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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수 Dec 28. 2015

여자도 메인 MC가 될 수 있나요

왜 쇼 프로그램의 여자 진행자는 남자 진행자에 비해 빨리 교체될까?


어렸을 적 즐겨보던 <호기심천국>부터 지금의 <뮤직뱅크>까지. 예능프로그램이라면 으레 남자와 여자 MC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여자 MC는 '너무 빠르다' 싶을 정도로 자주 교체됐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이휘재는 <스펀지>를 진행하는 9년여의 기간 동안 여섯 명의 여자 MC와 호흡을 맞췄다. <한밤의 TV연예>는 더하다. 지금의 윤도현-장예원에 이르기까지 남자 MC는 4명, 여자 MC는 17명이 바뀌었다. 과거 <섹션 TV 연예통신>의 MC였던 한고은의 진행은 두 달에 불과했다.

<스펀지>의 역대 MC, 위키백과

이는 MC의 역할 수행과 연결된다. 내 기억 속 메인 MC는 언제나 남자였다. 여자들은 남자 MC가 외치는 구호를 따라 말하거나 'OOO 씨?'라는 대사에 반응하는데 그쳤다. 보조 MC에 가까운 역할이었기 때문에 교체해도 프로그램에 탈이 없었다. 하지만 이 논리가 '여자 MC를 교체해야 하는 이유'에 조응하지는 않는다. 스포츠 조선은 '여성 파트의 연기자 기용 관행'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여성 MC로 기용되는 연예인의 다수는 연기자라 작품 활동과 진행을 병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기자가 아닌 다른 연예인을 MC로 삼으면 해결될 문제다. 하지만 '여자 MC=연기자'의 관행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지금 방송 중인 공중파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여자 MC 3명 중 2명은 연기자, 1명은 자사아나운서다.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는 사람을 기용한다 하더라도 여성 MC는 연차가 비슷한 남성 MC에 비해 매우 적은 프로그램을 맡는다. 12월 현재 김구라는 7개, 이영자는 3개의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해피투게더>의 박미선, 신봉선도 시즌이 바뀜과 동시에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얼마 전 방송된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김구라는 "여성 예능인의 설자리가 줄어든다"며 장영란, 김새롬, 박슬기, 김정민을 판타스틱 4로 한데 모아 출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요리 프로그램에도 여자 MC는 없다. Olive tv의 <오늘 뭐 먹지>는 성시경-신동엽이 진행하고 EBS의 <최고의 요리비결> 또한 남자인 광희의 몫이다. 쿡방 열풍을 불러일으킨 <냉장고를 부탁해>에도 여성 셰프는 등장하지 않는다. 가족이 먹는 요리는 엄마의 솜씨지만 정작 TV에서 칼질하는 사람은 죄다 남자인 셈이다. '여자'가 없는 TV의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계층이 '30대 여성'이라는 아이러니는 이 의문을 더 키운다.


영국의 BBC는 “영국에서 남성 과학자와 여성 과학자의 실제 비율에 비해 과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과학 콘텐츠에 과학자로 출연하는 남성 과학자의 수가 많다” 는 지적을 받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보고서에 담았다. 한국에서는 먼 얘기다. 얼마 전 잡지 인터뷰에 임한 영화 관계자가 '존재감 있는 여성 배우가 없다'고 말한 것은 여성 연예인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다. 어쩌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흡연, 음주 장면 모니터링보다 남녀 성비를 고려한 출연진 구성에 힘을 쏟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여자로는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현재의 세태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여걸식스>, 아직도 많은 이가 시즌4를 요구하는 <무한걸스> 등은 프로그램에 있어 성별이 중요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는 PD 들은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집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했고 <일밤-애니멀즈>로 동물과 아기를 한 방에 넣었으며 <우리 동네 예체능>으로 매주 새로운 운동을 시청자에게 소개했다. 금기시되던 성(性)까지 <마녀사냥>으로 말해봤으니, 이제 여성 MC로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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