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안 에세이 <내 안의 발작버튼>
방송기자는 인간의 말을 탐색하는 직업이다.
이 업의 본령은 뉴스 리포트를 만드는 것인데, 리포트 핵심 요소는 인터뷰다. 방송사 보도국에서는 뉴스 제작을 할 때 인물이 말하는 부분을 '싱크'라고 칭한다. 싱크(sink/sync)’는 synchronization(싱크로나이제이션)의 줄임말이다. TV 뉴스에서 인터뷰 영상과 음성(입 모양과 소리)이 ‘동기화(synchronized)’된 상태 그대로 들어가는 컷을 일컫기 때문에 sync → 싱크라고 굳어졌다. 싱크는 인터뷰 등 뉴스 인물의 음성이 나오는 부분이다. 즉, 기자 내레이션이 아니라, 취재원 육성 그대로 쓰는 컷이다.
방송뉴스와 신문 보도의 가장 극명한 차이가 바로 싱크의 유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문보도도 취재원 인터뷰가 중요하다. 그러나 취재원의 말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적지는 않는다. 컨택스트에 맞게 기자가 글로 재창조한다. 인물의 말을 '저널리즘적 텍스트'의 형태로 응축하는 것이 신문 보도의 특징이고, 방송 보도는 인터뷰에서 가장 강력한 싱크로 기사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신문 저널리즘이 보다 문학적이고, 방송 저널리즘이 보다 센세이션 한 각자의 개성을 지닌다.
방송기자에게 '싱크'를 '잘 따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직업적 자질이다. 방송뉴스는 시간이라는 제약을 엄청나게 받기 때문에 기자 내레이션과 싱크가 아주 집약적이고 치밀하게 구성돼야 한다. 기자 내레이션에서 얘기한 부분이 싱크에서 반복되는 것은 최악이다. 여러분도 방송 뉴스를 보실 때 이 부분을 집중해서 보면 금방 기자의 역량을 판별할 수 있다. 방송 뉴스를 듣다가 "뭔 소리지?" 싶은 생각이 든다면 십중팔구 이 경우다. 기자 내레이션과 싱크는 서로 면밀하게 뒷받침되면서 기사의 '야마'(핵심)를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특히나 '싱크 집착자'인데, 취재원을 인터뷰한 풀 영상을 매의 눈으로 다시 보면서 기사의 야마에 딱 붙는 '압도적 한 싱크'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스타일이다.
이를 위해선 인터뷰를 하는 당시에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며 질문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정말 내가 '따고 싶은 싱크'를 말하는 취재원을 만나면 정말 업어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런데 방송 기자 생활을 오래 하며 놀라운 비밀을 깨달았다. 그것은 카메라 앞에서 보고 들은 싱크와 그것을 영상으로 찍은 싱크가 상당히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분명 인터뷰 당시에는 상당히 괜찮은 멘트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나중에 영상으로 보니 그렇게 느껴지지 않고 작위적인 경우가 꽤 있었다. 특히 그런 케이스는 자타가 지식인 계층이라고 자부하는 이들, 즉, 교수나 정치인, 공직자 인터뷰에서 빈번했다.
왜 이런 그 간극이 왜 생겨나는 걸까?
오랜 기간 탐색한 결과 나의 결론은 이렇다. 인터뷰 당사자, 즉 인터뷰이가 멋지고 훌륭하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강할수록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 현장에선 미처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데, 카메라를 통과하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매체 예술은 대단한 장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진정성이 결여된 시퀀스'는 카메라 렌즈라는 엄정한 심판관을 통과하기 어려운 것이다.
반면, '진심'을 얘기하는 이들의 인터뷰는 다르다. 인터뷰 현장에서는 그냥 무심히 지나쳤는데, 촬영본으로 보면서 놀라는 경우가 꽤 있았다.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시민 인터뷰, 또는 신산스러운 삶을 겪어내신 분의 싱크가 훨씬 담백하고 진짜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삶의 고수들은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들. 내 마음에 꽂히는 싱크를 만났을 때의 감동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최효안 예술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