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일상과 생각 (1)
"변호사님은 머리가 엄청 좋으신가 봐요. 그 많은 법을 어떻게 다 외우셨대요?"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변호사나 판사, 검사 등 법조인들은 모든 법률을 다 외우고 있는 줄 안다. 애초에 법조인이 되기 위한 시험 자체가 법률을 외우고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시험이고 따라서 암기력이 좋은 사람이 시험에 붙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암기력은 법조인이 되기 위한 시험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시험을 볼 때도 필요하고, 암기력이 좋은 사람이 시험을 볼 때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변호사는 정말 모든 법률을 다 암기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변호사, 판사, 검사 등 어떤 법조인도 대한민국에서 현재 시행 중인 법률을 모두 외우고 있는 사람은 없다. 정확이 말하면 외우고 싶어도 외울 수가 없다.
재판을 받아봤거나 방청해 본 사람 중에서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법대 위에 앉아 있는 판사 앞에 두꺼운 책이 놓여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대법전(大法典)이다. 모든 법률이 다 나와 있는 것도 아닌, 추리고 추린 것인데도 6,000페이지 가까이 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시행 중인 법률은 법률과 그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포함하여 5,000여 개가 넘는다. 법원이나 검찰, 경찰뿐 아니라 수많은 행정기관에서 시행 중인 훈령, 예규, 고시 등까지 더하면 20,000여 개가 넘는다. 그 중에는 민법처럼 1,000개가 넘는 조문을 가진 것도 있다. 게다가 수많은 법률들이 수시로 제정, 개정, 폐지된다.
결국 모든 법률을 다 외우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법조인이 되는 시험은 사실 법조문을 누가 더 잘 외우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을 볼 때는 주요 법령을 수록하고 있는 법전을 제공한다.
그러면 법률을 암기하는 게 아니라면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하는 걸까?
한 가지 아주 쉬운 예를 생각해보자.
甲은 乙에게 앙심을 품고 乙이 애지중지하던 고가의 도자기를 깨뜨리기 위해서 도자기를 향해서 망치를 던졌으나, 빗나간 망치는 도자기가 아닌 乙을 맞혀 乙은 얼굴을 크게 다치게 되었다.
甲은 무슨 죄로 처벌될까? 사람을 다치게 했으니까 상해죄가 될까?
법률에 '물건을 손괴하려고 던진 망치가 빗나가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경우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와 같은 규정이 있다면 편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법률로서 미리 규정해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존재하는 법률의 해석을 통해서 위 사례를 해결할 수밖에 없고 이 사안과 관계가 있는 법률을 법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형법
제257조(상해, 존속상해) ①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58조의2(특수상해) ①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제257조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66조(과실치상) ①과실로 인하여 사람의 신체를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제366조(재물손괴등) 타인의 재물, 문서 또는 전자기록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기 효용을 해한 자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69조(특수손괴) ①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제366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71조(미수범) 제366조, 제367조와 제369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제25조(미수범) ①범죄의 실행에 착수하여 행위를 종료하지 못하였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한 때에는 미수범으로 처벌한다.
제15조(사실의 착오) ①특별히 중한 죄가 되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중한 죄로 벌하지 아니한다.
이제 필요한 법조문이 모두 있으니 甲에게 어떤 죄가 성립하는지 맞힐 수 있을까?
사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먼저 甲이 어떤 의도(법률에서는 ‘고의’라고 표현한다)로 망치를 던졌는지 생각해보자.
甲은 물건을 손괴하겠다는 고의로 망치를 던졌다. 망치는 법에서 말하는 위험한 물건이다(위험한 물건은 흉기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널리 사람의 생명, 신체에 해를 가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일체의 물건을 의미한다). 그런데 물건은 손괴되지 않았다. 그럼 일단 특수손괴죄를 범하려고 했으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특수손괴미수죄는 되겠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망치에 맞은 乙이 다쳤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할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람을 다치게 할 고의가 없었음에도 실수로 벌어진 일에 대해서 특수상해죄가 된다고 하는 건 좀 과한 것 같다. 이 때문에 형법 제15조를 적용해야 한다.
甲은 특수‘손괴’의 고의로 행동하였고 특수‘상해’의 고의는 없었으므로 자신의 행동이 특수상해죄가 된다고 인식하지 못했다. 따라서 특수상해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실(실수)로 乙을 다치게 하였고, 과실로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에 적용되는 과실치상죄의 책임은 져야한다.
결론적으로 甲에게는 특수손괴미수와 과실치상의 죄가 성립한다(실제 재판에서의 처벌 범위는 또다시 형사소송법의 해석과 적용을 거쳐서 결정된다).
물론 위와 같은 결론은 판례의 입장에 따른 것이고 학자들에 따라서는 다른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더 훌륭한 학설이 나와서 학계의 통설이 되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 바뀌기도 한다.
이와 같이 법조인들은 ①어떤 사안에 적용될 법률을 찾아내고 ②그 법률을 해석하여 ③사안에 적용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른 해석과 적용, 甲학설에 따른 해석과 적용, 乙학설에 따른 해석과 적용...
이러한 일들을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자주 적용되는 법령은 자연스럽게 암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법령을 다 암기하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에 법전, 아니 스마트폰이나 PC가 필요한 것이다.
당신이 변호사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변호사가 막힘없이 법조문을 읊는다면, 특정한 사건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관련 법률을 너무 자주 접하게 되다 보니 그냥 암기가 된 것이거나, 상담을 위해서 미리 관련 법령을 찾아본 것이다.
변호사는 모든 법률을 외우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