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모빌리티의 디자인 대혁명
목적지까지 안전한 이동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왔던 자동차는 ICT 및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스마트 모빌리티로 진화하고 있다. 이동 영역 확장 및 다채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이른바 '이동의 가치'를 중심으로 이제는 고유한 문화와 친환경 중심, 그리고 혁신적인 기술이 융합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의 개념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1. K-컬처와 만난 모빌리티
헨리 포드의 T 모델로 시작된 자동차의 대중화로 현대 문명은 *모터리제이션을 맞이하게 되었다. 관련된 산업은 급속한 성장을 거쳐 한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자동차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시작된 자동차 디자인 분야는 1927년 G사의 미술·색채 부서의 설립 아래 발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00여 년의 시간 동안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거듭했다. 자동차 산업 및 디자인 관련 인재의 요구에 따라 영국 왕립예술학교는 처음으로 자동차 디자인 교육과정을 개설하였다.
*모터리제이션 : 자동차가 사회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널리 보급된 현상
이처럼 자동차와 연관된 산업 대부분은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때문에 다른 디자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서양의 문화와 색채가 주를 이루는 분야였다. 동양적 혹은 한국적 색채와 디자인 Identity를 논하거나 접목한다는 생각은 흡사 '한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는 것'처럼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동 수단에 한국 고유의 문화를 적용한다는 개념은 거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까다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로 인해 스타일링을 중심으로 발전한 자동차 디자인은 이제 '사용자 중심 모빌리티 솔루션'을 연구하고 디자인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영국 왕립예술학교의 데일 해로우 교수는 현재 자동차 산업의 디자인은 차량의 스타일링과 동력성능을 중심으로 하는 'Automotive' 단계에서 새로운 이동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논하는 'Mobility'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자동차 산업의 디자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국적 문화를 적용한 현대자동차의 '모빌리티 온돌' 컨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고유의 난방 방식인 구들장을 데워 온기를 전하는 온돌에서 영감을 받은 '모빌리티 온돌'은 온돌방 특유의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전하는 시트 레이아웃과 탑승자 중심의 공간을 구성하였다. 편안한 이동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별도의 조작부를 배제한 실내 공간 디자인과 대칭형 시트로 소통을 중시한 것이다.
또한, 한국적 공간의 특징인 신발을 벗고 실내로 들어가는 방식과 동일하게 신발 수납공간을 마련하였다.
신발을 벗고 편안한 상태로 모빌리티를 탑승하도록 하여 실내·외를 구분하는 한국적 공간이동의 '의식(Ritual)'을 모빌리티에 접목한 것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온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빌리티의 난방 체계 일부를 차체 바닥 배터리의 열을 통해 플로어를 데우는 이른바 플로어 난방(Floor heating) 개념을 도입했다. 현대자동차 '모빌리티 온돌' 컨셉은 K-컬처와 모빌리티의 만남을 통해 한국 고유문화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미래 모빌리티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 자연으로부터 얻은 디자인 영감
교육계와 산업계를 망라하며 수년간 강조되어 온 화두 중 하나는 융합이다.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학제 간 융합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가능성과 결과물들이 도출되고 있다. 급변하는 모빌리티 산업에서, 최근 ESG를 주요 가치로 사용자 및 환경 중심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 등이 대두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이 진행한 '자연 속에서 영감을 얻은 모빌리티 디자인 프로젝트'는 기존의 정형화된 융합의 범위를 넘어 새로운 협업을 통한 혁신적인 모빌리티의 미래를 제시하였다.
본 프로젝트는 '자연에서 배우다'라는 주제를 통해 새로운 협업 연구모델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일 전문 분야의 연구자들이 아닌, 자연을 주제로 기업과 학계가 함께 협업하여 미래 모빌리티의 비전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얻고자 한 것이 본 프로젝트의 핵심 가치다. 다양한 연구 결과 중 바퀴벌레와 같은 생존력이 강한 생물들의 특징을 분석, 응용하여 바퀴벌레 특유의 단단한 껍질에서 영감을 얻은 충격을 흡수하면서도 원형을 유지하는 텍스타일 디자인을 개발했다.
또한, 자연에서의 소음을 주제로 한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들리게 하는 소리 경험 개발'도 주목할 프로젝트이다. 자연에서 상호 간 충격을 피하기 위한 동물들 간의 신호 전송 방법을 연구하여, 미래 모빌리티 교통 생태계에 적용이 가능한 사운드를 개발한 것이다. 이를 통해 과거 내연기관 자동차 환경에서는 고려되지 않았던, 전기차 특유의 무소음에 가까운 저소음에 따른 보행자와 모빌리티 간의 안전 문제가 향후 전기차가 대중화되는 미래 교통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연 속에서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통찰력을 찾고자 한 본 프로젝트의 가치는 RISD의 로잔 소머슨 총장이 말한 '각기 다른 분야의 지식이 적절한 환경에서 융합될 때, 진정한 혁신이 꽃 핀다는 사실을 확인한 기회'에 부합되는 혁신적인 융합의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혁신 기술의 미래 모빌리티 디자인
매년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모터쇼를 통해 새롭게 출시될 차를 만나보는 것이 당연했던 예전과 달리,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글로벌 업체의 신차 소개를 CES와 같은 가전제품 및 신기술을 홍보하는 전시에서 만나보게 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과거 이동을 중심으로 하는 자동차의 개념이 이제는 이동을 포함한, 이동의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는 공간의 개념으로 진화하면서 '바퀴 달린 쇠로 만든 탈것'이라는 이미지는 '첨단 기술이 접목된 움직이는 전자기기'라는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 자동차에서는 보기 힘든 물리적, 기계적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기술을 적용한 자동차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5를 비롯하여 최근 출시되는 다양한 차량들을 통해 사용자의 안전하고 편안한 이동을 위해 발전하고 있는 모빌리티의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이오닉 5에 적용된 디지털 사이드미러 (DSM, Digital Side Mirror)는 차량에 적용된 800V 고속 충전을 지원하는 멀티 충전 시스템과 차박 등 아웃도어 액티비티 상황에서 다양한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V2L 등 다양한 기술과 함께 이목을 끄는 혁신 기술로 평가된다. 기존의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로 차선 변경 및 차량의 위치를 확인하던 물리적인 기능의 한계를 넘어, 첨단 광학 및 디지털 영상처리 기술 등이 망라되어 주야간 및 우천 시 등 외부환경에 제약을 받지 않고 넓은 각도와 시야를 제공한다는 점이 주요 강점이다.
※ 60초로 만나는 아이오닉 5 디자인 디테일 (©현대자동차)
FHD (Full High Definition) 카메라 및 OLED 모니터, 디지털 신호 처리 기술이 융합되어 야간이나 우천 시 원활한 후방 시야를 제공하며, 디지털카메라의 멀티 포커싱과 같이 밝고 어두운 부분의 차이를 극대화시켜 영상을 구현한다. 기존의 광학 미러 대비, 11° 이상 넓은 시야각을 제공하며, 이러한 기술이 적용된 디지털 사이드미러는 3D 픽셀 방향지시등 및 서라운드 뷰 모니터용 카메라 등 다양하고 복잡한 부품을 적용하면서도 사이드미러 크기를 최소화하여 운전자의 정면 시야를 방해하지 않아 약 60%가량 전측방 시야 개선의 효과를 제공하고 있다. 면적이 작아짐에 따른 공력 성능 개선 및 조형적으로도 간결한 사이드미러 디자인을 완성하여, 신차 발표회에서만 보던 컨셉 모델이 아닌 일상생활 속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미래 모빌리티 디자인의 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말은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현대의 디자인을 논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오랜 경구가 되었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자동차는 '이동'이라는 기능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자동차 내부의 공간은 어찌 보면 휴식과 소통의 개념보다는, 이동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한 형태로 현재까지 존재하여 왔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의 모빌리티는 사용자의 새로운 이동 경험을 위한 공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자 기능이 될 것이며, 이동은 부가되는 개념으로 자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친환경 모빌리티의 성장과 사용자 중심의 패러다임 변화 등으로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모빌리티 생태계는 고유의 문화, 자연, 혁신 기술을 통해 다학제적 융합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마주할 미래 모빌리티의 본질과 가치에 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