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안의 인간연구소>
박물관 하면 흔히 공공박물관을 떠올리지만, 다양하고 뛰어난 유물을 공공 예산으로 모으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사립박물관의 존재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문화예술이 발전한 나라일수록 국공립 박물관 못지않게 사립박물관 숫자도 많고 컬렉션 수준도 훌륭하죠.
멋진 컬렉션을 갖춘 사립박물관들이 넘치는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명실상부 최고 수준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사립박물관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치 있는 유물을 계속 구매하고, 수준 높은 대중 전시를 기획하며, 동시에 관련 연구도 병행하는 박물관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키 위해선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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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고려 14세기, <고려 수월관음보살도>, 호림박물관 소장
“사립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집을 계속할 수 있는 재력과 안목입니다. 호림박물관은 두 가지를 다 갖춘 드문 박물관입니다. 그래서 호림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밝은 박물관이에요. 지금도 꾸준히 유물을 수집하고 전문가를 동원해 보존 연구하는 호림박물관은 살아 움직이는 활화산이라고 할 만합니다.”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中, 눌와, 2012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대형 사립박물관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은 삼성그룹 뮤지엄 리움과 호암이죠. 그러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리움과 호암에 필적하는 컬렉션을 갖춘 사립박물관이 있습니다. 바로 호림입니다. 개성 출신 기업가 윤장섭이 자신의 호인 호림(湖林)으로 호암(湖巖)과 같은 해인 1982년 개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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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호림 윤장섭 / 사진제공. 호림박물관
“지난 100년을 통틀어 한국에서 박물관다운 사립박물관을 만든 곳은 두 곳밖에 없습니다.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림박물관이지요. 국내에 수많은 사립박물관이 있지만 박물관의 일상적인 활동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니 개인 컬렉션이라 할 수 있지요.”
-유홍준 명지대 교수,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中, 눌와, 2012
미술사학자 유홍준이 국내 사립박물관 가운에 투 톱(Two Top)이라고 단언할 정도인 호림박물관은 국보 8건 16점, 보물 46건 51점 등 토기, 도자기, 회화, 전적, 금속공예, 목가구 등 다양 한 분야의 문화재를 무려 1만5000여 점 보유했습니다. 올해로 43년째, 묵묵하고 조용하게 우리나라 최고의 국가 유산을 대중들과 나누는 일에 집중하고 있죠.
호림이 리움이나 호암에 비해 대중들에게 생소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박물관 창립자인 故 호림 윤장섭(1922~2016)의 타고난 성품인 성정(性情)과 깊은 연관이 있죠. 본질에 집중하고 허명(虛名)은 경계하는 개성상인 특유의 기질이 박물관 운영에도 그대로 투영됐기 때문입니다. 윤장섭은 생전 언론 인터뷰 요청을 거의 거절했습니다. 심지어 문화재 수호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정부에서 국민훈장목련장을 수여할 때조차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다녀왔을 정도입니다.
개성 출신 윤장섭은 정미소를 운영하며 중국과 무역을 했던 개성상인 부친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아 무역업, 증권업 등으로 큰 부를 일굽니다. 이미 1960년대에 성보실업, 유화증권 등 굴지의 기업을 일으켜 기업가로서 탄탄한 기반을 구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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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호림 윤장섭 / 사진제공. 호림박물관
그에게 훗날 차례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는 최순우, 황수영이라는 당대 최고의 고고미술사학자들이 1969년 찾아옵니다. 두 사람은 월간지 <고고 미술> 발간 비용이 없어 애를 태우다 같은 개성 출신 윤장섭을 찾아오게 된 겁니다. 우리의 고미술에 대해 딱히 잘 알지 못했던 윤장섭이지만, 자신의 부를 가치 있는 일에 쓰고 싶단 생각에 흔쾌히 잡지 발간 비용을 지원합니다. 만약 이들의 만남이 없었다면, 오늘날 호림박물관 대표 컬렉션인 국보와 보물을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이 만남을 통해 윤장섭이라는 기업가는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가 해외로 계속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막대한 사재를 들여 문화재 소장이라는 숭고한 사명에 헌신하게 됩니다. 최순우, 황수영, 진홍섭 이른바 ‘개성 3인방’이라 불리는 불세출의 미술사학자들은 윤장섭에게 반드시 소장해야 할 귀한 문화재를 판별해 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합니다.
해외에 뺏길뻔한 무수히 많은 우리 문화재를 수호한 것만으로도 놀라운 업적이지만, 호림의 더욱 의미 있는 행보는 한국 사립박물관 시스템의 매우 바람직한 선례를 구축했다는 지점입니다. 그는 이미 생전에 성보문화재단을 세워 자신이 일생에 걸쳐 모은 문화재 1만5000여 점의 소유권을 넘깁니다. 그리고 개인 소유의 부동산과 유가증권 등 막대한 수입원 또한 이 재단에 기부합니다. 자신의 사후 수백 년이 흘러도 박물관이 재정난을 겪지 않는 시스템을 굳건히 만든 겁니다. 자식들에게는 미리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돈은 물려주지 않는다고 했어요. 대신 공부는 하고 싶은 만큼 하게 해준다고. 왜 그랬느냐, 글쎄요.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배웠으니까 배운 대로 실천을 해야겠다, 그렇게 결심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유물을 모은 뒤에는 혼자 갖지 말고 공개해서 여러 사람에게 보여줘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는 그대로 해본 거지요. 좋은 의복을 입거나 좋은 음식 먹는 걸 삼가고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실천해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그대로 한번 해본 거예요.”
-호림 윤장섭,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中, 눌와, 2012
호림박물관은 서울 신림 본관과 신사 분관 등 2개의 박물관을 통해 우리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빼어난 문화재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올해로 43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5년에는 7월 26일까지 ‘이름난 보물’이란 명보(名寶)라는 타이틀에 꼭 맞는 호림 보유 최고의 수장품을 공개하는 특별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조선 초기 청화백자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백자 청화매죽문 호>는 1974년 당시 돈으로 무려 4000만원을 주고 구한 작품입니다. 당시 서울 중심가 빌딩 1채의 가격이 그 정도였다니, 백자 1개를 빌딩 1채를 맞바꾼 거죠. 훗날 이 백자는 국보 222호로 지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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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조선 15세기, <백자 청화매죽문 호>, 호림박물관 소장
보물 808호 <금동 탄생불입상>은 오른손은 위로 들고 왼손은 아래를 향하는 모던한 형상으로 현대 미술계에서도 극찬을 받는 작품입니다. 세계적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각과 비견될 만큼, 궁극의 아름다움을 뿜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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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삼국 6세기, <금동 탄생불입상>, 호림박물관 소장
“수천 년, 수백 년 전에 살던 사람들이 만들어 사용하고, 사랑하던 곁에 두었던 유물들을 수천 년, 수백 년 뒤의 사람들이 보고 옛사람을 알고 이해하며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호림 윤장섭, <그기 있었기에-최순우를 그리면서> 中, 진인진, 2017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초월한 사람 사이의 교감을 꿈꾼’ 개성상인 호림 윤장섭의 멋진 꿈 덕분에, 우리는 그가 남긴 1만5000여 점의 소중한 문화재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압도적 우리 예술을 오늘날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죠. 그러나 어떤 인생은 한바탕 봄 꿈처럼 덧없기만 하진 않습니다. 그걸 방증하는 이가 바로 호림(湖林)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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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조선 15세기, <백자 반합>, 호림박물관 소장
최효안 예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