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작한 사업으로, 대학생이라 불린 이후 내 신분은 늘 대표였다. 직원이 한 명일 때도 대표였고 몇 십 명이던 시절에도 대표였지만, 그 타이틀이 주는 무게는 헬스장 렉에 걸려 있는 빈 바처럼 그 자체로 이미 적지 않은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헌데 진짜 나와 대표인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나도 모든 게 처음이었고 서툴렀지만, 나는 이미 해본 사람이어야 했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불안하고 걱정이 드는 결정 앞에서 대표인 나는 늘 의연했지만, 진짜인 나는 두려웠다.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자고 함께하는 이들에게 말해야 했다. 누가 그러라고 알려주거나 시킨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고 그렇게 행동했다. 이 서툼과 두려움을 누군가는 떠안아야 했고 그러려면 나는 대의를 위해 마냥 솔직할 수 없었다. 모두를 위한다는 핑계를 대며 나는 가면을 하나씩 하나씩 얼굴에 얹기 시작했다. 너무 두텁게 쌓여, 어느 순간부터는 진짜인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잊었다. 진짜인 나의 모습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느덧 나는 가면으로 뒤덮인 내가 본래 나인것처럼 살게 되었다.
가면을 쓰고 산지 15년이 지났다. 대표로 지내며 흥했던 때도 어려웠던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즐거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나는 외로웠다. 대표로 혼자였기에 외로웠다기 보단 진짜인 내가 아닌 모습으로 모두를 대해야만 하는 시간들이 나를 외롭게 했다.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들에 나는 있었지만, 나는 없었다.
요즘 나는 그 가면들을 하나씩 벗어내는 중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붙어있었는지 하나씩 떼어낼 때마다 떡진 피딱지들이 우수수 같이 떨어진다. 그마저 어렵게 하나 벗어내면 벌거 벗겨진 기분이 들어 잠시 움츠러들기도 한다. 그래도 한 번뿐인 인생을 가짜로 살다 가고 싶지 않아서 꾸역꾸역 벗어내는 중이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겠는 일이지만 언젠가 이 가면들을 모두 벗어던진 그날에 나는 가장 순수한 얼굴로 나의 사람들을 대할 것에 설렌다. 너무 오래 걸려 그 순수한 얼굴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몹시 짧을지라도, 나는 그렇게 찬란하게 살아보고 싶다.
순수하고 싶다. 찬란하고 싶다. 진짜로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