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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현 Nov 16. 2023

나를 치유한 4살 아이의 한마디

네 살 딸아이가 기침을 시작한 건 약 한 달 전이었다. 낮엔 말짱하다가 밤에 간헐적으로 하는 기침이 더 심해지지도 그렇다고 좋아지지도 않은 채로 보름이 흘렀다. 그러다 차츰 기침의 강도가 세지나 싶어 동네 소아과를 찾았다. 여전히 기침은 밤에만 했고 콧물이나 열 등 다른 증상은 없었다. 가벼운 감기겠거니 짐작했으나 진단은 예상치도 못한 중이염이었다. 


기침이 있으니 감기인 건 맞지만 열도 없고 목도 붓지 않았으니 심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중이염을 방치할 수 없으니 항생제 처방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항생제와 감기약을 열흘 정도 먹였다. 


그런데 기침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열흘이나 항생제를 먹는 동안 해당 소아과를 3차례 방문했지만, 의사는 중이염 얘기만 할 뿐 기침에 대한 내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는 듯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중이염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니고 항생제 치료를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닌지라 의심이 들었다. 의사라고 모두 정확한 진단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간도 몇 번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나는 소아과가 아닌 다른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그간의 치료 이력을 설명하자 중이염 진단에 대해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면서 일단 약을 이틀 치 처방할 테니 먹고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다시 오라고 하며 혹시 그 사이 열이 나는지 잘 지켜보고 열이 난다면 중간에라도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생뚱맞게 갑자기 무슨 열 얘기를 하나 싶었는데,


정말 그날 밤부터 아이는 열이 나기 시작했다. 


기침이 시작된 지는 근 한 달이었지만 그간은 증상이 경미했을 뿐 아니라 기침 외 다른 증상은 전혀 없었기에 갑자기 오른 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도 나도 모두 지금까지의 감기와는 무관하게 유행 중인 코로나나 독감에 새로 감염됐을 거라고만 추측하고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코로나, 독감 검사와 더불어 가슴 사진을 찍어 보는 게 좋겠다며 근처에 있는 어린이 종합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관지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숨소리가 나쁘진 않지만 가슴 사진이 매우 지저분(?)하다며 당장 입원을 해야 할 수준이라고 했다. 아... 그때의 심정이란,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모두 잘 알 것이다. 정말 화가 나고 억울하고 아이에겐 한없이 미안했다. 


의사와 상의 끝에 일단 입원을 하진 않았다. 다행히 집에 네블라이저(호흡기치료용 기계)가 있었고 그간 폐렴 치료를 받은 적은 없으니 일단 약을 쓰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혹시 열이 이틀 안에 떨어지지 않으면 그땐 입원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해열제와 스테로이드, 기침 가래용 시럽과 기관지 확장용 패치와 약물까지 약을 한아름 받아들고 말이다. 



폐렴 치료를 한 그날부터 아이의 기침은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열도 떨어져 입원은 하지 않았다. 밤에 하던 기침의 횟수와 강도가 점점 줄어 정말 오랜만에 단잠을 자는 아이를 보았다. 안 먹어도 배부르듯,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네블라이저 치료는 5일 정도로 끝이 났고 그 후로도 약은 꽤 긴 시간을 복용했다. 


결국 병원 3곳을 돌아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에 성공한 셈인데, 결과적으로 나아졌으니 정말 다행이었지만 억울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를 폐렴에까지 이르도록 한 죄가 모두 나에게 있는 것만 같아 치료 기간 내내 시댁엔 물론이고 친정엄마에게까지 쉬쉬하며 지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있었으니 아이 목소리를 들킬까 낮엔 전화 통화도 자제했다. 그저 모든 사정을 아는 남편에게만 연거푸 하소연을 해대는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날, 남편과 내가 나누는 대화를 계속 들어오던 아이가


"엄마! 그 의사는 그냥 돌팔이야"


하며 괜찮다고 날 토닥이는 게 아닌가. 처음엔 그저 웃겨 풉!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는데 4살 아이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가 뭐라고 이상하게 그 후론 마음의 병이 나은듯 속이 시원해졌다.


사실 그동안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결국은 타인인 부모보다도, 한달내 기침으로 살이 다 내리게 고생한 아이 자신일 것이다. 난 어쩜 오진을 한 의사에 대한 화때문이라기보단 그걸 겪었을 아이에 대한 죄스러움때문에 그리도 마음이 무거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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