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안 에세이 <내 안의 발작버튼>
나는 불나방이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무섭게 달려드는. 일할 때 속도와 집중력은 나조차 질릴 지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 그것도 내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마음먹은 일'에만 이렇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에는 게으르기가 짝이 없다. 가령 옷정리 등 꼭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작업은, 정말이지 너무하다 싶게 안 하고 버틴다. 불나방이 되는 일은 모두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일들이며, 가시적으로 성과가 눈에 드러나는 것들이다.
취재, 인터뷰, 보도 등 기자로서 해야 하는 일에 늘 불나방같이 덤비다 보니, 한창 필드에서 가장 바쁘게 일하는 주니어 기자 시절에는 일과 일상의 비대칭이 너무나 심했다. 주중에 매일을 불나방처럼 온몸을 불살라서 일에 나를 던지니, 주말에 개인 최효안으로서 삶을 즐길 여력이 전혀 없었다. 늘 주말에는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기 일쑤였고, 일어나려고 하면 침대는 나를 잡아끌며 조금만 같이 있자고 유혹하기 일쑤였다. 일할 때는 그토록 냉정하고 무섭던 나는 주말이면 침대의 유혹에 번번이 지고 마는 한없이 유약한 존재였다.
이렇게 지킬과 하이드처럼 극과 극의 생활이 오래 지속되어도 나는 내 삶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늘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일의 결과물에 화가 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사람은 계속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나의 경우는 건강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로 나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시 들여다보라는 메시지를 수차례 받은 끝에 나의 불나방적 삶의 행태를 깨닫게 되었다.
잘 알겠지만,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렇다. 여전히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다만, 불나방 기간에 내 나름의 데드라인을 둔다. 그래서 반드시 쉬어준다. 그리고 쉴 때는 순수하게 내가 좋아하는 행위를 한다. 그리고 이 행위의 종류를 가급적 많이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낯선 동네 무작정 산책하기이다. 하루를 통으로 비워서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절대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동네 탐색에 나서는 것이다. 이럴 때 교통수단은 당연히 버스. 때로는 집 앞 정류장에서 가장 먼저 오는 또는 가장 집에서 멀리 가는 버스를 무작정 타기도 한다. 이때 가급적 텅 빈 버스를 선호한다. 버스 내 인구밀도가 너무 높으면 싫다. 창밖을 보며 멍 때릴 때는 가급적 혼자가 좋으니까.
하차도 즉흥적으로 한다. 문득 내리고 싶은 동네를 발견하면 내린다. 그리고 천천히 그 동네를 거닌다. 막상 걸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동네가 있는가 하면, 또 이상하게 불안해지는 동네도 있다. 그러면 또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다른 버스를 타면 된다.
낯선 동네 산책, 이게 바로 나의 삶의 숨구멍이다. 나는 앞으로도 더욱 격렬하게 미지의 동네를 산책할 생각이다. 숨구멍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최효안 예술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