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돌 Aug 01. 2017

제주 한달살기, Intro.

서른셋, 휴직하고 떠난 제주에서의 서른날




힘들었다.


잘 나가는 여행/레저 스타트업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럭저럭 팀장으로서 즐겁게 일해왔다. 나날이 발전하는 프로젝트와 더불어 내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모든 게 만족스러울 리는 없었지만 만족스러운 모든 것을 애초에 품고 있지도 않았기에 성장은 곧 만족이어야 했다. 여기서부터였을 것이다. 덩치만 커가는 어린아이의 심정을 알 리는 없건만, 마치 그런 기분이 들었다. 커가는 체격에 맞는 움직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이 먹어야 했고, 현상 유지가 아닌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만 했다. 10킬로그램에서 20킬로그램으로, 20에서 30으로. 힘이 길러져 있으면 어느새 바벨도 커져 있었다. 고로, 계속 힘이 들었다. 



무너졌다.


사실 확신에 대한 의심은 오래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외면했을 뿐이었다. 의심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주위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직시하고 싶어졌다. 주위가 아닌 자신을, 남이 아닌 나를. 그러자 확신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빨랐다. 걷잡을 수 없는 무너짐은 결국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다시 쌓아보려고도 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내 안의 붕괴인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커져버린 내 자신이 무너뜨린 외부만 신경쓰려 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무너진건 외부가 아닌 내 자신이었기에, 애써 회복하고자 하는 확신을 아무리 바깥에서 찾으려 한들 그런 건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안되겠다. 


무엇을 위해 성장을 좇고 있는가. 또한 성장은 무엇인가. 쳇바퀴 돌듯하는 생각에 몸이 더 금방 지쳐갔다. 방전만을 기다리는 배터리 같았다. 충전을 위한 어댑터가 필요했다. 내게 꼭 맞는 어댑터라야 했다. 규격도 다르고 용량도 다른 수많은 배터리들을 보아온 30여년이다. 더이상 내 배터리의 성능을 탓하거나 그것이 쓰이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을 탓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했다. 결국 내가 찾아나갈 문제고, 그것이 지금이냐 나중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 판단했다. 지금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기에 결정했다. 힘든 가운데서도 가장 즐거운 일을 하다가 발견했다. 여행이었다. 출장 중의 여행에서, 여행하며 출장을 갈 수도 있겠다는 설렘이 생겼다.



여행이다.


시간을 확보했다. 스스로를 설득하는 일에는 결단만 필요했다면, 외부로부터의 자유를 위해서는 진심이 필요했다. 휴직을 하기로 했다. 고민이 길었기에 결정은 간단했다.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걱정을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었지만, 여행을 생각해도 역시 무궁무진했다. 그럴거면 여행을 생각하기로 했다. 현실적인 계산은 잠깐이면 됐다. 주어질 시간은 이미 그런 현실 밖에 있을 것이었다. 돌아갈 것을 생각하지 않는 온전한 자유는 휴가와는 달랐다. 평일 낮의 강남역 활보도, 이른 저녁 엄마와의 데이트도 모두가 여행이었다. 소모와 소비가 아닌 충전과 생산으로 남기고자,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다. 


당장 떠날 수 있는 최고의 휴양지여야 했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곳이라면 더 좋았다. 제주도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3년 연속으로 2박, 3박씩 다녀온 제주는 항상 좋았고 아쉬운 기억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충분히 제주를 둘러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1주? 2주? 에라 적어도 한 달은 지내야 '살아봤다'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어느 여행작가가 그랬다. 어떤 마을을 알려면 최소 일주일, 어떤 도시를 알려면 최소 한 달은 살아봐야 하는 것 같다고. 공감했다. 마음먹고 준비를 시작하니 출발은 빠를수록 좋았다. 일주일을 준비했다.



한달살기


이제 나의 여행은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 가야할 터였다. 단순한 정보의 공유가 목적은 아니었다. 그런 거라면 이미 도처에 충분해 보였다. 여행에도 '공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잘 할 자신이 있었다. 여기에는 최소한의 프레임과 형식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한달살기' 였다. 이미 다수의 사람들이 제주도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일주일살기, 한달살기를 하고 있었다. 많아보였지만, 막상 찾아보면 생각보다 흔하지는 않았다. 서른셋, 갑자기 제주에서 한달살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여행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기록들을 개인 블로그에 연재했다. 그리고 이제, 그 한달을 본격적으로 글로 풀어갈 계획이다. 내 안의 제주에서 한달살기를 마침내 쏟아냄으로써 또 다른 한달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