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자연스럽게 비트코인 급등을 떠올리는 투자자들이 많지만, 올해 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차분하다. 가격은 큰 폭으로 흔들리지 않고 박스권 안에서 머물러 있고, 과거처럼 과열된 분위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바로 이 점이 오히려 지금 시장을 지탱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본다. 화려한 상승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무리한 베팅도 적었다는 의미이고, 이는 다음 국면에서의 충격을 흡수할 여지를 남긴다는 해석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장기 비트코인 투자자로 알려진 앤서니 폼플리아노는 과거와 같은 극단적인 폭락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다.
가격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대규모 청산이나 공포 매도도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전 사이클에서는 급등 뒤 과도한 레버리지가 쌓였고, 작은 충격에도 연쇄 붕괴가 이어졌지만, 지금 시장은 그런 구조와 거리가 멀다는 설명이다.
폼플리아노는 비트코인을 평가할 때 특정 시점의 랠리 여부보다 누적 흐름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트코인은 지난 몇 년간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가격 레벨을 끌어올려 왔고, 중장기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대부분의 자산을 압도하는 성과를 유지하고 있다.
연말에 눈에 띄는 상승이 없다고 해서 추세 자체가 꺾였다고 판단하는 것은 시장을 지나치게 단기적으로 해석하는 오류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비트코인 시장이 재미없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변동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씩 움직이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작은 범위에서 가격이 조정되는 구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는 수익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산으로서의 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시장의 중심이 단기 투기 자금에서 장기 보유 성향의 자금으로 이동하면서, 가격 움직임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모든 전망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 트레이더들은 글로벌 유동성 환경과 금리 정책을 이유로 중장기 조정을 경계하고 있으며, 비트코인이 다시 한 번 큰 시험대를 맞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과거처럼 순식간에 붕괴되는 시나리오보다는, 시간을 두고 압력을 받는 형태의 조정 가능성이 더 많이 거론된다. 이는 시장이 충격에 즉각 반응하기보다는 점점 흡수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연말에 불꽃 같은 상승이 없다는 사실은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다. 가격을 끌어올리는 힘은 약해졌을지 몰라도, 가격을 지탱하는 힘은 오히려 강해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더 이상 극단적인 투기 자산이 아니라, 쉽게 붕괴되지 않는 자산으로 성격이 이동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지금의 조용한 흐름은 끝이 아니라,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기 전의 준비 단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