 얘기하자면, 낳지 않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언니는 말했다.


무니는 몇 년째 병원 일을 하고 있다. 늘 금방 흥미를 잃고 방황하던 땡깡쟁이가 이제는 적성을 찾고 인내심을 기른 모양이었다. 똑 부러지게 일사천리로 업무를 끝낸 뒤에는 조카들을 돌보러 지니 언니 집으로 향하곤 했다.

다니는 보안 업계에 발을 내딛고 있었다. 아직 학생이면서 이따금씩 돈을 벌기도 하는 것 같았다. 기특했다.


나는 공식적으로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단 이후로 매너리즘에 빠졌다. 좋아하는 것으로 업을 이루겠다는 목표 하나로 진취적으로 달려왔는데, 큰 회사의 부품처럼 일을 하면서 나의 열정, 가치 있는 시간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었다.


문득, 어째 어릴 때보다도 확신이 없는 오늘을 살고 있는 것 같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나는 할아버지의 걱정스러운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화가가 될 거야. 그림을 그리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면 되는 거지! 그게 내가 말하는 화가야!’ 하는 자신감이 있던 아이였는데. 그걸 정한 이후로는 거침없이 달려왔는데, 지금은 왜 멈춰 서서 먼 곳의 무엇을 가늠만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펜을 들었다. 어릴 적 온갖 재밌는 머릿속 이야기를 달력 뒤 이면지에 그려대던 것처럼, 포근한 어린 시절을 그려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목적은 그게 다였다.




-궁 터의 이층 집 이야기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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