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특이점)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려야지.

by 박현아

십수 년 전에 보러 간 사무엘 베케트 원작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린다. 홍대 근처였나, 소극장이었는데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나와서 무의미한 농담이나 이야기를 하고 결론은 계속 '고도를 기다려야지!'로 끝난다. 근데 고도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온다. 그러다 포조와 그의 하인 럭키가 지나가는데 포조는 럭키를 노예처럼 부린다. 럭키는 '생각하라'는 명령을 받으면 이상하고 의미 없는 철학적 독백을 쏟아낸다. 해질 무렵에 소년이 와서 말한다. '오늘 고도는 못 오고... 내일은 올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딱히 줄거리도 없는 이 연극은 지루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의미 없는 세계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뭔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는 주제 의식이 이 투박한 형식 속에서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정체불명의 추구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아무리 나이를 먹어가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면서 하염없이 황량한 길을 걸어갈 뿐인 것이다. 그게 신의 구원이든, 자아 실현이든, 행운이든, 인간은 누구나 목마른 상태로 인생이라는 외길을 걸어가야 하니까.




이 시대에 와서는 특이점을 기다리는 것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에 겹쳐진다. 특이점Singularity는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초지능이 등장하면서 인류 문명 전체를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밀어넣는 순간을 말한다.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은 내가 아직 석사였던 2010년에 유행하는 책이었는데, 2025년에는 《특이점이 더 가까이 온다》라는 책이 출간됐다. 저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이 비선형적으로 발전하고 2030년이면 인간이 기계와 결합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특이점은 고도처럼 정체도 불명확하고 언제 오는지도 모르고 정말 가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빅테크 때문에 기술 수동적인 존재가 된 사람들은 마냥 수동적으로 기다린다. 미래 기술에 대한 무한 로딩 상태가 인간의 행동력을 갉아먹고, 희망만으로 존재를 연명하게 만든다.


나는 특이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종종 들어간다. 특이점은 이제 어떤 사람들에게 종교가 되었다. 그들은 특이점이 오면 인간의 모든 난제가 해결되고, 죽음과 노화를 극복하고, 노동을 하지 않고도 부유하게 살며, 가상현실 속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며 뇌의 자극만으로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AI 모델을 개발하는 빅테크의 대표들은 신처럼 추앙받는다. 사실 이것은 좀 극단화된 사례인데, 이보다 덜한 수준으로도 역노화와 보편적 소득 같은 개념이 퍼지면서 특이점의 도래 시점이 5년 뒤라느니 이미 시작됐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멈추지 않은 채 전속력으로 달리는 무언가의 위에 올라타고 있는데, 멀리서 보이는 빛은 이미 다가온 것 같기도, 그냥 착각인 것 같기도 하다.




이 구도를 다시 베케트의 연극에 대입해 본다. 빅테크 기업은 포조 같고, AI 모델 LLM은 그의 노예 럭키 같다. 포조가 럭키에게 '생각하라'라고 시키면 이상한 철학적 독백을 쏟아낸 것처럼, 빅테크가 LLM에게 생각하라는 명령을 하면 난해하고 조각난 지식을 폭발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못 한다. AI가 직업을 곧 바꿀 거니까 지금이 애매하고, 지금 공부해봐야 기술이 더 좋아져서 다 무의미하다. 특이점이라는 고도를 기다리는 우리는 오늘도 의미 없는 대화를 반복하면서 이 목마른 계절을 견딘다. '특이점이 거의 다 왔다'는 정보 비대칭적 예언 속에서 연말 무렵에 누군가 와서 말한다. '올해에 특이점은 못 오고... 내년에는 올지도 모른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