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수단일 뿐 착각하지 않길 바래

삶은 나의 몫

by 서담


요즘 가장 늦지 않으려 애쓰는 이야기를 꼽자면 단연 AI다. 새로운 기술과 변화의 흐름이 어디까지 번질지, 누구도 완벽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어느 분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산업에도, 예술에도, 교육에도, 일상의 가장 사소한 부분까지도 이미 AI의 흔적은 들어와 있다. 모르는 척하며 지나치기엔, 어느새 시대에서 소외되는 것 같은 두려움마저 든다.


실제로 그렇다. 메일 한 통을 쓰는 일에도, 보고서를 정리하는 일에도, 심지어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식에도 AI는 스며든다. 마치 새로운 언어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생각해야 한다. AI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어떤 이는 AI가 만든 그럴듯한 문장이나 이미지 앞에서 감탄하며 그것을 곧장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그럴듯한 결과물이 곧 나의 성취나 내면의 힘은 아니다. 도구의 빛을 자기의 빛으로 혼동하는 순간, 우리는 본질을 잃는다. AI는 삶의 도우미일 수 있지만, 결코 삶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종종 염려한다. 아직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다 분별하지 못하는데, AI의 편리함 속에서 그 모름마저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내가 모르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과정, 그 불편하고 더딘 과정 속에서 비로소 지혜가 자란다. 그런데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주어지는 세상에서는, ‘배움의 결핍’조차 느끼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릴지도 모른다.


이미 곳곳에 거품이 끼어 있는 걸 본다. 포장된 결과물이 곧 능력인 양 오해되고, AI가 대신 내놓은 답이 마치 자신이 도달한 통찰인 것처럼 착각된다. 겉모습만 화려하게 치장된 세계에서 진짜 본질을 찾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냉정해야 한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을 돕는 손길이었다. 바퀴가 그랬고, 인쇄술이 그랬고, 전기가 그랬다. 그러나 기술이 목적이 된 적은 없었다. 바퀴는 더 멀리 가기 위한 수단이었고, 인쇄술은 지식을 나누기 위한 수단이었다. 전기 역시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한 기반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적은 없었다. AI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열쇠일 뿐, 열쇠 자체가 인생의 답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AI를 마주할 때, 두 가지 태도를 동시에 가져야 한다. 하나는 열린 마음이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며 외면한다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고립될 뿐이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냉정한 분별력이다. 편리함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순간, 나는 오히려 나를 잃는다. AI가 대신 채운 빈칸이 많아질수록, 내 안의 생각과 감각은 줄어들 수 있다.


삶의 본질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 어떤 순간에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하며,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AI가 대신할 수 없다. 그 모든 순간은 여전히 나의 몫이다. AI가 해낼 수 없는 일, 그것이 바로 인간의 고유한 자리다. 감정, 직관, 공감, 그리고 불완전함 속에서도 빛나는 선택. 이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본질이다.


나는 AI 시대를 살아가면서 더욱 다짐한다. 편리함을 누리되, 그 편리함에 기대어 나 자신을 착각하지 말자고. 내가 생각한 것과 AI가 대신 내놓은 것을 분별할 수 있는 힘, 그 힘이야말로 진짜 ‘활용 능력’ 일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단순하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삶은 여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몫이라는 것. 내가 내린 판단과 선택, 그 책임은 결코 기술이 대신할 수 없다.


나는 오늘도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네가 진짜로 알고 있는 건 무엇이고, 아직 모르는 건 무엇이냐.” 그 물음을 놓지 않는 한, 나는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기술을 다스릴 수 있으리라.


AI는 수단일 뿐이다. 내 삶의 목적은 여전히 나 자신이 정한다. 그 단순한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거품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19화배움은 늘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