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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l 08. 2019

포획된 도시

양승원

(왼쪽) Hashtag, 180x120cm,  2017(오른쪽) For Show, 180x120cm, 2017


사람 없는 사진 속에서

‘사진’을 주매체로 사용하는 작가답게 양승원이 포획, 즉 기록하고 담아내는 건 도시 풍경이다. 도시를 주제로 하는 여느 작가들처럼 그 역시 작가 입장에서 생경하게 또는 흥미롭게 느껴지는 장면을 ‘캡처’한다. 그런데 대상이 독특하다. 얼핏 보면, 도시의 단면과 파편을 캡처한 것 같지만, 기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도시 사람들의 행태다. 누군가는 사람 없는 사진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의 행태를 알아챌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조금만 더 사진과 마주해보길 바란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실제로 목격했던지, 아니면 SNS를 통해 보았던지. 양승원의 시선이 향한 이 장소들은 과연 어디일까. 아마도 무엇인가를 박제해 소유하는 행태가 일어나는 장소, 더 나아가 이 장소의 소유 및 방문 여부로 권력이 형성되는 지점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권력 공간을 풀어내는 방식이다. 으레 작가가 사회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찍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양승원 작업에서 이런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는 실제 존재하는 것을 찍었지만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색을 구현했고, 본인이 재해석한 도시를 관객으로 하여금 다시 해석하게끔 만들었으며, 실재와 모조를 혼재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설치작업과 사진을 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시도도 했다.


실재와 허구, 뫼비우스의 띠

도시를 근간으로 하는 양승원의 작업 모티브는 청소년기의 이주 경험이다. 경기도 이천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19세 때 처음 서울을 방문한다. 그에게 메가시티는 ‘휘황찬란’ 그 자체였다. 야단스런 인공조명의 향연은 과연 이곳이 자신이 알고 있던 대한민국이 맞는지 의구심을 들게 했다. 눈길을 끈 건, 자신의 존재보다 높게 느껴진 ‘고층 아파트’였다. 그때부터 아파트에 관심을 가졌고, 아파트 파사드만 보면 여행자마냥 3인칭 관찰자 시점을 견지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골자는 ‘강변-비싼 집값-부자-권력’이었다. 아파트 외관과 강물에 비친 아파트 형상을 함께 촬영했다. 실재(아파트)와 희미해진 본질(거주 목적)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해 아파트를 담아내기도 했다. 적외선 카메라는 사람의 눈이 인식할 수 없는 빛을 받아들인다. 그래서일까. 사진 속 아파트는 마치 껍데기만 남겨진 모습이다. 눈으로 보는 것 너머에 어떤 것이 존재할지 고민해보라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국한되었던 소재도 다양해졌다. 표면을 훑는 것만으로는 도시의 모순을 설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푸르나의 말을 빌리자면, 작금의 사회를 말하기 위해 ‘공간 연출을 통해 모조 공간을 실제화하고, 허구일 수밖에 없는 공간을 실재로 구현’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클라인 병’에서 영감을 받은 <Klein’s bottle>이 대표적이다. 내부와 외부 경계가 모호하도록 연출된 이 공간은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해서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현대사회를 의미한다. 한편, <Hashtag>와 <For Show>에선 인스타그램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 맛집, 데이트코스 같은 공간을 재현했다. 작업을 보면, 가상공간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가 실제 존재하는 곳을 보여주는 것인지 조작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또한, SNS를 통해 ‘문화적 권력’을 과시하는 행태를 꼬집는 것 같기도 하다.


금이돌이돌이금이(Gold-Dig), 150x100cm, Archival Pigment Print, 2018


세상은 요지경

얼마 전 송은 아트큐브에서 열린 <Ctrl+c, Ctrl+v>에서 양승원은 실제 공간을 모조화한 장소에 집중했다. 앞선 작업들과 비슷한 결이지만, 신작에는 작가의 개입이 빠져 있다. <금이돌이돌이금이>는 금맥을 표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스티로폼 위에 금색을 덧입힌 관광지 현장을 포착했고, <곳간> 역시 곡식을 모아두거나 부를 축적했던 공간을 온갖 조형물로 재탄생시킨 관광지 현장을 담아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원을 빌기 위해 실제로 돈을 던졌다는 것. 무속신앙에서 곳간은 점을 치는 굿을 의미한다는데, 소비를 위해 조성해놓은 관광지가 성스러운 곳으로 치환된 셈이다. 

이처럼 양승원이 그려낸 ‘도시’에선 사회적·문화적 권력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진짜와 가짜가 난무하는, 말마따나 요지경인 세상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그의 작업이 누군가가 권력을 포획한 순간을 캡처했고, 실재와 모조를 적당히 느슨하면서 절묘하게 병치시켰기 때문이다. 혹자는 실재와 허구의 구분이 쉬워 허탈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허탈함 덕분에 이제는 희미해진, 그러면서 동시에 새로 만들어진 본질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투미했는지를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우려되는 점은, 양승원이 도시의 너무 많은 현상에 관여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 나누어 놓은 범주가 모호하기에 한 사람이 끝마칠 수 없는 방대한 작업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작업을 개별적으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모아놓고 보면 응집력이 떨어진다. 커다란 줄기를 중심으로 가지치기하는 것이 아닌, 꺾꽂이 했던 것들을 하나로 엮는다고 할까. 언젠가 작업 양이 많아지면 구심력이 강해지겠지만, 주변부에서 본질의 부재를 논하다 전체 작업의 정체성 부재로 이어지진 않을지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서는 양승원의 무(리)한 도전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르면 그의 입장에선 처음 도시에 가졌던 의구심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요, 우리에게는 사회를 다각도로 조명할 수 있는 소중한 모멘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9.01]




양승원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관념적·시대적 통념을 감지하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물어보는 작업을 한다. 서울예술대학교 사진과 학사를 졸업하고, 첼시예술대학교 순수미술 석사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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