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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ki Nov 16. 2020

미처 자라지 못한 마음은 몇 센티일까

유난히 눈금이 그려진 유리제품에 꽂힌 걸 이전 글에서 한 두 번 말한 적이 있었다.
유리제품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으로 주워다 모은 나의 컬렉션 중에 문구류가 있다.
역사 있는 브랜드에서 나온 독특한 디자인의 지우개를 모은다거나 씸플 한 픽토그램으로 만들어진 스티커로 여행 가방을 꾸미는 습관 같은 것이 곧잘 나의 덜 자란 어린 마음을 달래주곤 한다.

그중에서도 어디에서든 15센티 짤막한 미니 자(ruler)는 나에게 원픽이다.
요즘도 어쩌다 자를 발견하게 되면  
<사지는 말고 보기만 하자>라는 마음과 <앗, 새로운 디자인이다>라는 마음이 싸우다가 스스로 합리적 이유를 만들어 결국은 집으로 데려온다.
소박하지만 이런 쇼핑은 생각보다 꽤 오래 만족을 준다.
집에 올 때까지 여행 중에 다른 쇼핑 생각을 없애주고 집에 가서 다른 애들과 같이 어우러질 생각을 하면 사실 설레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눈금이 있는 제품들은 시계나 저울 그리고 온도계 그리고 부엌 타이머도 있다.
이런 제품들은 빈티지나 레트로나 디자인에서 큰 차이가 없으며 어디서든지 쉽게 눈에 띄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벽시계에 태엽을 감는, 이른바 시계 밥을 주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대한 기억은 우리 나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은 어쩌면 아버지의 기억, 그때 이후 잘 자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도 문구류나 눈금이 있는 제품에 꽂혀있는 것이 아닐까.

오래된 자(Ruler)는 가끔 앤틱 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옛날 패션 디자이너가 사용하던 오래된 재봉자나 줄자도 있고 집 짓는 사람이 사용하던 주름처럼 접히는 접이자도 있다. 무게든 길이든, 나라에 따라 계량 단위가 달라 눈금의 단위가 다른 것도 자를 보는 또 다른 재미이다.

캐나다는, 오래전에는 미국과 같은 피트와 파운드를 썼지만 몇십 년 전 미터와 킬로그램으로 공식적인 단위를 바꾸었다. 하지만 한 사회에서 늘 쓰던 단위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아직도 혼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사실은 두 가지를 다 알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30센티 대나무자는 책가방 안의 필수품이었다. 엄마들은 그 대나무자를, 잘못한 우리들의 손바닥을 때리는 데도 가끔 사용하였고 책을 읽을 때 눈이 나빠지지 말라고 30센티 거리를 유지하라고 꾸짖으실 때도 탁 갖다 들이대시곤 했다.
후에 더 좋고 정확해 보이는 투명 플라스틱 자가 나왔어도 나는 왠지 새 것이 싫어서 언니 오빠들이 쓰던 대나무 자를 사용했었다. 그게 남편의 것이었는지 내 것이었는지 몰라도 우리 아이들도 대나무 자를 썼었다. 우리에게서 물려받아 아이가 쓰던 그 대나무 자를 다시 내가 지금 물려 쓰고 있다.

가끔 아직도 문구류에 집착하는 내가 좀 거시기 하기도 하지만, 이 덜 자란 마음을 스스로 추스르고 재느라 그런지 작은 15센티 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꽂혀 있는 것이 사랑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나를 말리긴 늦었지 싶다. 그놈의 컬렉션이 블링블링 보석이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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