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마음을 여는 짜장라면 끓이기
저는 파주에서 교회학교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30명 정도 있습니다.
누구는 북한이 우리에게 못 쳐들어 오는 이유가 중2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어른들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순수함이 꽤 크게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어른들 이상으로 속 깊게 생각하는 모습에 놀랄 때도 있습니다. (아주 가끔입니다)
학생들과 있노라면 점심 식사를 해야 할 때가 있는데요.
어머님들이 도와주실 때도 있지만, 가끔은 제가 해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40여 년간 장남에 장손,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자란 제가 요리를 해 봐야 뭘 얼마나 하겠습니까..
기껏해야 라면이나 떡볶이 정도인데요.
그래도 집에서 짜장라면을 아이들에게 해 주고 칭찬받은 경험이 있어서, 다음 모임 때 학생들에게 짜장라면을 해 주겠다고 공언을 했습니다.
모임 당일,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양파와 부대찌개용 다진 고기도 사 왔습니다.
출석한 학생들을 세어보니 15명입니다. 무려 15개를 끓여야 합니다.
남은 비빔면 2개도 면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솥에 물을 가득 부어 면만 따로 삶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가장 큰 프라이팬(?)을 준비합니다.
양파를 썰고 식용유를 둘러 볶고, 다진 마늘과 다진 고기도 같이 볶습니다.
향긋한 양파 볶는 냄새가 올라올 때쯤 간장을 조심스레 한 바퀴 두릅니다. 양파기름에 간장이 볶이며 짭조름함과 구수함이 동시에 올라옵니다. 불을 끄고 잠시 대기합니다.
솥에 끓이는 꼬들꼬들한 면이 점점 풀어지고, 미세하게 면의 색깔이 하얀색을 띠기 시작합니다.
불을 줄이고 집게와 뜰채로 면만 건져 양파 볶았던 프라이팬에 올립니다. 면수도 한국자 넣고, 짜장수프 15개를 까서 면 위에 올립니다. 여기서부터 중요합니다. 짜장가루가 조금이라도 튀거나 흐르면 짜장이 연해지고, 청소도 더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라면봉지에 같이 들어있는 올리브오일도 15개 다 뿌립니다.
프라이팬에 다시 약불로 가스를 켜고,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양손에 뒤집개를 들고, 빠르지만 그러나 절제된 손목 스냅으로 짜장가루와 면을 섞습니다. 절대 세게 해서 프라이팬 밖으로 짜장가루가 튀면 안 됩니다.
17개를 비비면서 볶기 때문에 면수 증발을 감안해서 면수를 한국자 더 넣습니다.
(탕수육에 부먹, 찍먹, 볶먹이 있다면, 짜장라면은 졸이냐, 비비냐, 비비면서 볶느냐의 논쟁이 있는 거 같습니다. 저는 비비면서 약불에 볶습니다)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이들이 잘 먹습니다.
양파의 아삭함과 달달함, 중간중간 섞인 다진 고기가 다진 마늘의 풍미가 느껴집니다.
또 해달라는 녀석도 있고, 다음에는 *라면으로 투움바를 해달라는 아이도 있습니다.
어릴 때 할머니께서 해 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 할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그 느낌을 알 거 같습니다.
음식은 놀라운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10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마음도 느끼게 해 줍니다.
준비하는 건 꽤 긴장되는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이 먹는 걸 보면서 그 이상의 기쁨을 얻습니다.
다음에는 제육볶음을 한번 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