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닥이지만, 좋아하는 딸이 있습니다
마라탕 좋아하시나요?
몇 년 전 마라탕 열풍이 불었을 때, 회사 옆에 마라탕집이 생겼습니다.
중국에서 훠궈를 먹은 경험이 있어 호기롭게 볼에 야채랑, 꼬치류를 담고 주문을 하려는 순간, 직원이 몇 단계로 만들어 줄까 물어보더라고요.
중간 맛으로 해 달랬는데, 음.. 이 집 중간 맛은 제가 생각한 중간과 사뭇 달랐더랬죠.
같이 간 후배 직원이 맵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때 몸의 모든 모공이 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이후 회사에서 마라탕을 제 돈 주고 사 먹지는 않았었는데,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마라탕에 아주 아주 빠지고 말았습니다. 용돈으로 마라탕을 사 먹으러 가는 것은 기본이고요. (어느 순간 집 앞 모든 마라탕집 사장님들이 딸을 보고 아는 척이나 서비스 음료를 주는 사태가 벌어졌죠). 그걸로 만족이 안 된다며 쿠* 에서 마라탕 재료를 사서 집에서 매일 해 먹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각종 재료들을 물에 불려두고, 오후에 학교 갔다 와서 그 맵싸하고 쿰쿰한 마라소스(이것도 병으로 샀습니다)로 마라탕을 만들면 집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분간이 안되더군요 ㅠ
내 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저게 그렇게 맛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곤 했는데요.
시험 성적이 제대로 떨어져 애써 제 눈을 피하던 그날, 딸에게 마라탕을 먹자고 제안을 했더랬죠.
그랬더니 얼굴이 확 펴지면서 어디가 맛있고, 어디는 뭐가 별로고 등등 TMI를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저를 *** 마라탕집으로 이끌고, 설명을 해 줍니다. 건두부를 잡을 때는 꼭 집어서 물기를 빼라.. 당면도 바로 보울에 담지 말고, 한번 털어라.. 등등..
조금 있다가 주문한 마라탕이 나오니 얼굴이 환해집니다. 어제까지 죽 쑨 표정은 어디 간데없고, 너무 행복하다며 교정기 낀 입 속으로 당면이며 쇠고기, 목이버섯을 계속 넣습니다.
원래 제 계획은 자기 좋아하는 거 먹이고, 공부에 대한 계획을 진지하게 물어보려 했었죠..
그런데,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뭐.. 그런 생각은 슬그머니 들어가 버립니다.
마라탕 먹고 기분이 좋았는지 집과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다 해 주네요.
엄마가 아빠 앞에서는 강한 척 하지만, 집에 있으면 걱정을 많이 한다.. 내가 이렇게 마라를 좋아하는 건 먹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누구랑 있으면 기분이 안 좋은데, 걔가 계속 나랑 붙어 있으려 해서 난감하다.. 혼자 먹으면 많이 못 시키는데, 아빠가 사주니까 먹고 싶은 만큼 다 담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등등...
마라탕 하나 시켜줬는데 뭐.. 코칭이고 상담이고 다 필요 없을 정도로 마음도 열고 좋아합니다.
이것 참...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