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공장 속의 간절한 진료번호들
살면서 난임 병원 이라는 곳에 내가 가게 될 것이라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보통의 사람들 처럼 그 곳에 대해 개념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궁금하지 않았었다. 그 곳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곧 나에게 '정상'의 길에서 벗어난다는 것과 같이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거리감보다 임신에 대한 기다림의 욕구가 더 컸다. 우리는 결심한 그 주에 바로 병원을 찾았다. 나에게 난임 병원의 첫 인상은 ‘임신 공장’ 이었다. ‘수납 - 초음파 - 진료 - 주사 - 약국 등’의 모든 진료 과정이 앱의 바코드를 찍으면 연결되었고, 나는 그곳에서 지난한 스토리를 가진 특별한 한 사람이 아닌 그저 진료번호 ‘11500273’ 이었다. 그 넓은 공간 공간 마다 같은 표정의 다른 ‘진료번호’들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내 안에서 감정이 조금이라도 새어나오면 이 공장의 원할한 가동에 누가 된다는 법칙이 있는 것처럼 그 공간에 속해있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감정도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일단 처음에는 나와 남편의 몸 상태나 문제점이 있는지를 확인 하기 위해 다양한 산전 검사들을 진행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 검사 결과를 보고 어떤 방식으로 난임 문제를 해결해 나갈지 담당 의사선생님과 상의 해서 결정한다고 하셨다. 검사 항목 들은 다양했고, 알 수 없는 영어로 된 항목들 중에서 혹시나 결국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고 나올까봐 두려움이 느껴졌다.
여러번의 바코드를 찍고 여러 섹션을 방문해서 많은 수의 검사를 진행한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내가 진행한 다양한 검사에 비해 남편의 검사는 상대적으로 간소 했다. 물어보니 평생 잊을 수 없는 정말 굴욕적인 검사를 짧고 굵게 진행 했다 했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 앞으로 우리가 진행할 몇 년 간의 오랜 난임 진료 과정 중에서 남성이 실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참여하는 진료는 이 부분이 거의 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그래도 남편의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역할 덕분에 그 불균형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진료번호 '11500273’ 의 데이터를 임신 공장에 저장한 뒤 이제 앞으로 내 진료 번호가 적힌 난자, 수정란들은 많은 다른 진료번호들의 배아 옆에 나란히 저장될 예정이다. '멋진 신세계' 같은 그 커다란 임신공장의 냉동창고 속에는 많은 진료번호 들의 간절함이 하나하나 담겨 있다는 것을 그 날 이후에서야 처음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